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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 찾아서] ‘한국통사 집필 소원’ 한길사와 계약하며 현실로 / 이이화

등록 2011-02-08 19:33수정 2011-02-09 16:56

이이화-민중사 헤쳐온 야인 84
동학농민전쟁 백주년기념사업 추진위원회(백추위)에서는 1994년까지 여러 사업의 1단계를 마무리한 뒤 애초 우리가 목적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평했다. 2단계 사업은 동학농민군의 명예를 회복하고 지속적인 연구와 사업을 할 수 있는 입법을 추진하는 것이었다. 나는 백추위가 발족한 뒤 적어도 5~6년 동안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 글을 마음 놓고 쓸 수 없어서 늘 안타까웠고, 이런 사정을 자주 토로한 적이 있었다. 특히 늙어가면서 “마지막으로 ‘한국 통사’를 쓰고 죽는 게 소원이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이럴 때 마침 한길사 김언호 사장이 ‘한국 통사’를 써보자고 제의를 해왔다. 한길사에서는 많은 필자를 동원해 발행해온 <한국사>(27권) 시리즈를 1994년 1월 완간했는데, 필자가 많다 보니 주제와 문장 등 일관성이 없는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푸는 길은 한 필자가 전체를 이끌어야 하는데 마땅한 필자가 없다고도 했다. 말이야 옳았지만, 이를 맡을 만한 유능한 역사학자는 거의 교수직을 맡고 있어서 시간을 낼 수 없는 사정이었다. 나는 새로운 길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이 기회에 그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 영영 다시 기회가 없을 거라는 판단도 했다. 나는 한동안 그 계획을 짜보았다. 그래서 10년에 걸쳐 24권 분량으로 통사를 완성해보기로 했다. 사실 모험이었다.

10년 동안 한길사에서는 생활비로 월 250만원 정도를 선인세로 주기로 약속했다. 나는 늦게 둔 두 아이의 학비 등을 고려해 이 정도의 돈이면 겨우겨우 생활은 할 수 있겠다고 나름대로 요량을 했다. 독립투사가 아니니 어쨌거나 식구를 먹여 살려야 할 의무가 있었고, 내 아버지처럼 가사를 전혀 돌보지 않을 정도의 의지도 없었다. 물론 그렇게 합의를 보았지만 ‘켕기는’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95년 봄인가? 당시 ‘꼬마 민주당’ 리더의 한 사람이었던 이부영 의원이 연락을 해왔다. 대체로 ‘동학농민혁명을 마무리했으니 항일 의병투쟁을 다시 조명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힘이 팔려 선뜻 나서려 하지는 않았지만 그 의도에는 동의해 나가기로 했다. 그래서 1차 의병봉기 지역인 충주와 제천 일대를 답사했다. 동행자는 그곳 출신인 신경림 시인과 유인태 의원 등이었다. 답사 현장에서 참여자들은 당당하고 열기가 있었다. 그런데 이 의원은 그 일을 더는 진전시키지 않았다. 1차 의병은 봉건가치를 고수하려는 보수 지향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내키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를 단초로 해서 후기 의병의 민족투쟁을 지속적으로 조명했어도 좋았을 것이다. 또 내가 이 일을 꾸리기를 바라는 듯했지만, 나는 이미 한국 통사를 쓰려고 결심한 처지였다.

그해 초여름 나는 김백일·윤해동·한상구 세 후배를 데리고 백령도 답사에 나섰다. 이들에게서 몇가지 조언을 듣고자 함이었다. 내가 굳이 백령도로 가자고 한 뜻은 이곳을 한번도 답사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정말 백령도 백사장은 아름다웠고 바닥이 너무 신기할 정도로 고르고 청정했다. 경비행기가 내리고 자동차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천혜의 유산이었다. 나는 이곳에 와서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일행은 바닷가와 민박집에서 술을 마시며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윤해동은 엉뚱하게도 내 회갑논문집 계획서를 내밀었다. 나는 소리를 지르면서 내팽개쳤다. 그런 얘기를 하려고 모인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교수들이 회갑논문집 내는 일을 늘 비웃어 왔다. 나는 박원순 변호사의 같은 제의도 한마디로 무질러 진행시키지 못하게 했다. 당시만 해도 별 업적도 없는 교수들 중에 원고료도 주지 않고, 제자들이 돈을 거두어서 회갑논문집을 내는 사례가 있었고, 그러니 제자들은 거의 마지못해 부실한 논문으로 ‘눈도장’만 찍는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이화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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