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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 찾아서] ‘단둥 기행’ 고구려 흔적은 남김없이 사라지고… / 이이화

등록 2011-02-15 18:35수정 2011-02-15 18:38

<한국사 이야기> 시리즈 첫 부분인 고대사 출간을 한 직후인 1998년 여름 한길사에서 주최한 ‘이이화와 함께 떠나는 고구려 발해 역사대탐험’에 나선 필자(앉은 줄 맨 가운데)가 봉황산성 앞에서 기행 참가자들과 함께했다.
<한국사 이야기> 시리즈 첫 부분인 고대사 출간을 한 직후인 1998년 여름 한길사에서 주최한 ‘이이화와 함께 떠나는 고구려 발해 역사대탐험’에 나선 필자(앉은 줄 맨 가운데)가 봉황산성 앞에서 기행 참가자들과 함께했다.
이이화-민중사 헤쳐온 야인 89
<한국사 이야기> 첫 부분이 출간될 무렵인 1998년 중국 사회과학원에서는 ‘동북공정’ 전초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곧 고구려 역사를 중국 소수민족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논증을 연달아 내놓고 있었다. 이 문제는 뒤에 더 자세하게 다룰 생각이다.

그래서 한길사에서는 첫 출간 기념의 의의를 살리려 고구려 유적지를 답사하는 기행을 계획했다. 그해 여름 일주일 정도의 일정으로 20명이 고구려기행을 떠났다. 첫출발은 여객선을 타고 황해를 거슬러 단둥으로 가는 여정을 잡았다.

선상 토론에서 나는 주제발표를 통해, 일반인들이 주로 가는 지안(집안)과 백두산 중심의 답사 대신에, 고구려가 수나라·당나라와 전쟁을 벌인 랴오닝성(요령성) 일대로 지역을 넓혀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양근 교수(성신여대)는 “중국 역사책에서 고구려와 전쟁을 벌여 패전한 사실을 숨기고 있는데 이는 대국이 아니라 소인이 하는 짓”이라고 질타했다.

단둥에 도착해 이곳 역사교수인 박문호 선생의 안내로 랴오양과 단둥 중간지대에 있는 봉황산성을 답사했다. 이 성은 고구려의 오골산성으로 추정된다. 화려하고 장대한 이 성은 고구려 방어성으로 당태종이 18명의 장수를 버리고 달아났다는 사장툰(舍將屯)이라는 곳도 있는데 고구려 성이라는 표지는 아무 데도 없었다. 박 교수는 랴오양에 사는 황아무개 교수를 답사 안내자로 소개해 주었다. 랴오양은 고구려 시기 요동성이 있던 곳인데, 돌로 된 성문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아무 흔적이 없을 정도로 파괴되어 있었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이곳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고구려가 멸망한 뒤 안동도호부를 둔 곳이기도 했다. 이런 사실은 묵은 역사기록에서만 보일 뿐 현장에서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랴오양시에 해당하는 태자하 상류에도 고구려 방어성의 성곽이 있다. 태자하는 요하 다음으로 고구려 경계를 가르는 강이다. 이 산성은 요동성과 안시성의 중간에 있던 백암성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산성에는 중국 본토와 요동 중간에 있던 연나라가 세웠다는 뜻인 ‘연주성 산성’이라고만 표시되어 있지, 고구려 산성이란 알림 표시는 아무 데도 없었다. 이 일대에는 고구려 흔적을 남김없이 지우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 일행은 이런 모습을 보고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이게 이른바 ‘동북공정’이 이루어지기 전까지의 모습이었다.

출간 후속작업이 계속되어 1999년 1월에는 월명암에서 집필한 고려시대사 4책이 출간되었다. 필자 나름대로 고려는 최초의 통일국가라는 것, 최초의 중앙집권제 국가라는 것, 시험을 보여 인재를 뽑는(과거제) 관료제 사회라는 것, 불교와 유교를 비롯해 도교와 민속신앙을 아우르는 다양한 문화를 창출한 사회라는 것, 농업사회의 기반 위에서 상업을 중시했다는 것, 여성의 지위가 중국보다 높았다는 것 등을 내걸었다. 그리고 후기에 무신정권이 이어지고 몽골의 침략을 받아 온 나라가 피폐해졌으나 끝내 원나라와 활발한 교류를 터서 정치·문화의 지평을 넓혔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중세국가로 손색이 없는 통치체제를 갖추었다는 점을 제시했다. 고려의 역사는 고난을 겪었으나 중세국가의 체제를 정비했다는 관점을 지니고 서술했다.

역사학자 이이화
역사학자 이이화
그리고 30년이 넘게 이어진 몽골의 침략으로 나라 전체가 유린되고 나서 끝까지 항복하지 않은 무신정권을 타매했으며, 남은 세력인 삼별초의 항쟁을 권력유지의 연장이라는 관점으로 다루었다. 박정희 정권의 어용학자였던 이선근은, 삼별초 항쟁을 민족 주체세력으로 다루었는데 그 허구성을 드러내려 한 것이었다. 30여년 동안 몽골군은 전국을 횡행하면서 사찰의 종과 농부들의 농기구까지 거두어 저네들 무기로 만들고 경강도 내륙과 무안 앞바다까지 석권하면서 민중을 압제했다. 그런데도 무신정권이나 삼별초는 강화도나 제주도에서 저네들끼리 똬리를 틀고 있으면서 민중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었는데 이를 두고 민족 주체를 말할 수 있겠느냐는 논지를 폈다.

나는 아치울 반지하방에서 계속 집필에 몰두했는데 어떨 때는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기도 하고 두어달씩 집필에 열중하고 나면 어깨와 팔과 손이 아팠다. 독수리 타법으로 글을 쓰다 보니 직업병이 생긴 것이다. 정형외과에서 한달쯤 치료를 받아야 원상회복이 되었고 머리도 맑아졌다. 이럴 때는 집필을 중단한 채 사료 검토에 매달리기도 하고 강연이나 역사기행도 다니고 모임에도 참석했다. 나 나름대로 틈새를 적절하게 이용했다고 할까.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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