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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 찾아서] 동아시아 운동가 연대해 ‘학살의 기억’ 되짚다 / 이이화

등록 2011-02-16 18:24

1999년 겨울 일본 오키나와의 나하에서 열린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을 위한 국제회의’에 참가한 한국 대표단이 나하박물관 앞에서 함께했다. 앞줄 왼쪽에서 일곱째부터 서중석·강만길 교수·필자 등이다.
1999년 겨울 일본 오키나와의 나하에서 열린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을 위한 국제회의’에 참가한 한국 대표단이 나하박물관 앞에서 함께했다. 앞줄 왼쪽에서 일곱째부터 서중석·강만길 교수·필자 등이다.
이이화-민중사 헤쳐온 야인 90
김제 월명암에서 올라와 아치울 집에서 <한국사 이야기> 집필에 몰두하던 시절 팔 치료도 할 겸 머리도 식힐 겸 몇차례 문밖 나들이를 했다.

1999년 겨울 일본 오키나와의 나하에서 열린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을 위한 국제회의’에 참가했다. 대만, 일본, 한국의 시민활동가·연구자·문화예술인과 태평양전쟁 피해 당사자 400여명이 모여들었다. 한국에서는 90여명이 참가했다. 이 심포지엄에서는 미군의 군사기지, 2차대전 당시 민간인의 희생, 여성의 인권유린 등이 집중적으로 거론되었다. 이는 탈냉전의 연장선에서 동아시아의 미래상을 전망하려는 의도였다.

우리 참가자들은 미군기지가 있는 바닷가에서 벌어진 주민들의 항의시위와 진혼제도 참관했고, 미군이 상륙할 때 희생된 군인과 주민들의 이름을 돌에 새겨놓은 추모공원을 돌아보면서 전쟁의 공포를 실감하기도 했다. 한국 출신 희생자들의 추모탑도 따로 세워져 있었다. 또 집단학살된 동굴을 돌아볼 적에는 가슴이 서늘했다. 특히 회의장에 큼지막한 걸개를 내걸어놓고 일본의 천황제를 반대하는 서명을 받는 게 인상적이었다. 나는 그 걸개에 “천황은 민주주의의 적”이라는 문구를 한문으로 적어넣었다. 우리나라에는 왕이 없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나는 마지막날, 한국 대표 자격으로 5분으로 제한된 인사말을 했다. “나를 보시오. 하도 힘도 없고 작아서 어릴 때부터 얻어맞았지, 때릴 줄을 몰랐소. 그러니 태생적으로 평화를 추구했지요. 또 몸이 작아 적게 먹고 적게 싸니까 지금도 환경보호에 기여하고 있소.” 내 말에 모처럼 온 청중이 웃어주었다. 이와 달리 대만과 일본의 대표는 20분 또는 30분씩 어려운 말을 늘어놓아 청중을 지루하게 만들었다.

그러면 이 모임을 소개할 필요가 있겠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에 들어 좁은 민족주의를 넘어서 동아시아 민중이 연대해 평화와 인권을 모색하자는 논의가 일어났다. 그 선봉은 서승 교수(리쓰메이칸대)였다. 서승은 재일동포 유학생으로 서울에 왔다가 동생 서경석과 함께 유학생 간첩 혐의를 받아 19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는 고문을 견디다못해 기름 화로에 몸을 던져 전신화상을 입었다. 90년 석방된 뒤 교수가 되었고 인권운동가와 평화운동가로 활동했다. 그는 대만의 정치범으로 36년 동안 투옥되었던 린수양을 만나 평화운동을 벌이기로 합의했다. 두 사람은 모두 국가테러리즘의 희생자였다.

그리하여 97년 대만의 2·28 사건 50돌을 맞이해 타이베이에서 첫 심포지엄을 열었다. 2·28 사건은 대만 국민당 정부의 배후조종으로 민주운동가가 대량학살된 사건이다. 곧 백색테러였다. 이 행사에는 대만·한국·일본·오키나와의 운동가와 연구자 300여명이 함께했다. 이어 연차로 98년 제주도에서 4·3 항쟁 50돌을 맞아 대회를 열었고, 동시에 강만길·서중석·강창일·하종문 등 교수들이 중심이 되어 한국위원회를 발족시켰다. 나는 그 무렵 전북 장수 등지에서 한국통사를 집필하느라 1·2회에는 참가하지 못했던 것이다.

2000년 5월에는 광주시와 구례 일대에서 광주민중항쟁 50돌에 맞춰 열렸다. 여기에서는 한국전쟁과 5·18 항쟁의 희생자들은 모두 전쟁과 국가폭력에 의해 ‘타살됐음’을 부각시켰다. 이들 민간인 희생자를 제노사이드(집단학살)의 시각에서 재조명하면서 그런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기념할 것인가에 대한 실천적 논의가 이루어졌다. 특히 한국전쟁 때 양민학살 문제가 논의되면서 그 진상규명 기구를 발족시키자는 논의가 일어나서 뒷날 결실을 보았다. 그 전야제를 맞이해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5·18 관계자를 초청해 만찬을 베풀면서 이 모임의 대표자들도 함께 초대했다. 한 나라 원수의 초대를 받은 첫 사례였다. 이 만찬회에서 나는 김 대통령과 악수를 했는데 두번째인 셈이었다.

역사학자 이이화
역사학자 이이화
이듬해 5월 심포지엄은 전주에서 동학농민혁명을 주제로 다뤘다. 이 모임은 내가 주선을 했는데, 일본 인사 200여명이 참여해서 그 실상을 국제적으로 알리는 계기를 만들었다. 비공식으로 연 이 국제학술대회는 교육부, 문화부 등 정부기구의 지원을 받아 조금 분위기를 달리했으나 성과는 컸다. 이어 2002년에는 교토에서 ‘냉전과 국가폭력과 일본’, 여수에서 ‘학살 청산 화해’를 내걸고 열렸다. 나는 한국사 원고를 미리 보충해놓고 열성으로 이 모임에 참가했다.


서로 말이 다른 이들이었지만 참가자들 모두 어울려 흉허물 없이 담소를 나누었다. 그럴 적이면 유학생 출신 통역들이 바삐 돌아다녔다. 다들 한가락 한다는 사람들이어서 뒤풀이 자리에서도 많은 말을 쏟아냈다. 그 소재는 아주 다양했는데 언론·사상의 자유를 만끽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한국전쟁을 겪은 북한과 중화주의를 내걸고 동아시아에서 군림해온 중국 대표들이 빠져 있어서 아쉬움을 남겼다.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을 위한 국제회의는 6년 동안 많은 성과를 거두고 막을 내렸다.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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