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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아서] 청와대에서 디제이 임기말 한계까지 ‘직설평가’ / 이이화

등록 2011-02-21 18:48수정 2011-02-22 16:02

1992년 대선 패배 직후 정계은퇴를 했다가 복귀한 김대중 전 대통령(왼쪽 둘째)이 94년 1월27일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을 맡아 현판식을 열고 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필자는 축하객으로 초청 방한한 코라손 아키노 전 필리핀 대통령(오른쪽 셋째)과 만나 환담을 나눈 기억이 있다.
1992년 대선 패배 직후 정계은퇴를 했다가 복귀한 김대중 전 대통령(왼쪽 둘째)이 94년 1월27일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을 맡아 현판식을 열고 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필자는 축하객으로 초청 방한한 코라손 아키노 전 필리핀 대통령(오른쪽 셋째)과 만나 환담을 나눈 기억이 있다.
이이화-민중사 헤쳐온 야인 93
이쯤에서 고 김대중 대통령과 맺은 인연을 소개해야겠다. 이 얘기를 빼고 넘어가게 되면 조금 섭섭할 것 같다. 나는 2002년 김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무렵 청와대로 초청을 받아 국민의 정부를 평가하는 강연을 했다. 당시 청와대 비서진이 거의 참석했다. 나는 이 자리에서 국민의 정부 업적을 두고 “최초로 절차 민주주의를 확립하고, 언론사상의 자유를 신장하고, 남북 평화통일의 길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또 나 개인으로는 역사 관련 글을 쓰면서 처음으로 “마음 놓고 자기 정화(검열)를 하지 않은 경험을 갖게 되었다”고도 말했다. 이는 일반론이었지만 많은 박수가 쏟아졌다.

그런 다음 조심스럽게 몇가지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첫째,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위기를 맞아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를 표방했는데, 나는 이 이론을 잘 모르지만, 전통적 인간관계가 무너지는 현상이 빚어졌다. 평생직장의 전통적 관념이 무너지고 약자가 내몰리는 풍조가 일어나고 있어 오히려 그 부작용이 염려된다. 무한경쟁은 약자의 사회적 지위를 더욱 약화시켜 서럽게 만든다. 둘째, 측근과 가족들이 분란을 일으켰다. 이들이 민주운동을 하면서 독재정권의 탄압을 받았지만 그 보상이 이권을 확보하는 길로 가서는 안 된다. 그 뜻은 아무리 아들들이 핍박을 받았지만 꼭 국회의원을 하거나 어떤 지위를 누리는 보상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회봉사활동을 한다든지, 각자 직업을 가지는 게 더욱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내 나름으로 아무리 부드러운 표현을 썼다 한들 이 말을 못 알아들었겠나? 강연이 끝난 뒤 평소 알고 지내던 한 비서관이 다가오더니, “이아무개 선생은 김 대통령이 최초로 민주주의의 꽃을 피웠다고 칭송했는데 선생은 비판적 평가도 하시는군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저 웃었다. 당시 청와대에서는 나만이 아니라 몇몇 인사를 초청해 업적 평가를 했던 것이다. 평소 역사 인물의 약전을 쓸 때면 칭송만 늘어놓지 않고 일정 부분은 비판이나 한계를 지적했던 내 버릇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사실 앞서도 몇차례 얘기했듯이 나는 김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부터 약간의 인연이 있었다. 1993년 초 정계은퇴 선언을 하고 영국 유학을 갔다가 귀국한 그는 이듬해 1월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을 설립했는데, 이 재단에서 나를 이사로 선임했다. 여러 이사 중에 한자리 끼워주었겠지만 나는 정치할 생각이 없었기에 이사회에도 참석하지 않았고 회비도 내지 않았다. 다만 아키노 전 필리핀 대통령이 이사회에 맞춰 초청강연에 왔을 때 딱 한번 참석했다. 그 뒤 나는 전북 장수로 한국통사를 쓰러 내려가느라 관심을 끊었고, 그 뒤 자연스럽게 이사에서 빠진 것 같다.

98년 초반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청와대에서 초청을 받은 적이 있었다.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고생한 인사 50~60명을 초청해 오찬을 베풀고 사례금도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민주인사가 아니라고 여기는 까닭에 그 자리에 가지 않았다. 훗날 그때 참석했던 강창일 교수는, 참석하지 않은 초청인사 명패 중에 ‘이이화’가 있더라며 “역시 이이화는 학자야”라고 말해주었다. 낯간지러운 얘기일 것이다.

역사학자 이이화
역사학자 이이화
2008년 총선을 앞두고 나는 박재승 변호사의 요청으로 민주당의 공천심사위원을 맡았다. 그때 언론에서는 연일 비리 연루자 공천 탈락설을 보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김 대통령의 비서인 최아무개한테서 몇차례 전화가 왔다. 그는 다른 말은 묻지 않고 김홍업의 공천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일종의 압력으로 느껴졌다. 결국 비리 연루자 10여명이 공천에서 제외되었는데 김 대통령 측근이 여럿 포함되었다. 이는 내 개인의 의사가 아니라 공심위원 전체의 합의사항이었는데 민심을 민주당으로 쏠리게 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하지만 그들은 정치적으로 회생된 면이 없지 않았으니 개인으로는 좋지 않은 인연일 것이다.

내 고교 때 은사인 이종수(충남대 명예교수·사회학) 선생은 김대중 대통령을 두고 ‘포퓰리즘에 근거한 카리스마’라고 말했지만 나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우리 민주화 역사에서 손꼽을 수 있는 민주적 인물이었다고 생각하지만 ‘나 때문에 자식들이 고생을 많이 해 눈물이 난다’는 의식도 보여 역사인으로서 한계도 드러냈다.

이이화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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