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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 찾아서] 10년 고생 ‘한국사 이야기’ 2004년 여름 완간 / 이이화

등록 2011-02-24 18:32

1998~99년 김제 월명암에서 ‘한국통사’를 집필하던 시절 필자와 10년간 <한국사 이야기> 편집을 도맡아준 강옥순씨가 골방에서 자료를 살피고 있다.
1998~99년 김제 월명암에서 ‘한국통사’를 집필하던 시절 필자와 10년간 <한국사 이야기> 편집을 도맡아준 강옥순씨가 골방에서 자료를 살피고 있다.
이이화-민중사 헤쳐온 야인 96
조선 사회는 개항 이후 근대 시기를 맞이했다. 나는 비록 제국주의의 실체를 뒤늦게 알았으나, 여러 세력이 어우러져 심한 갈등 속에서도 활발한 개화의 역사가 전개됐다는 관점에서 이 시기를 서술했다. 이는 타율의 근대화가 아니라 내재적 발전의 동기를 유발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한쪽으로는 전통 유림들이 유교문화를 고수하려 했고, 한쪽으로는 서구 문물을 수용해 근대화를 이룩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또 한쪽으로는 봉건질서를 타도하고 새 사회를 열려고 항쟁했다. 이를 새로운 시대를 여는 동력으로 나는 봤다.

그리하여 시기는 늦었지만, 진보지식인들은 학교 설립이나 신문 발행 등을 통해 근대화를 추진했고, 하층민들은 스스로 자기 권익을 찾으려 나섰으며, 여성들도 쓰개를 벗어던지고 권리를 찾으려 했다. 그 결과 느리거나 단계적이나마 지배세력은 이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한제국의 탄생은 역설적으로 시대 상황에 부응한 것으로 보았다.

우리나라가 식민지로 전락한 요인은 자율과 타율이 뒤섞여 있었다고 보았다. 곧 역량을 키우지 못한 내부 요인과 제국주의 침략인 외부 요인이 결합되어 전개되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어 일제 식민지 지배는 ‘식민지 근대화’도 아니요 과장된 ‘식민지 수탈’에도 치우치지 않으려 했다. 어떤 요인에서건 이 시기 우리 민족의 생활문화는, 주택이나 옷이나 음식에 있어서 급격하게 변화를 맞았다는 사실을 서술했다. 이 생활문화의 변화를 통해 양반과 상놈, 귀족과 서민의 외형으로는 구분할 수 없는 평등을 실현했던 것이다. 하나의 보기를 들면, 누구나 머리를 깎고 구두나 고무신을 신었으니 차림새로는 구별이 없어진 셈이다. 또 식민지 수탈은 1930년 후반 전시체제 아래서 이루어졌음을 본격적으로 조명했다. 조선의 젊은이들이 징용·징병·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전선에 끌려간 사실을 강조하려 했다. 이와 달리 민족독립운동은 다른 식민지 국가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활발하게 전개된 사실을 강조하고 사회주의 독립운동도 포함시켜 서술했다.

여기까지였다. 1945년 해방된 이후의 현대사는 숙제로 남겨두었다. 이를 남겨둔 것은 그동안 이 시기를 다룬 저술이 많이 나왔고 내 역량이 미치지 못한 점과 아직 풀어야 할 문제들이 가로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해서 <한국사 이야기> 22책이 완성됐다.

나는 한 단계의 원고를 마칠 때마다 그 시대를 전공한 젊은 연구자의 검토를 거쳤다. 고대사는 전덕재, 고려사는 최연식, 조선시대사는 염정섭, 근대사는 우윤·윤해동, 식민지시대사는 윤해동·장신·장용경·박완서를 동원했다. 특히 박 선생은 소설가로서 식민지 시기에 학교교육을 받으며 체험한 생활사 부분을 꼼꼼하게 검토해주었다. 이들 전공 연구자들의 검토는 필자의 주관적인 치우침을 바로잡고 다른 전공자의 참신한 지식과 균형감을 찾으려 한 것이다. 특히 한길사의 강옥순 편집자는 <한국사 이야기>의 모든 원고를 마지막 총정리하는 작업을 도맡았다. 그와 나는 10여년 세월을 동행한 셈이었다.

역사학자 이이화
역사학자 이이화
<한국사 이야기>의 원고는 2004년 봄 마무리되었고 이어 초여름에 완간을 보았다. 마침내 내 머리도 맑아지고 컴퓨터 병도 말끔히 나았다. 한길사에서는 그해 6월3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처음으로 성대한 출판기념회를 마련해주었다. 기념회에는 원로인 이우성·성대경 교수와 한승헌 변호사, 고은 시인 그리고 임헌영·박석무 등 선후배 700여명이 모였다. 어느 기자는 정치인 모임이 아닌데도 이렇게 모인 것은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책이 나온 뒤 한동안은 여기저기 인터뷰에 응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다. 또 역사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평가와 함께 단재학술상(2001년)과 청명학술상(2006년)도 받았다. 2005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시회를 앞두고 100권의 책을 외국어로 번역해 소개할 때 <한국사 이야기>의 생활사 부분이 선정되기도 했다. 2007년 한국일보사 주관으로 전문가의 추천을 받아 선정한 ‘우리 시대의 명저 50선’에도 들었다. 선정위원들은 “재야 학자로 학문적 엄밀성과 함께 역사의 빈틈을 성실하게 메워준 이이화의 한국사”라고 평가해줬다.

이 ‘명저 50선’에는 김구의 <백범일지>를 비롯해 함석헌·이기백·김용섭·리영희·강만길 등의 저술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여기에 끼었으니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이만하면 10년 고생의 보람은 충분히 맛본 것 아닌가.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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