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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아서] 개성유물 세계문화유산 등재 노력, 이것이 ‘통일운동’ / 이이화

등록 2011-03-06 20:24

북한 개성 오관산 자락에 있는 영통사 복원에 나선 남쪽 천태종 관계자들이 기와 등 건축자재를 전달하며 찍은 기념사진. 11세기 고려의 의천 대각국사가 천태종을 개창한 고찰인 영통사는 2005년 11월 500여년 만에 제모습을 찾았다.  <한겨레> 자료사진
북한 개성 오관산 자락에 있는 영통사 복원에 나선 남쪽 천태종 관계자들이 기와 등 건축자재를 전달하며 찍은 기념사진. 11세기 고려의 의천 대각국사가 천태종을 개창한 고찰인 영통사는 2005년 11월 500여년 만에 제모습을 찾았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이화-민중사 헤쳐온 야인 102
2005년 11월 남북 역사학자들과 함께 개성 답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고려 왕건릉이었다. 송악산의 지맥인 만수산 등성이에 자리한 왕건릉은 고려 태조 왕건과 신혜왕후 유씨를 함께 묻은 단봉 합장릉으로, 북한의 국보다.

북한은 1992년 왕건릉을 대대적으로 보수했다. 앞에 놓인 문인석과 무인석에는 발해의 왕자 대광현과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을 새로이 조성해 두었다. 얼핏 원형을 변질시켰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변형은 바로 고려가 신라를 병합하고 발해를 계승했다는 역사의식을 표현하는 상징물이었다고 볼 수도 있었다.

우리 일행은 특별배려로 왕건의 현실(주검을 안치한 곳)을 관람할 수 있었다. 묘실 안문의 장식 조각도 선명했고 현실의 동쪽 벽에는 매화와 대나무, 서쪽 벽에는 노송, 천장에는 북두칠성 등이 천년이 지났는데도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다. 그 염료와 솜씨가 감탄스러웠다. 다만 북쪽 벽은 일제 때 도굴로 인해 파손되어 있었다. 북쪽 관계자는 앞으로는 현실을 공개할 기회가 없을 것이라며 생색을 냈다.

개성 시내 정몽주 집터에 세운 숭양서원에는 정몽주가 나들이할 때 말을 타는 데 쓰던 돌 두 개가 보존돼 있어 당시 관리들의 생활상을 짐작게 했다.

고려의 유명 사찰인 영통사는 개성 시내에서 북쪽으로 약 10㎞ 떨어진 오관산 아래에 있었다. 영통사는 고려 초기에 창건되었으나 왕자인 대각국사 의천이 20여년 머물면서 천태종을 창설한 사찰로 유명해졌다. 이 사찰은 16세기에 소실되었으나 근래에 남쪽의 천태종에서 지원해 복원이 됐다.

송악산 아래 고려의 궁궐터인 만월대의 터전도 주춧돌과 33계단이 그대로 남아 있어 그 규모를 짐작할 만했다. 궁궐의 주춧돌은 지표조사를 통해 원형 그대로 원위치에 발굴해 놓았다. 만월대 궁궐의 복원은 남북이 공동으로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개성 교외에 있는 공민왕릉과 정릉(노국대장공주의 무덤)은 모든 전공학자들이 그 규모나 예술적 가치로 보아 한반도 최고의 것이라고 동의했다. 다시 말해 경주의 신라왕릉이나 건원릉(이성계릉), 영릉(세종릉), 그리고 중국 집안(지안)의 장군총보다 예술적으로는 월등하게 우수하다는 평가다. 과연 글이나 사진으로 보는 것과는 달리 현장의 실물을 둘러보니 큰 감동을 받았다.

정릉은 공민왕이 왕비에 대한 연모의 정을 누르길 없어 7년에 걸쳐 스스로 조성하였다. 또 자신의 무덤도 사전에 스스로 만들어두었다 한다. 무덤 앞의 문관석과 무관석은 그 근엄한 표정과 씩씩한 기상으로 보아 우리나라 돌조각 가운데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 분묘 아래에 두른 병풍석 조각(12지신)은 공민왕이 직접 그린 그림을 바탕으로 새겼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개성의 상징인 박연폭포와 황진이묘를 돌아보지 못해 아쉬웠다. 마침 도로 공사 중이어서 뒷날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송별연은 현대아산의 봉동관에서 베풀어졌다. 이곳에서 복무하는 대여섯명의 20대 ‘여성동무’는 아리땁고 예절도 바르고 친절했다. 게다가 화장도 세련되고 옷도 맵시있게 입었으며 기타도 잘 치고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잘 추었다. 평양에서 파견되었다 한다. 아가씨들은 우리 일행을 지명해 노래를 시키기도 했다. 그리하여 주석이고 노인이고, 늙거나 젊은이를 가리지 않고 무대에 나와 노래를 불렀다. 한바탕 판이 벌어졌고 주석단이 물러간 뒤에는 한층 자유분방하게 놀았다. 나는 물론 숙로로 주책없이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역사학자 이이화
역사학자 이이화
아무튼 송별연이 파할 즈음에 “반갑습네다” 또는 “또 만납시다”의 가락에 맞추어 합창을 하고 손을 잡고 20평쯤 되는 실내를 요리조리 빙빙 돌았다. 마지막 만찬 행사로는 대성공을 거둔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짧은 일정은 이렇게 끝을 맺었으나 그 의미는 컸다. 앞으로 남북의 관계자들은, 고려 왕도인 개성의 역사유물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고 소중하게 가꾸어야 할 의무를 지게 된 계기였다. 민통선을 통해 돌아오는 길 역시 너무나 순탄했다.

돌아오는 길에 집행위원장을 맡아본 정태헌 교수(고려대)는 정신이 어리벙벙하고 쓰러질 정도로 마음이 복잡했다고 하소연했다. 북쪽 인사와 행사를 상의하면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다. 그는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못하는 ‘얌전이’이니 더욱 스트레스를 받았던 모양이다. 이것이 통일운동이 아니겠는가?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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