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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아서] 상정에만 3년 ‘민간인학살 통합특별법’ 끝내 부결 / 이이화

등록 2011-03-09 20:44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와 전국유족협의회 회원 200여명이 상복 차림으로 2004년 10월15일 서울 염창동 한나라당사 앞에서 ‘과거청산법을 만드는 데 동참하라’고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와 전국유족협의회 회원 200여명이 상복 차림으로 2004년 10월15일 서울 염창동 한나라당사 앞에서 ‘과거청산법을 만드는 데 동참하라’고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이화-민중사 헤쳐온 야인 105
2002년 무렵 두 가지 일을 기록해둘 필요가 있겠다. 우선 범국민위의 활동가인 강창일·이춘열·이창수·장완익 등 운영위원들이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대통령 후보를 면담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사건 규명을 위한 통합특별법’의 추진에 대한 기본 방침을 얻어냈다. 또 운동의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전국역사교사모임 등 26개 단체를 망라해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전국사회단체협의회’가 출범했다. 앞서 그해 1월에는 홍순권(동아대)·정근식(서울대) 등 전공학자들이 모여 제노사이드학회를 발족시켰고 범국민위에서는 박명림 교수(연세대) 등을 초청해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그해 12월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자 우리 관계자들은 희망이 보인다고 여겨 고무되었다. 그래서 찬성 쪽은 물론 방해·반대세력들에게도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는 여론 환기 행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조금 과격한 방법인 ‘농성’을 하기로 했다.

범국민위는 2003년 2월27일 국가인권위원회의 ‘몸땀휴’를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나는 그때 상임공동대표로서 인사말을 통해 “어떻게 된 일인지 새도 짹 소리 내야 알아주는 것같이 이 사회는 뭔가 물리적인 것을 동원해야 귀기울여 주는 것 같다”며 “이번엔 우리가 확실한 태도를 보여 유족들의 한맺힌 마음을 국회의원들과 많은 시민들에게 보여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는 농성을 벌이면서 인권위에 진정서도 제출했다. 이해동 목사와 내가 상임대표 자격으로 인권위 김창국 위원장을 방문했다. 먼저 사과의 말을 올렸더니 김 위원장은 “우리도 열심히 도와주는데 왜 이곳에서 농성을 하느냐”고 나무랐다.

2단계로, 4월1일부터 농성장을 국회 앞으로 옮겨 입법 투쟁에 나섰다. 6월 국회에서 입법을 해달라는 요구를 내걸었다. 그 과정에서 행정자치위 간사인 민주당 전갑길·한나라당 이병석 의원을 면담하기도 하고 강금실 법무부 장관과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을 면담하기도 했다. 모두 전향적인 답변을 얻어냈다. 우리는 또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하기도 하고 연달아 기자회견을 열어 성명서를 발표했으며 해원굿을 벌이기도 했다.

연로한 유족을 중심으로 농성에 참여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여의도의 찬바람 속에서 농성 천막을 지켰고 초여름에는 낮더위에 시달렸다. 농성자들은 맨바닥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버텼다. 이 무렵부터 여자 삼총사가 등장했다. 곧 강화도 유족인 서영선, 임실 유족인 박봉자, 여수 유족인 정혜선 등 세 할머니였다. 여삼총사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여러 가지를 챙겨주었고 격려를 해주었다. 나는 농성에는 참석하지 않고 집에서 2~3일마다 ‘출퇴근’을 하면서 음료수 따위 먹을거리를 챙겨들고 농성장을 기웃거리는 정도였다.

하지만 다수를 차지한 한나라당에서는 법안 심사를 다음 회기로 미루기로 결정했다. 114일간의 노숙 농성이 끝내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만 것이다. 허무했다.

그해 10월에는 김희선·윤철상 의원 등이 강력하게 밀어붙여 ‘과거사진상규명특위’를 구성하기로 결의하고 ‘6·25전쟁 휴전이전 민간인희생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등에 관한 법률안’(이하 통합특별법) 등 9개의 안건을 회부했다. 역시 부정적인 한나라당이 다수여서 지지부진하게 진행된 끝에 2004년 2월에야 겨우 법사위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다. 2001년 발의된 지 3년 만이었다. 그러나 한나라당 홍사덕 원내총무의 지시에 따른 상임운영위원회의 결정으로 다시 보류되고 말았다.


역사학자 이이화
역사학자 이이화
이라크 파병동의안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굵직한 현안들에 밀려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의 50년 한맺힌 분노가 또 한번 묻혀버린 순간이었다. 유가족 200여명은 여의도 한나라당사 앞에 모여 규탄집회를 열고 “노근리, 거창사건 관련법은 다 통과됐는데 통합특별법만 통과되지 않았다”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어 통합특별법안은 3월2일 어렵사리 본회의에 다시 상정되었으나 야당의 반대로 끝내 부결되고 말았다.

나는 채의진 선생과 범국민위 관계자 몇명과 국회 로비에서 모니터로 표결 과정을 지켜보다가 소리를 지르면서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길로 국회 앞 허름한 지하식당에서 폭음을 하면서 울분을 토해냈으나 대답 없는 메아리에 지나지 않았다.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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