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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아서] 18대 총선 통합민주당 공천심사 참여해 ‘쇄신’ 강행 / 이이화

등록 2011-03-21 20:35

2008년 2월24일 오전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손학규·박상천 통합민주당 공동대표로부터 공천심사위원 위촉장을 받고 있는 필자. 그 왼쪽이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은 박재승 변호사다.
2008년 2월24일 오전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손학규·박상천 통합민주당 공동대표로부터 공천심사위원 위촉장을 받고 있는 필자. 그 왼쪽이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은 박재승 변호사다.
이이화-민중사 헤쳐온 야인 113
2008년 설을 앞두고 오랜 친구인 박재승 변호사가 대통합민주신당(뒤에 통합민주당)의 18대 국회의원 후보 지역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았다며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함께 일을 하자”고 부탁했다. 나는 처음엔 거절했다. 하지만 ‘공천심사의 전권을 위임받았으니 민주 발전을 위해 공정하고 바른 공천 작업에 힘을 보태야 한다’며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참여를 강요하는 그에게 끝내 동의하고 말았다.

외부 심사위원은 모두 7명으로, 당규에 따라 모두 12명인 심사위원의 과반수 의결 정족수를 확보한 셈이었다. 박 위원장과 나를 비롯해 독립투사의 아들이요 임종국기념사업회 회장인 장병화(이하 존칭 생략), 언론인이요 연합뉴스 사장을 지낸 김근, 정치학자요 성공회대 교수인 정해구, 안동의 의사요 투자상담 전문가인 박경철, 시인이요 짚풀박물관 관장인 인병선 등이었다. 모두 개성이 강하고 특수한 분야에 일가견을 지닌 인물이었다.

우리는 우선 나름대로 큰 틀의 심사 규정을 준비하는 작업을 벌였다. 계파를 초월해 쇄신공천을 하되 무엇보다 비리 전력자를 배제하자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그 대상은 총선 또는 대선을 거치면서 당직자로 정치자금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부정 비리가 적발되어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인사였다. 이 기준은 박재승의 고심에서 나온 결단이었다.

외부 심사위원의 명단이 언론에 공개되고 배제 대상자의 추측 명단이 공개되자 당 안팎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비리 케이스’에 해당하는 인사들은 스스로 해명할 기회를 달라고 요구했으며, 유력한 인사들이 자기 나름대로 의견을 내고 기준의 융통성을 발휘하라고 설득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여러 의견을 들어보려 했지만 너무 혼란스러운데다 우리의 의지가 훼손될 것 같아 아예 ‘휴대전화’를 꺼놓고 지냈다. 여러 사람을 만나는 것도 옳지 않다고 판단해서 나름 조심했다.

무엇보다 당과의 관계가 복잡했다. 비리 전력자 배제 기준을 두고 당 대표 또는 최고회의와 마찰을 빚었던 것이다. 압력이 계속 들어왔다. 하지만 박재승은 처음의 뜻을 굽힐 줄 몰랐다. 예외를 두면 그 본질이 흐려지고 오히려 혼란이 가중된다는 것이었다.

심사 기준을 두고 논란을 벌이는 동안, 우선 손쉬운 면접심사부터 시작했다. 심사위원이 직접 개별 면접을 해 말솜씨와 인상, 포부 등 인물됨을 알아보려는 것이었다. 참으로 별별 종류의 인간형이 드러났다. 허장성세로 과장해 떠벌리는 사람, 간단한 대답으로 끝내는 사람, 땀만 뻘뻘 흘리면서 머뭇거리는 사람, 상식적 질문마저 대답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사람, 하느님 뜻으로 입후보했으니 하느님의 도움으로 당선될 것이라는 사람, 1년에 지역구 주민 주례를 400회 이상 서주고 회갑연에 1000회 이상 참석했으니 당선은 틀림없다고 떠드는 사람 등등 다양했다. 면접 절차에는 예외가 없었으므로 마지막날인 3일 오후, 박상천 대표를 상대로 면접을 했다. 어쨌든 당 대표를 비롯해 최고위원과 현역 의원들을 면접한 일은 우리 정당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우리가 그 첫 관례를 만든 것이다.

배제 기준을 준비하고 면접이 진행되던 와중에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한 일간지에 당에서 입수한 자료를 인용해 이른바 ‘호남 살생부’ 기사가 터진 것이다. 호남 현역 의원 15명의 명단을 싣고 물갈이 대상으로 꼽았다. 이 보도가 나가자 그야말로 소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특정 지역구에서는 경쟁 후보가 이를 수천장 복사해서 뿌리기도 했고 당사자나 그 가족들은 국회와 당사로 몰려와 항의하기도 했으며 지역구민이 떼지어 몰려와 시위를 벌였다.

아무튼 핵심 기준인 ‘금고 이상자’ 배제 원칙은 여러 갈래로 반대에 부닥쳐 진전이 없었다. 당에서는 여전히 정상참작과 사안에 따른 선별을 주장했다. 당사자들은 위법이라기보다 정치탄압이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박재승은 마지막 ‘압박카드’를 꺼냈는데 곧 아침 정례 기자회견에서 “비리와 부정 등 구시대적 정치행태로 국민의 지탄을 받은 인사를 반드시 공천에서 배제하겠다”고 선언해버린 것이다. 기정사실화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역사학자 이이화
역사학자 이이화
이를 다시 설명하자면, 뇌물수수와 알선수재와 공금횡령과 파렴치범과 개인비리 등등으로 형사범을 포함해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인사를 탈락 대상으로 한 것이다. 그리하여 박재승은 위원장으로서 전체 합의의 모양새를 갖추고자 각 위원들의 이견을 물었으나 뚜렷이 반대하는 위원이 없었다. 다음날 아침 기자회견 때 그는 ‘비리기준’의 통과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했다. 이 규정이 보도되자 시민들은 박수를 치면서 “공천 혁명을 이룩했다”고 환호했고, 덕분에 통합민주당의 인기가 상승기류를 탔다고도 했다.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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