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한국 정당 사상 전례가 없었던 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원회 활동은 당 안팎의 비상한 관심과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로 진통을 겪었다. 3월6일 서울 당산동 당사에 들어서는 박재승 위원장의 뒤편으로 공천 탈락 대상인 한 중진의원의 지지자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이화-민중사 헤쳐온 야인 114
통합민주당 18대 총선을 앞두고 박재승 위원장이 뚝심으로 배제 기준을 밀어붙인 덕분에 공천심사위원회는 조금 손쉽게 다른 규정을 만들 수 있는 여유를 얻었다. 최인기 의원이 낸 현역의원 교체 기준을 보면, 상임위 출석률, 본회의 출석률, 의총 출석률, 법안 발의와 통과 수, 중앙 당직과 국회직 공헌도 등 5가지로 잡았다. 우리는 이 기준에서 D를 맞으면 탈락시키기로 했다. 이 기준도 우리나라 정당 사상 또는 공천 사상 첫 도입의 기록을 세운 것이다. 또 호남 출신 의원 탈락은 그 특수성을 고려해 30%, 다른 지역 출신 의원은 20% 이하로 정했다. 그런 뒤 실사에 들어갔다. 특히 호남에서는 낮은 점수를 받은 9명의 탈락이 확정되자 빗발치는 항의와 해명이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개별 서류심사를 통해 위원들이 매긴 점수를 합산해 공천을 결정했다. 여기에도 새로운 규정을 마련했다. 하나는 음주운전으로 벌금형을 세번 받으면 탈락시키는 ‘삼진 아웃’ 벌점 규정이다. 사회질서와 법질서를 존중함을 강조하려 한 것이다. 또 하나는 언어 등 품위 규정을 뒀다. 여성 장애인 비하 발언을 일삼는다든지, 국회에서 면책특권을 믿고 허장성세 또는 막말을 한다든지,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발언을 일삼는다든지 하면 벌점을 준 것이다. 그 근거 자료는 국회 기록과 위원들이 직접 언론 보도를 모은 것을 활용했다.
아무튼 서류심사를 거치는 동안 몇 가지 특이사항을 발견했다. 무엇보다 재산 상태를 보면 평균 몇천만원에서 10억원 정도를 보유하고 있었다. 상세히 들여다보면 거의 아파트 등 집 한 채가 전부였다. 부모·배우자·직계의 재산을 모두 기재하였으니 열악한 수준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많은 자산가가 200억원 정도였는데 겨우 서너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를 한나라당 신청자들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라 한다. 민주화 운동을 한 신청자가 가장 열악했고 변호사들이 비교적 여유가 있었다.
1차 서류심사에서 가려낸 탈락자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은 자산가인 국창근·이창승 등이었으며 당적을 자주 옮긴 이인제 등도 포함시켰다. 2차로는 서류심사에서 압축된 후보들을 대상으로 여론경선에 부쳐 걸러냈다. 이어 마지막 단계로 지역여론을 토대로 2명씩을 경선에 부쳤다. 여성 후보에게는 본인 득표율의 15%를 가산점으로 주기로 했다. 최종 경선에 나선 2인에게는 결과에 승복한다는 서약서를 받았다.
그런데 지역경선을 해보니 지명도가 높은 현역의원이나 장관 등을 지낸 유명인사들이 대거 등장했다. 지역주민들은 입에 익숙하게 올라 있는 인사들을 먼저 떠올린 것이다. 또 지방의원을 지내거나 자치단체장을 지낸 인사들이 지명도가 높아 자질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높은 지지도를 받기도 했다. 그리하여 소신 있는 정치 신인이 등장할 통로가 차단되는 결과를 빚었다. 국민적 여망인 ‘현역의원과 기성 정치인 물갈이’가 한계에 부딪친 것이다.
우리는 사전운동에 해당하는 사례에도 어김없이 엄한 잣대를 들이댔다. 현역의원 지역구인 경기 안산 상록을 후보가 적발돼 탈락했으며, 불법 사례를 들어 서로 이의를 제기한 광주 서갑 등은 다시 여론조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일이 너무 촉박해 자체 조사로 이루어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그리하여 이의신청이 있어도 실사를 못한 지역도 많았다.
우리 위원들은 서류심사 자료를 보면서 한숨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영남지역은 40여곳에서 한 명도 신청자가 없었으며 충청·강원·경기도의 일부 지역에도 신청자가 없었다. 그 대신 호남지역에는 한 지역구에 많게는 10명 이상이 몰려들었다. 국회의원 150여명을 확보한 제1당의 모습이 이러했다. 왜 이 지경으로 위축되었는가? 어쨌든 단수 신청자 지역을 먼저 심사해 우선 61곳의 공천 명단을 2008년 3월6일 확정해 최고회의에 올려 발표를 기다렸다. 그런데 최고회의에서는 “검토한 결과, 심사 결과 보고 자료가 미비하다”는 반대의견이 제기되어 발표를 미뤘다. 심상치 않은 기류였다. 현역의원 또는 단수 신청자는 빨리 공천
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현장의 선거운동에서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아우성이었다. 곧 선거법상 3월10일부터는 당원 집회교육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상천 대표는 “도로 열린우리당이 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단수 지역이라도 현역 물갈이 차원에서 전략공천을 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참 뒤에 이루어질 호남 공천과 동시에 발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면서 제동을 걸었는데 이건 지분 챙기기를 도모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공심위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128곳의 공천을 완료했다.
역사학자
역사학자 이이화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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