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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찾아서] “바닥 민심으로 ‘격동의 역사’ 그리고 싶었는데” / 이이화

등록 2011-03-31 18:39수정 2011-03-31 18:46

이이화 역사학자
이이화 역사학자
이이화-민중사 헤쳐온 야인 121
어느덧 6개월 가까이 ‘길을 찾아서’를 연재하는 동안 나는 모르는 번호의 전화는 거의 받지 않았다. 너무나 귀찮게 하는 사람이 많아서였다. 말할 나위도 없이 그들의 얘기에는 칭찬의 말, 부탁의 말, 충고의 말이 뒤섞여 있었다. 아예 듣지 않는 게 더 편했다. 어떤 종류의 글이든 쓰는 시간에는 이러쿵저러쿵하는 얘기들은 도움보다 혼란을 더 조장한다고 느꼈다. 물론 스스로 의심이 나거나 판단이 주저될 적에는 조언을 구했다.

사실 나 자신 살아온 얘기를 쓰게 된다면 진솔하면서 과장 없이 담아내고 싶었다. 평소 역사인물이 될 만한 인사의 자서전이나 여느 사람들이 쓴 살아온 얘기를 읽다 보면, 자기가 모든 걸 다 한 것처럼, 또는 제 잘난 맛에 살아온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적절한 수준에 그쳐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내가 살아온 시대가 너무나 험악했고 격동의 세월이어서 현장을 통해 내 삶과 사회를 연결하는 사회사적 접근을 시도해 보겠다고 별렀다. 사회의 밑바닥을 그려내고 싶었던 것이다. 또 저 혼자만 잘살아 보겠다는 사람들의 얘기가 아니라 훈훈한 정담도 고루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음을 새삼 깨달았다. 세상을 자기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냉철한 이성이나 지나친 객관성은 오히려 초점을 흐리는 수가 있는 것 같았다. 그저 재미있고 의미가 조금 담겨 있으면 괜찮은 읽을거리가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험은 누구나 겪은 것이지만, 의미있는 경험은 다른 이들에게 삶의 지혜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한데 같은 줄거리를 두고 어느 독자는 지루하다고 하고, 어느 독자는 재미있다고 서로 엇갈리는 반응을 보였다. 저마다 보는 눈에 따라 다르게 평가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엮어가면서 기억이나 자료의 한계 탓에 확인할 수 없는 얘기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이따금 오류와 실수도 있었다. 여기에 오타까지 곁들여져 이름이나 숫자를 종종 헷갈리게 쓰기도 했다. 식은땀을 흘리면서 사과도 해야 했다.

좋은 글을 쓰려면 신문 같은 지면에 연재하지 말아야 한다는 ‘후회 아닌 후회’가 들 때도 있었다. 사실을 쓰든 픽션의 글을 쓰든 일정한 흐름이 이어져야 하는데 제한된 지면에 맞춰서 어느 대목에서는 끊어야 하는 공식 아닌 공식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괴로움보다 즐거움이 더 많았다. 내가 글에서 거론한 인물 몇 분이 작고하는 아픔도 겪었다. 앞에는 우윤·김점선, 뒤에는 리영희·이돈명·박완서 같은 분들이다. 이들과 다시는 정담을 나눌 수 없다니…. 어느 친구는 “자네가 존경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죽어야겠네”라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그립다. 나도 살 날이 많지 않으니….

지금까지 열심히 읽어주면서 나에게 도움말을 준 분들이 여럿 있지만 여기에서 굳이 이름을 다 밝힐 수는 없겠다. 또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앞서 항의도 여러 번 받았는데, 무엇보다 담당 편집자들의 고심과 수고가 많았다. 글 내용에 맞게, 나도 모르는 옛 사진을 찾아 실어줘 놀란 적도 있었다.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정읍 황토현 동학기념탑 제막식에 참석한 사진이 대표적인데, 하나의 시사를 던지는 사료였다.

아무튼 과락은 면한 것 같지만 합격점은 못 되는 것 같다. 못다 한 얘기들, 부실한 얘기들, 부정확한 얘기들은 앞으로 책에서 내용을 더 보충하고 바로잡아 풀어볼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일 말은, 혹여 누군가를 꾸짖거나 비난한 내용이 있었다 해도 결단코 당사자의 인격을 모독하려거나 감정을 사려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엄혹했던 시대 상황이 때때로 인간관계마저 갈라놓기도 했기에 이해를 구할 따름이다. 끝으로 가장인 내 삶이 특이해서였는지, 아들과 딸도 조금은 남다른 성장과정을 겪은 까닭에 꼭 소개해보라는 지인들의 권유를 들어주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그 역시 책에는 늘어놓고 싶다. 독자들의 애정에 거듭 감사의 말을 전한다.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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