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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말 한마디에 부모도 아이도 울고 웃어

등록 2011-04-04 09:53

부모와 자녀의 대화에서 열쇳말은 ‘존중’이다. 서로를 인격체로 여기는 마음이 없이는 원만한 관계도, 대화도 불가능하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부모와 자녀의 대화에서 열쇳말은 ‘존중’이다. 서로를 인격체로 여기는 마음이 없이는 원만한 관계도, 대화도 불가능하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함께하는 교육] 기획/
청소년기엔 뼈아픈 말 기억 잘 해
질문→공감→대화순으로 말하기
사춘기 자녀와 부모의 대화법

올해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간 김정형군은 요즘 엄마와 전투중이다. 지난 겨울방학 때만 해도 원만했던 모자관계는 김군이 새 학년에 올라가 새로운 친구를 사귀면서부터 틀어지기 시작했다. “노스페이스 사려고 돈을 모았는데 자꾸 뭐라고 하잖아요. 내 돈 내가 쓰는 건데 왜 뭐라고 하죠? 친구들 중에 이거 없는 애는 정말 없어요.” 김군의 어머니 양아무개씨 생각은 달랐다. “2학년 올라가더니 브랜드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브랜드에 목을 맵니다. 애들 용돈으로 구입하기에는 큰돈인 거 아세요? 솔직히 돈 때문에 뭐라고 하는 것만도 아닙니다. 이렇게 뭔가에 몰두할 기운이 있으면 공부에 신경을 써야죠. 그 열정이면 외고 가고도 남아요.” 사실 김군과의 대화에서 엄마가 했던 말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김군은 “성적 문제를 건드리는 것도 정말 싫지만 친구랑 비교하는 말을 해서 내 자존심을 완전 밟아버렸다”고 했다. “아빠 친구 아들 얘기를 하더라구요. 그러면 엄친아 같은 애나 입양하지 나를 왜 데리고 살아요.”

‘사랑과 전쟁’이 따로 없는 김군네 전투에서 전쟁 선언은 누가 먼저 한 걸까? ‘엄마만’ 잘못한 것은 아니지만 엄마의 잘못이 크다. 연인 사이에서 과거 연인과의 비교는 이별로 이어지는 것처럼 부모 자식 관계에서 ‘엄마 친구 아들’ 또는 ‘아빠 친구 아들’과 비교하기는 전쟁 선포나 다름없다.

김군네 사연이 ‘옆집 얘기’로만 들리지 않는 부모들이 많다. ‘말’이 문제다. “김연아 봐라!” “박지성처럼 자라야 하는데….” 아이들은 무심코 던진 부모의 몇 마디 말에 상처를 받고 마음의 문을 굳게 닫는다. 물론 “내 돈 갖고 내가 쓰는데 왜 참견이냐?”는 자녀의 말 앞에서 웃으면서 대화를 시도할 부모는 없다. 많은 부모들이 초등학교 고학년 때까지 말 잘 듣던 아이가 부모의 말을 비꼬아 듣거나 반항적으로 행동하는 통에 당황한다. 하지만 단순히 자녀가 변했다고 몰아붙일 일만은 아니다. 부모교육전문가 김민자씨는 “부모들은 아이가 변했다고 생각하고 아이처럼 상처를 받지만 엄밀히 말하면 자녀는 자기 의지나 생각을 좀더 적극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의지가 있고, 의지대로 행동하고 싶어 하잖아요. 기고, 걸으려고 할 때부터 그런 의지가 있는데 그때는 잘 안 보이다가 자아가 강해지는 사춘기 때 의지가 두드러지게 보이는 겁니다. 성장의 과정인 거죠.”

부모 자식 사이에 말은 하되 소통은 안 되는 현상은 우리나라에서 두드러진다. 불통의 중심에는 늘 ‘공부’가 있다. 전문가들은 “부모세대가 ‘정해진 성공’에 대한 강박이 크다”고 말한다. 김씨는 “사회적으로 잘나가는 직업들, 의사·판사·검사가 되려면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불안과 강박이 있다”며 “세상이 강요하는 ‘성공’을 좇으려니 모든 대화가 공부 얘기로 흐른다”고 했다.

말이 변하려면 생각이 먼저 변해야 한다. 중요한 건 이제라도 자녀교육에 대한 철학을 갖는 것이다. 김씨는 “일단 아이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버려야 하고, 성공에도 여러 길이 있다는 것을 부모 스스로 알고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픈 말들은 자녀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하는 거잖아요. 부모님이 생각하는 성공을 하려면 성적이 올라야 하는데 안 오르니까 속상하죠. 또 아이가 반항하면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하게 되구요. 이 과정에서 후회할 말들이 막 튀어나오는 겁니다. 무엇보다 부모님들이 세상 공부를 하셨으면 좋겠어요. 직장이 중요했던 시대에서 직업이 중요한 시대로 가고 있잖아요. 공부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의 개별적인 장점을 칭찬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춘기 자녀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도 필수다. 정신과전문의 문지현 미소의원장은 청소년기를 ‘덜 굳은 찰흙’에 비유했다. “성격이 완전히 형성된 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주변에서 뭔가로 찌르면 찌른 대로 모양이 남습니다. 좋은 얘기는 좋은 흔적을 남기고, 아픈 얘기는 아픈 흔적을 남긴다고 보시면 됩니다.”


특히 청소년기에 들은 뼈아픈 말은 오래간다. 문씨는 “청소년기는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이 부족하고, 단편적인 말 가운데서도 아픈 말을 깊게, 오래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고 했다. “장난처럼 ‘너는 아빠 닮아서 못생겼다’고 말한 것도 참 오래 기억합니다. 아빠가 밖에서 겪은 일로 짜증이 나서 한 말로도 아이들은 자기를 미워하고 싫어한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문씨는 “매를 맞아서 생긴 멍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매를 맞을 때의 수치심, 분노는 오래간다”며 “특히 내성적인 아이들은 부정적인 말만 추려서 듣기도 한다”고 했다.

“나도 내가 왜 이렇게 신경질을 내는지 모르겠어요.” 부모한테 툴툴거리는 아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청소년들은 전두엽이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모든 행동을 합리적이고 타당하게 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김씨는 “이런 시기이기 때문에 어른인 부모가 아이한테 전두엽 구실을 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자녀와의 대화에서도 요령이 필요하다. 우선 자녀한테 말을 하기 전에 혼잣말로 질문을 던져보는 습관을 기르는 게 좋다. 김씨는 “‘저 아이가 왜 저럴까?’라고 자녀의 행동에 의문을 가져보라”고 충고했다. “브랜드에 목매는 아이를 보면 당연히 화가 치밀죠. 하지만 한숨 참고, ‘왜 저걸 저렇게 갖고 싶어 할까?’라고 의문을 가져보세요. 이건 아이를 한 사람의 인격체로 봤을 때 가능한 일이죠. 그리고 잘 생각해보신 다음에는 아이의 말에 공감을 해주세요.”

자녀의 생각을 존중하고, 공감해주는 것이 무조건적인 허용의 의미는 아니다. 흔히 부모들은 자녀의 말에 무한한 공감을 했을 때 아이가 비뚤어지거나 부모의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게 될 거라고 염려한다. 하지만 김씨는 “일단 공감을 한 뒤에 엄마의 생각을 차분하게 설명하는 걸로 순서를 바꾸는 요령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이들도 공부해야 한다는 건 알아요. 사실 그 소리가 듣기 싫은 게 아니라 자신이 존중받고 있고, 가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은 겁니다. 인정을 먼저 해 주세요.”

말로 소통이 어렵다면 글로 대신해보는 것도 좋다. 김씨는 실제 사춘기를 심하게 겪었던 딸과 편지로 대화를 나눈 경험이 있다. 문씨는 “편지를 쓰면 감정이 폭발할 때 한숨 참고 들어갈 수 있어서 좋다”며 “물론 써놓고 다시 읽어봐서 보내지 말아야겠다고 판단할 때도 있을 거”라고 했다.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안에 있는 것들을 털어내는 치유 효과가 있거든요. 그것만으로도 어머니 마음이 조금은 나아질 수 있죠.”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는 사실상 자녀처럼 사춘기를 겪는다. 문씨는 “아이와 함께 상담을 받으러 온 부모님들이 ‘상담은 내가 받아야 할 것 같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며 “누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원칙은 없다”고 했다. “누구라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변화의 동력을 마련할 수 있겠죠. 이 시기, 부모님들은 중년을 맞고, 삶의 반환점을 돕니다. 몸도 마음도 힘든 시기죠. 자녀들이 먼저 손을 내밀고 변화할 때 부모도 달라질 수 있다는 걸 학생들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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