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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김창석 기자의 서술형 논술형 대비법

등록 2011-04-18 10:59수정 2015-05-26 15:03

(44) 중간영역의 글 재료를 찾아라
좋은 글은 뇌를 깨우는 글이다. 뇌의 대뇌피질이 글이라는 외부자극에 반응하려면 글의 내용이 적절해야 한다. 너무 식상해서도 안 되고 너무 어려워서도 안 된다. 적당한 흥미와 적절한 관심을 끌 수 있는 재료를 써야 한다는 얘기다. 논술처럼 논픽션 영역의 글이 성공하려면 여러 글 재료 가운데 최적의 재료를 골라야 한다.

먼저 너무 식상한 영역에 해당하는 재료는 배제하는 게 좋다. 너무 많이 알려져서 상식에 속하거나, 귀가 닳도록 들었을 상투적인 내용이라면 뇌는 반응하지 않는다. 누구나 다 아는 사자성어로 시작하는 글은 지루하기 십상이다. 깊이가 없는 피상적·표면적 내용이나 무난하게 옳은 얘기를 하는 교훈적·원론적인 내용 역시 이 영역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뻔한 얘기를 고민 없이, 깊이 없이, 문제의식 없이 반복하게 될 경우에 이런 글 재료가 된다.

너무 어렵거나 전문적인 영역의 재료도 피해야 한다. 학술적인 내용을 학술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글도 여기에 해당한다. 짜깁기 방식으로 쓰여진 논문을 재미있게 읽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소수 전문가들이 알 정도로 어려운 얘기, 특정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만이 아는 얘기도 많은 이의 공감을 사기 어렵다. 의사나 변호사, 교수들이 대중적인 글쓰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언어를 어떻게 대중적인 언어로 바꿀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읽는 이가 아무리 열정을 가졌더라도 숫제 모르는 내용으로 가득찬 글을 읽어내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어려운 것을 쉽게 풀어내는 능력은 글쓰기 능력 가운데서도 최상위급에 해당하는 고급 능력으로 여겨진다.

두 영역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글의 재료들을 고르는 게 좋다. 너무 쉽지도 어렵지도 않은 내용이 좋다. 너무 식상하거나 너무 전문적이지 않은 내용이 좋다는 얘기다. 이런 영역의 글 재료는 읽는 이의 흥미를 돋운다. 주목도가 높아진다. 읽는 이의 뇌세포가 쉽게 자극을 받는다. 잘 읽으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많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다음 문장에는 어떤 내용이 나올까, 다음 문단에는 어떤 내용이 이어질까를 궁금해할 내용으로 꾸며야 성공적인 글이 된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인간의 뇌 때문이다. 뇌는 보통 예상 가능한 일이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대신 예측한 일이 보기 좋게 빗나가거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때 인간의 뇌는 긴장한다. 이는 뇌과학이나 인지심리학이 이미 입증한 내용들이다. 개그나 코미디를 보면서 웃는 순간을 돌이켜보라. 그 순간은 항상 자신이 예상하는 내용이 뒤집힐 때다.

예를 들어 ‘배우기를 좋아했던 세종대왕의 면모’를 보여줄 목적으로 쓰여진 글이라고 해보자. “세종대왕은 그 어떤 왕보다 학문을 사랑한 군주였다”고만 쓴다면 식상한 영역에 해당한다. 누구나 쓸 수 있는 내용의 글이라고 평가된다. 반면에 ‘세종대왕은 예술 영역을 이해하기 위해 당시 전문가들도 이해하기 어려웠던 이러저러한 책들을 읽었다’고 하고 책 제목을 단순히 열거하기만 한다면 너무 전문적이거나 학술적인 내용으로 비칠 수 있다. 대신 “세종대왕은 책을 좋아해서 밥을 먹을 때도 밥상에 책 2권을 동시에 올려놓고 번갈아 보면서 식사를 했다는 내용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돼 있다. 또 사신이 일본에 갈 때는 자신이 읽고 싶은 책 제목을 알려주고 꼭 구해오라는 부탁을 하곤 했다”는 식으로 쓴다면 중간영역에 해당하게 될 테다. 뒤에 어떤 얘기가 이어질지 궁금증이 더해진다.

‘글쓰기 재료의 중간영역’을 많이 확보하는 사람이 글을 잘 쓸 수 있다. 그러려면 일단 글을 쓰기 전에 입력한 자료가 많아야 한다. 언제나 써야 할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자료를 읽어야 한다. 글의 힘은 가장 도움이 되는 일부분의 내용을 추려내기 위한 여분의 자료가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 비례하는 경우가 많다. 입력된 자료가 많을수록 중간영역에 해당하는 자료도 많아진다.

kimcs@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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