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5월22일 서울대 문리대 운동장에서 열린 대한교원노조연합회의 결성식 장면.(<조선일보> 5월23일치) ‘4·19교원노조’로도 불리는 이 조직은 이듬해 5·16 군사쿠데타 세력의 탄압으로 1년 만에 해체됐다.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19
1960, 70년대 우리나라의 정치·사회 상황은 내게 많은 고민과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학교에서 동료 교사들과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혼자 책을 보며 풀기도 했다. 어려운 생활에도 잊지 않고 찾아 읽었던 책 중 하나가 월간 <사상계>였다. 매달 잡지가 나오는 날에 맞춰 서점 가는 일이 참으로 즐거웠고 열심히 탐독했다.
‘4·19혁명’과 ‘5·16 군사쿠데타’ 그리고 박정희 정권의 독재를 겪으면서 암담한 심정으로 지내던 20대 후반, ‘사상계 읽기’는 내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그즈음 읽었던, 미국의 어느 양심있는 학자가 한 말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엄청난 국민의 의거였던 4·19혁명을 퇴색시키고 총칼과 군홧발을 앞세워 일으켰던 5·16쿠데타로 인해 코리아는 이제 앞으로 50년 내지 100년은 후퇴할 것이다”라는 내용이었다. 당시에는 ‘설마, 그렇게까지 후퇴하랴!’ 생각했다. 그러나 50여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 현실을 보면서 그 예측은 너무나 적중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학교에서는 5·16을 쿠데타가 아닌 혁명으로 가르쳐야 했고, 박정희 정권은 물질의 풍요가 곧 선진국이 되는 핵심인 양 내세우며 우민정치를 실시했다. 경제성장이 정치·사회·문화 발전과 균형을 이룰 때라야 올바른 발전, 진정한 도덕사회가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잘사느냐에 대한 고민 없이 ‘잘살아보세, 잘살아보세’ 구호를 앞세운 경제성장 정책으로 인한 황금만능주의의 폐해를 우리는 지금 보고 있지 않은가? 물질의 풍요만으로 선진국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 미국 학자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것이 무척 아쉬울 따름이다.
박정희 정권은 독재유지를 위해 빵과 서커스만 있으면 된다는 논리로 국민들의 비판의식을 약화시키려 했고, 특히 언론과 교육 탄압에 열을 올렸다. 4·19교원노조(대한교원노동조합총연합회) 탄압이 대표적이다. 당시 교원노조에 참여했던 선배들의 이야기가 이를 증명해 준다. 60년 4·19 혁명으로 조성된 정치·사회적 자유 분위기 속에서 결성된 4·19 교원노조에는 전체 교원 8만3000여명 가운데 상당수가 동참했다고 한다.(<교육연감> 1만3000여명, 참여교사들 증언 4만여명) 그런데 5·16이 일어난 바로 다음날인 5월17일부터 벌어진 소탕작전에 의해 와해되고 말았다.
당시 4·19교원노조 사무국장을 맡았던 이목(당시 경북사대부고 교사) 선생님도 61년 5월18일 오전, 학교 근무 도중 영장도 제시하지 않은 대구경찰서 정보과 형사들에게 끌려갔다고 한다. ‘특수 반국가 행위’로 기소돼 5·16 쿠데타 주역들이 설치한 혁명재판소에 의해 10년형을 선고받고, 65년 특별사면으로 석방될 때까지 5년간 징역살이를 해야 했다. 2009년 출판된 이목 선생님의 옥중서간집 <붉은 담 안에서 전한 사연>에 자세히 나와 있다. 이 선생님은 50여년 만인 지난해 4월21일 대구지방법원(제11형사부)에서 무죄판결을 받았고, 이어 11월 대법원에서도 무죄가 확정됐다. 역사는 전진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참으로 다행스런 판결이 아닐 수 없다.
69년 중·고교에는 교련 교과가 신설됐다. 간호고교를 졸업한 뒤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던 양호교사들까지 고교 교련교사로 배치했다. 처음에는 담임은 안 시킨다고 했다가 이후에는 담임도 맡기고 교감, 교장까지 한 교련교사도 있었다. 학생들을 운동장에 모두 모아놓고 교련 훈련을 시키곤 했는데 초창기에 한 젊은 여선생님은 “여학생들한테 교련 훈련이 왜 필요합니까?” 하며 몹시 마음 아파 했다. 여학생들을 일사불란하게 열지어 세워놓고 사열·분열·열병 등을 하고 행렬하며 본부석을 향해 거수경례까지 시키는 등 학교에서 연출되는 군사훈련 모습이 참담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을 떠올리자니, 국민의 힘에 의해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던 4·19 혁명의 기억이 더 새롭게 다가온다. 4·19 당시 서울 수송초교 4학년 강명희 어린이가 쓴 시 ‘오빠와 언니는 왜 총에 맞았나요’를 다시 읽어본다.
‘아! 슬퍼요/ 아침 하늘이 밝아오며는/ 달음박질 소리가 들려옵니다./ 저녁 노을이 사라질 때면/ 탕탕탕탕 총소리가 들려옵니다/ 아침 하늘과 저녁 노을을/ 오빠와 언니들은 피로 물들였어요 … 나는 알아요 우리는 알아요/ 엄마 아빠 아무 말 안 해도/ 오빠와 언니들이 왜 피를 흘렸는지를 … 오빠와 언니들이/ 배우다 남은 학교에서/ 배우다 남은 책상에서/ 우리는 오빠와 언니들의/ 뒤를 따르렵니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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