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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찾아서] 연수 뒤 돌아온 광주…“군이 시민을 마구 죽였어요” / 정해숙

등록 2011-06-14 20:00수정 2011-06-15 17:55

1980년 ‘5·18 학살’ 이후 필자(왼쪽)는 동료 교사들과 광주 무등산에 자주 올랐다. ‘폭도 누명’을 뒤집어쓴 채 침묵을 강요당했던 광주 시민들은 산에서나마 울분을 토로하고 위안을 받곤 했다. ‘절친’ 이경희 교사(가운데)는 80년대 중반 끝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고 말았다.
1980년 ‘5·18 학살’ 이후 필자(왼쪽)는 동료 교사들과 광주 무등산에 자주 올랐다. ‘폭도 누명’을 뒤집어쓴 채 침묵을 강요당했던 광주 시민들은 산에서나마 울분을 토로하고 위안을 받곤 했다. ‘절친’ 이경희 교사(가운데)는 80년대 중반 끝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고 말았다.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22
1979년 여름을 지나면서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정점으로 치닫고 있었다. 부산에서부터 피어오른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불씨는 그해 10월 부마항쟁으로 폭발하면서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결국 ‘10·26 사태’로 박정희 군부독재 정권은 종말을 고했다.

유신체제가 무너지자 민주화의 봇물이 터졌다. 80년 서울의 봄, 바로 그 5월11~17일(68시간 연수)에 나는 서울에 올라와 새마을 연수를 받고 있었다. 중앙교육연수원 주관 아래 전국 각 시·도별로 중등 여교사들을 지명선발해 삼청동 새마을연수장에서 일주일 동안 진행됐다. 대부분 중진급 교사들이었고, 합숙을 하며 연수를 받았다.

새마을 연수라는 명칭에서 짐작하 듯 강의 내용은 박정희 정권 홍보에 대한 것이었다. 하루는 어느 교수가 아무런 강의 자료도 없이 들어왔다. ‘경험이 많아서 자료를 안 봐도 되는 숙달된 강사인가?’ 나 혼자만 짐작했다. 그런데 한 시간 내내 듣다 보니 너무나 자존심이 상했다. ‘경상도에서 온갖 물건을 만들어내면 전라도는 그것을 그냥 가져다 쓰니 전라도는 경상도의 속국이나 식민지와 같다’는 식의 표현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것이었다. 그 강사는 지역차별적인 내용만 일방적으로 쏟아놓더니 질문도 받지 않고 나가버렸다. 그 태도가 불쾌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곧바로 쫓아나갔다. 그는 대기실로 막 들어가려는 순간이었다. “교수님” 불렀더니 돌아봤다. “교수님 강의 잘 들었습니다. 저는 광주에서 온 교사입니다. 오늘 교수님 강의 중 어떻게 전라도가 경상도 속국이라느니 식민지라느니 이런 표현을 할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강의자료도 없이 연수생들을 이렇게 무시하는 강의를 해도 됩니까?” 내 항의성 질문에도 그는 “그게 어째서요?” 하면서 지체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참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지만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강의장으로 돌아오니 옆자리에 앉아 있었던 대전에서 오신 국어과 선생님(시인)께서 “강의 끝나자마자 빨리 나가더니 어디 갔다 왔냐?”며 궁금해했다. “금방 그 교수한테 항의하러 갔다 왔다”고 했더니 자기도 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공감을 했다. 나는 다음 강의 시간에도 그 생각이 지워지지 않아 제대로 듣지도 못했다. 국가예산으로 이런 강의를 들어야 하는 것인지, 시간 낭비요 예산 낭비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 씁쓸한 경험이었다.

5월17일 현장 견학차 임진각을 다녀온 뒤 연수를 마쳤다. 그런데 새마을연수장을 나와 서울 시내로 쉽게 접근할 수가 없었다. 삼청동을 거쳐 광화문으로 나와야 하는데 민주화 시위 행렬로 길이 꽉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 가족은 남편 사업과 아이들 학교 때문에 서울과 광주에서 두 집 살림을 하고 있었다. 셋째아들(창수)과 막내딸(승인)은 남편이 서울에서 돌보고 있었고, 등록금 부담을 덜고자 국립대인 전남대로 진학한 맏아들(규석)과 둘째아들(규욱)과 함께 나는 광주에서 지내고 있었다. 연수를 마치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오랜만에 서울의 두 아이를 만났다. 마침 일요일이었던 18일 오전 초등학생인 남매를 데리고 운현궁 나들이를 했다.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그날이 바로 ‘5·18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난 날이었지만, 철저한 보도통제로 나를 비롯한 서울에서는 광주에서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까맣게 모른 채 그렇게 평화로운 봄날 하루를 즐겼던 것이다.


이튿날부터 출근을 해야 했기에 나는 그날 오후 늦게 당시 대인동에 있던 광주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일주일간의 연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라 여행가방이 무거워 택시를 타야 했다. 집 방향을 일러주며 가자고 했는데 택시기사는 바로 출발을 하지 않았다. 다시 “어디로 가냐” 묻기에 “월산동”이라 했더니 “거기 같으면 괜찮다”고 했다. “아니, 어째서요. 왜 그런데요?” “아! 어제 사람이 많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금남로나 충장로 시내 쪽으로는 지금 갈 수가 없습니다.” “어…어째서요?” “아, 군인들이 시민과 학생들을 막론하고 시위대들을 마구마구 죽였어요. 서울은 괜찮았나요?”

뉴스에서도 듣지 못했고, 가족들한테 특별한 연락도 없었던 터이니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얘기들이었다. 나는 더 되물을 용기가 나지 않아 말없이 집으로 향했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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