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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찾아서] 처참한 ‘광주의 봄’…“계엄군이 들이닥친대요!” / 정해숙

등록 2011-06-15 19:51수정 2011-06-15 19:54

1980년 ‘5·18’ 당시 전남대를 다니던 필자의 두 아들은 공수부대원들의 학살만행 현장을 눈으로 보고 겪었다. 학교에서 최루탄에 얼굴을 맞기도 했던 둘째아들 정규욱(왼쪽 둘째 흰옷 차림)씨가 시민군이 계엄군을 물리치고 ‘해방구’를 선언한 뒤인 25일 무렵 시민들과 트럭을 타고 전남도청으로 향하고 있다. 97년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에서 펴낸 <1980년 광주민중항쟁 기록사진집-오월 광주>에서 뒤늦게 발견한 모습이다.
1980년 ‘5·18’ 당시 전남대를 다니던 필자의 두 아들은 공수부대원들의 학살만행 현장을 눈으로 보고 겪었다. 학교에서 최루탄에 얼굴을 맞기도 했던 둘째아들 정규욱(왼쪽 둘째 흰옷 차림)씨가 시민군이 계엄군을 물리치고 ‘해방구’를 선언한 뒤인 25일 무렵 시민들과 트럭을 타고 전남도청으로 향하고 있다. 97년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에서 펴낸 <1980년 광주민중항쟁 기록사진집-오월 광주>에서 뒤늦게 발견한 모습이다.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23
1980년 5월18일 늦은 오후 서울에서 광주로 내려온 나는 택시기사한테 들은 믿기지 않는 이야기에 불안한 발걸음으로 아파트 현관 벨을 눌렀다. 한참 만에야 문이 열렸는데 전혀 모르는 청년이 문을 열어줬다. ‘여기가 우리집이 아닌가? 일주일 만에 오는 길인데…, 잘못 들어왔나?’ 머뭇거리는 나를 보더니 그 청년이 말했다. “엄마, 나야!” 목소리를 들으니 틀림없이 둘째 규욱인데 얼굴은 알아볼 수가 없었다. 깜짝 놀라 가방을 놓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너, 얼굴이 왜 그러냐?” 했더니 학교에서 최루탄을 얼굴에 맞아 부어올랐다고 했다. 그때 맏아들 규석은 전남대 치대 2학년이었고, 규욱이는 공대 1학년이었다.

“이 지경이면 빨리 병원에 갔어야지?”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러시네요. 병원에도 전부 최루탄을 던져서 들어갈 수가 없어요. 수술실에도 군인들이 쳐들어가서 최루탄을 터뜨렸다니까요. 그리고 나처럼 다쳐서 병원에 가면 군인들이 모두 잡아가요.”

한마디로 광주는 처참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그런 줄 까맣게 모르고 서울 아이들과 한가롭게 궁궐 구경을 했다니…, 생각할수록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규욱이의 상태가 몹시 걱정스러워 이비인후과 전문의인 이진기 박사한테 전화로 상담을 했다. 이 박사는 내가 의대 다닐 때 학장을 지낸 은사였고, 친구의 부친이기도 했다. “최루탄을 맞아 코가 퉁퉁 부어오르고 얼굴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인데 병원에도 갈 수 없으니 어떻게 치료해야 됩니까?” 이 박사는 ‘일단 손대지 말고 약국은 열려 있으니까 약을 사다 먹이고 자주 닦아주라’고 일러줬다. 그 혼란스런 상황에도 약국이 모두 열려 있었으니 참으로 대단한 일이었다. 덕분에 급한 대로 집에서 치료를 했다.

이튿날인 5월19일 유동에 있던 북성중학교로 출근을 하는데 온 시내가 어수선하기 그지없었다. ‘서울의 봄’이 이른바 5월17일 서울역 회군으로 멈칫하는 사이 ‘광주의 봄’은 국가폭력의 표적이 된 것이었다. 학교에 못 나온 아이들도 많아서 오전수업만 한 뒤 교사들도 일찍 퇴근했다. 그러나 라디오·텔레비전·신문 어디에도 광주의 참상은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그러자 시민들의 분노는 한층 더 치솟았고,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매도하며 관제방송만 해대던 <광주문화방송> 건물은 그날 밤 불길에 휩싸였다. 그날따라 비까지 추적추적 내려 광주의 처절함을 더욱 깊게 했다.

집에 돌아오니 두 아들이 가방에 짐을 싸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 우리 출발해야 되겠습니다.” “어디로 출발하는데?” “오늘 저녁 공수부대원들이 집집마다 수색해서 청년·학생들을 무조건 연행해 갈 것이래요. 집에 있으면 큰일 날 테니 모두 피신하라고 학교에서 연락이 왔어요. 목포 사촌이모 집에 가 있을게요.” 너무나 당황스러워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안 돼. 가면 안 돼. 가지 말고 들어와라.” 잠시 멈칫하다 가까스로 몇마디 하려는데 두 아이는 이미 현관에 나가 서 있었다. 환자를 수술하는 병원에까지 무차별적으로 최루탄을 던지고 총칼과 군홧발로 난입해 시민들을 끌어가는 무도한 상황을 직접 경험한 아이들은 어떻게든 피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순간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지만 나는 또 한번 ‘안 된다! 일단 들어와라. 가더라도 내 말 듣고 가라’고 다그쳤다. 그래도 주저하던 아이들은 가방은 그대로 둔 채 마지못해 다시 들어왔다. 그래서 같이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물론 그때 아이들을 붙잡아 두었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나도 자신을 못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너희들, 난세일수록 움직이는 것이 안 좋다는 옛말이 있어. 세상이 이렇게 혼란스러운데…. 만일 무슨 일을 당하더라도 나랑 같이 당하자. 너희들만 따로 보낼 수 없다. 문밖에 나가면 한치 앞을 알 수 없는데 건장한 청년 둘이 가방까지 들고 나서다니.” 두 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으로 봐서 너희들 지금 움직이지 않는 게 좋겠다. 저녁에 만일 공수부대들이 들이닥치면 같이 당하자. 그리고 우리만 있냐. 집집마다 젊은 아이들 있지 않냐.” “엄마, 다른 애들은 다 피신했어요. 우리는 엄마 오면 말하고 가려고 기다렸어요.”

그 막막하고 불안한 심정을 도저히 말로 표현할 길이 없었지만, 그래도 나는 끝까지 두 아들을 붙들 수밖에 없었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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