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27일 새벽 시민군의 마지막 항전을 진압한 계엄군은 다시 장악한 전남도청 앞에 탱크 2대를 진주시킨 채 시민들의 일상까지 삼엄하게 감시했다. 필자는 바로 그런 도청에서 일하고 있던 지인을 통해 <전남매일신문> 1면에 실린 김준태의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복사해 전국에 돌렸다.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26
국가 폭력에 의한 ‘광주 5·18’의 참상과 시민들의 무참한 희생을 알려야겠다는 나의 심정은 절박함에 가까웠다. 누가 시킨 것도,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란 것도 아니었다. 광주를 직접 겪었던 한 사람으로서 광주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리는 것이 수많은 주검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라는 생각만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전남매일신문>에 실린 김준태 시인의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에게 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끝에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손으로 일일이 쓸 수는 없는 일, 복사를 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는 복사기가 드물었을뿐더러 복사집이나 인쇄소까지도 감시를 받던 무시무시한 시대였다. 앞선 이론이나 시대상을 비판하는 이른바 진보적인 내용이 담긴 책이나 자료들을 불온시하며 읽는 것조차 철저히 감시하던 때였다. 그래서 구하기 어려운 자료들은 비밀리에 복사해서 돌려보곤 했다. 정보기관들은 복사집들로 하여금 무슨 내용의 자료를 복사해줬는지 시청이나 동사무소에 보고하도록 감시했다. 이런 상황에서 복사점을 찾아가는 것은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복사기가 있는 곳을 물색하던 끝에 도청 여직원에게 부탁해보기로 작정했다. 오래전 테니스를 함께 배우며 알고 지내던 여직원으로, 운동을 좋아하니까 성격도 담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퇴근 뒤 만나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안부를 나눈 뒤 김준태 시인의 시를 보여주며 조용히 이야기를 꺼냈다. “이 시를 다른 곳에 보내고 싶은데 신문사에는 더이상 없어요. 복사를 해야겠는데 복사집에서는 하기가 어렵잖아요. 도청에는 복사기가 있으니까 좀 할 수 없을까요? 지금 당장 대답 안 해도 돼요. 가서 한번 상황을 봐요. 나야 꼭 했으면 좋겠지만 무리하면 안 돼요. 자신 없으면 절대 하지 말고 가능하다 판단될 때 해요.”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시가 실린 신문을 한 장 건네줬다.
그때 전남도청 주변 상황은 살벌했다. 정문 양쪽에서는 위압적인 탱크 두 대가 서 있고 총을 든 계엄군들이 지키고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탱크 두 대였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경계의 눈이 감시를 하고 있지 않았겠는가?
이틀 뒤 그 여직원한테서 ‘몇 시에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나는 속으로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못내 궁금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복사를 해 가지고 나왔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라’ 부탁했지만 기대보다 훨씬 많은 양이었다. 그 복사본을 받을 때 내 손은 몹시 떨렸고 여직원은 ‘영웅’처럼 위대해 보였다. 계엄군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 도청 안에서 그런 용기를 낼 수 있다니. 정작 부탁을 한 건 나였지만 ‘나라면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여직원의 용단과 대담함이 놀라웠고 가슴은 벅찼다. 이제 그도 60대 후반 초로의 할머니가 되었을 텐데…, 내가 전교조 활동에 뛰어든 이후 바쁘다는 이유로 연락을 제대로 못해 소식이 끊겼다. 지금이라도 다시 만나게 되면 ‘5·18의 숨은 영웅’이라고 불러주고 싶다.
막상 복사는 무사히 했지만, 검열과 감시가 워낙 심한 광주에서는 우편으로 보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주말마다 여행 아닌 여행에 나섰다. 봉투에 담은 복사물을 가방에 넣고 서울로, 천안으로, 전주로 가서 우체통 순례를 했다. 우체통에 넣을 때도 나름 주의를 했다. 한 우체통에 한꺼번에 대량으로 넣었다가는 혹시라도 의심을 살까봐, 한장씩 두장씩 나눠서 넣었다. 그때마다 누군가 봉투를 뜯어보면 어쩌나 싶어 손이 떨렸다. 우표를 붙이거나 봉투에 넣는 작업을 할 때도 혼자 했는데, 혹시 지문이라도 남아 추적을 당할까 싶어 장갑을 끼고 했다. 피가 마르는 심정이었다. 그렇게 광주의 참상과 진실은,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전국의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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