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북성중학교에서 근무하던 1981년 11월23일 필자가 ‘상사의 명령에 복종한다’는 구절을 지운 채 책상 위에 붙여놓았던 ‘교사선서’의 원본. 당시 학교 쪽에서는 이 원본과 달리 원문이 지워지지 않은 별도의 사본을 작성해 교육청에 제출했다.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30
광주 북성중학교 근무 시절인 1981년 11월23일, 교장 선생님이 아침 회의를 소집해 준비된 종이 두 장씩을 나눠줬다. 나눠준 종이에는 몇 개의 항목이 적혀 있었다. 첫째 항은 ‘나는 법령을 준수하고 상사의 명령에 복종한다’는 내용이었고, 둘째 항부터는 공무원으로서 해야 할 일들이 적혀 있었다.
모든 선생님들이 오른손을 들고 교장 선생님을 따라 한 항목씩 읽어 내려갔다. 이른바 ‘교사선서’였다. 선서가 끝나자 교장 선생님은 “선서용지 맨 끝에 있는 서명란에 날인하시고, 한 장은 교무실 자기 책상 왼쪽 위에 질서있게 붙여 놓으시고, 다른 한 장은 제출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교사들이 제출한 선서 용지는 학교별로 모아 교육청에 제출하도록 되어 있었다. 책상 위에 붙인 선서 용지는 아침 직원회의 때마다 보고 읽으라는 용도였다. 나는 책상에 붙이기 전에 내용을 다시 찬찬히 읽어보았다. ‘법령을 준수하고’까지는 납득이 되는데 ‘상사의 명령에 복종한다’는 대목이 수긍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구절을 검은 사인펜으로 그은 다음 서명 날인해서 제출하고, 또 한 장은 책상에 붙였다.
다음날 교감 선생님이 부르더니. “선생님. 선서 내용 중 일부를 두 줄로 긋고 제출하셨는데 선생님 때문에 교육청에 제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교감 선생님. 법령을 준수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 아닙니까? 교사들이 상사의 명령에 군대처럼 무조건 복종하면 되겠습니까? 상사의 명령에는 지켜야 할 것도 있고 지키지 말아야 할 것도 있는데, 일방적으로 복종만 한다면 학교가 어떻게 창의적인 교육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스스로가 복종만 하는 모습을 보이면 학생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미래의 주인공들이 창의적 인간으로 자랄 수 있겠습니까? 법령을 준수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평소 인품이 좋은 교감 선생님에게 내가 너무 길게 ‘대거리’를 한 셈이었다. 사실 내 말은 교감 선생님이 아니라 군부독재 정권에 하는 항의였다.
오후가 되자 교장 선생님이 불렀다. “정 선생 때문에 우리 학교 전체 선생님들의 선서 용지를 교육청에 제출하지 못하고 있어.” 같은 정씨이고, 할아버지뻘 된다며 반말로 정스럽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고 말씀드렸다. “교장 선생님도 상사가 있잖아요. 상사가 명령한 대로 모든 것을 하실 건가요? 저에게만 문제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교직원에게 해당되는 사안이고, 학교 책임자로서 단위학교가 창의적인 운영이 되도록 하셔야 하지 않겠어요. 법령을 준수한다는 내용만 살리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얼마 뒤 교감 선생님이 도서실로 찾아왔다. 선서 용지가 한 장이라도 빠진 채로는 교육청에 보낼 수 없다며 “그냥 종이 한 장 드릴 테니 이름 쓰지 말고 도장만 찍어달라” 하시기에 “내 것만 빼고 보내시라”고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런데 당시 시국이 어떤 때인가. 1981년 전두환 정권 때 아닌가? 교장, 교감 선생님 위치에서는 상부 지시를 한 치도 거스르기 힘든 때였다. 이번에는 서무과 직원을 통해 교육청에서 빨리 제출하라는 독촉이 왔다며, 새로운 선서 용지를 주면서 날인해 달라고 했다. 내 손으로는 날인할 수 없으니 도서실에 가서 서랍 속에 있는 도장 찍어서 보내라 했다. 결국 우리 학교는 교육청에 하루 늦게 보냈다고 했다.
다음날 이 문제를 두고 교무실 난롯가에서 선생님들 사이에 설왕설래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선생님 중 한 분이 “아! 정말, 정해숙 선생님 혼자 투쟁하고 계시는데 우리가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그랬더니 새마을주임 선생님이 “제비 한 마리가 봄을 가져올 수 있나요? 모두 다 헛짓이지요”라고 말해 언쟁이 벌어진 것이다. 나는 주로 도서실에 있다 보니 교무실의 그런 분위기를 모르고 있었는데 한 여선생님이 와서 전해 주었다. ‘교사의 자존심으로 아무 문제없는 것처럼 통과시킨다는 것이 용납되지 않아 문제제기를 한 것이었는데… 소신을 지키기가 참 어렵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조용히 살고 싶은데 매번 사건만 만드는 사람은 아닌가’ 하는 착잡함도 마음 한편에 남았다.
오후 수업을 마치고 복도를 걷는데 뒤에서 “선생님” 하고 불러 돌아보니 한 남학생이 하얀 편지봉투를 내밀었다. “이게 뭐냐” 하면서 받는데 무엇인가 불룩하게 손에 잡혔다. 손바닥에 빼보니 샘플용 작은 화장품이 세 개 들어 있었다. “(파는 제품이 아니어서) 이거 어디서 났는데?” 했더니 “우리 누나 건데요, 선생님 드리려고 가져왔어요” 하는 것이었다. “그래. 잘 쓸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고마워했더니 그 학생은 환한 얼굴로 교실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상사의 명령에 복종만 하는 교사들이 어떻게 순수한 아이들을 창의력 있고 건강한 미래의 주인공으로 키워낼 것인가’ 다시한번 회의가 밀려왔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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