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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찾아서] ‘12년 투쟁’ 끝에 완전 폐지된 교사 일·숙직제 / 정해숙

등록 2011-07-19 19:45

1988년 7월 서울 성균관대에서 열린 전국교사협의회 소속 교사 2000여명이 교사대회를 열어 ‘민주교육법 쟁취’를 다짐하고 있다. 당시 필자는 근무중이던 광주 효광여중에서 전교협 회원 여교사들과 법적 근거가 없는 ‘교사 일숙직제 폐지’를 건의하며 교권 확보 운동을 폈다.
1988년 7월 서울 성균관대에서 열린 전국교사협의회 소속 교사 2000여명이 교사대회를 열어 ‘민주교육법 쟁취’를 다짐하고 있다. 당시 필자는 근무중이던 광주 효광여중에서 전교협 회원 여교사들과 법적 근거가 없는 ‘교사 일숙직제 폐지’를 건의하며 교권 확보 운동을 폈다.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47
1988년 여름 미국 교육계를 시찰하고 돌아온 뒤 나는 미국에서 본 교원노조의 역할과 교장의 조합원 자격 문제, 일직·숙직 문제 등 방문 결과를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 결성 준비회의 때 보고했다.

워싱턴 방문 때 일숙직 문제를 물어봤던 이유는 그 무렵 우리 학교(효광여중) 교무실 분위기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선생님들과 남선생님들이 일숙직 문제로 서로 대립하고 있었다. 90년대까지 교사들은 매일 저녁 1명씩 학교에 남아 숙직을 했고, 토·일요일에는 1~2명씩 나와 일직을 서야 했다. 그 시절은 세탁기나 가전제품이 흔한 때가 아니어서 여선생님들은 주말이면 집안일 하느라 쉴 수가 없었지만 그런 상황에서 일직도 해야 했다. 남선생님들은 숙직 다음날에도 아침 직원조회부터 학급조회, 수업까지 똑같이 정상 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어쩌다 빈 시간에 잠깐 숙직실에서 쉬다가 학생들 눈에 띄기라도 하면 ‘저 선생님은 숙직실에서 낮잠 잔다’는 평이나 들었다.

그러던 차에 남선생님들이 ‘숙직은 남교사, 일직은 여교사가 전담하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되면 주말이나 공휴일 일직을 더 자주 해야 하는 여선생님들이 반대를 하면서 교무실 분위기는 냉랭해졌다.

연구주임을 맡고 있던 나는 ‘교사들 간에 이렇게 화합이 되지 않으면 학교가 어떻게 움직이겠는가’ 하는 생각에 교장 선생님께 건의를 하기로 했다. 그에 앞서 몇몇 여선생님들과 의논 끝에 ‘우리 여선생님들이 나서서 남선생님들의 숙직을 없애도록, 매월 열리는 교장단 회의에 건의해서 제도를 바꾸도록 하자’고 뜻을 모았다. 나와 전교협 회원인 2명의 여선생님이 교장실로 찾아갔다. 2학기에 새로 부임한 최동수 교장 선생님은 난처한 반응이었다. “교무실이 예민한 분위기일 뿐 아니라 남선생님들의 무리한 업무를 덜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장 선생님들이 교사들의 권익을 위해 논의를 좀 해주셔야지요.” 재차 말씀드려도 한참 동안 답을 못하셨다.

마침 얼마 뒤 교장단 회의가 우리 학교에서 열렸다. 교장단 회의는 도서실에서 열렸는데 엉뚱하게도 도서실 환경정리를 문제삼았다. 미술 선생님한테 부탁해 문익환 목사님의 시 ‘꿈을 비는 마음’을 크게 써서 붙여 놓았는데, ‘회의에 참석한 교장들의 건의로 교육청에서 그 시를 떼도록 하라는 연락이 왔다’는 것이었다. “통일에 대한 꿈을 담은 시가 교육적으로 무슨 문제가 된다고 교장 선생님들이 그런 건의를 다 합니까? 그 시는 참 좋은 교육자료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도서실 게시물은 1개월 간격으로 교체하니 며칠이면 자동으로 바뀔 일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정작 교장단 회의 때 건의해 달라는 내용에 대해 “말 못했다”고 하셨다. 나는 정색을 하고 되물었다. “교장 선생님, 교장단 회의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사들의 권익을 위한 일은 하지 않고 위에서 지시하는 사항만 시달하는 회의입니까? 교사들이 숙직하면서 수업하고 있는데 교장 선생님들은 전혀 문제로 느껴지지 않는가요? 조처를 해야 됩니다. 숙직 문제에 대한 규정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서무과장 통해서라도 알아보시지요.” 이틀 뒤 다시 교장실로 갔더니 ‘법적으로는 강제사항이 아니다’라고 확인해줬다. “그러니까 교장단 회의에서 교사들의 권익을 위해 노력해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광주 교장단에서 먼저 검토해 문교부에 건의해주시고, 전국 교사들의 숙직 문제를 해결해주면 참 좋겠는데요.” 교장 선생님께 다시 한번 간곡히 말씀드렸지만 이후 교장단 회의에서 단 한번도 논의되지 못했다.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일숙직 폐지 투쟁은 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결성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90년 전교조 경기수원지회에서 시작해 91년 전북과 전남으로, 이후 경남과 충남 등 전국으로 확산됐다. 결국 교육부는 92년 9월16일, ‘초중등학교 당직근무 규정’ 폐지를 포함한 당직근무제도 개선책을 발표했다. ‘교사의 숙직 전담을 원칙적으로 폐지하고, 농어촌 등 소규모 학교에서는 사정을 고려해 자동경비장치 설치 또는 야간 경비원 채용을 고려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 폐지 속도가 달리 진행되었고, 전교조 합법화 뒤 체결된 2001~02년 단체협약에 일숙직 폐지를 명문화한 뒤에야 전국적으로 완전히 폐지되었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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