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길을찾아서] 2주만에 서점서 사라진 전대협 통일운동 책 / 정해숙

등록 2011-07-20 19:45수정 2011-07-22 14:40

1988년 7월 출간되자마자 금서로 회수당하는 바람에 ‘희귀본’이 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의 <우리는 결코 둘일 수 없다>의 표지.(왼쪽) 그해 필자와 라디오방송 연출자와 진행자로 인연을 맺었던 이석형 피디는 훗날 전남 함평군수가 돼 ‘나비축제’로 유명해졌다.
1988년 7월 출간되자마자 금서로 회수당하는 바람에 ‘희귀본’이 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의 <우리는 결코 둘일 수 없다>의 표지.(왼쪽) 그해 필자와 라디오방송 연출자와 진행자로 인연을 맺었던 이석형 피디는 훗날 전남 함평군수가 돼 ‘나비축제’로 유명해졌다.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48
1988년 여름방학 때 2주간의 미국-캐나다 연수를 다녀온 뒤, 떠나기 전에 미리 사두었던 전대협의 통일운동 책 <우리는 결코 둘일 수 없다>를 효광여중 동료 선생님들에게 선물했다. 다른 학교 선생님들에게 줄 책이 더 필요해 서점에 연락했더니 ‘그 책은 이제 없다’고 했다. “왜요?” “전화로 말씀드리기가 그러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감이 왔다. 그래서 다음날 서점으로 찾아갔더니 정보기관에서 회수해 가서 어떤 서점에도 없단다. 취급해서는 안 되는 ‘금서’가 된 것이었다. 전대협은 그해 6월 2만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6·10 민주화투쟁 1주기 기념대회 및 판문점 출정식’을 여는 등 통일운동을 선도하고 있었다. ‘87년 대선’을 통해 그해 2월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지만 군복만 안 입은 노태우 군부정권은 여전히 통일운동에 대한 탄압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책을 돌린 뒤 학교 행정실장이 도서실로 찾아오더니, “선생님, 이 책 너무 이른 것 아닐까요?” 하며 넌지시 얘기했다. “우리가 분단된 지 40년이 넘었는데 빨라요? 빠른 것이 아니라 늦은 거죠.” “그래도 우리 정서로….” “언제까지 한없이 여기저기 눈치보고 갈라져 살아야 되겠습니까? 대학생들이 통일을 그토록 열망하면 어른들이 같이 힘을 보태줘야지요. 그래서 선물로 드린 거예요.” “그래도 빨라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반공 이데올로기의 단면을 확인한 씁쓸한 대화의 기억이다.

그해 여름 또 하나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 <한국방송>(KBS) 라디오 광주지역국 피디로부터 오전에 방송하는 여성 프로그램의 한 부분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학교에 얘기해서 수업시간을 조정하고 매주 수요일에 방송을 진행했다.

그러던 중 광주지역 시내버스 기사들이 파업을 하게 됐다. 정확한 상황은 기억나지 않지만, 버스기사들의 업무가 과중해 사주와 협상을 시도했는데 잘 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시내버스 운행은 중지되었고, 시청에서 승합차로 구간별 임시운행을 하고 있었다. 애초 여성 프로 진행을 요청했던 그 피디한테서 ‘버스 파업에 대한 시민의 소리를 듣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는데 나더러 출연해서 의견을 밝혀달라고 연락이 왔다. “나는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괜찮겠느냐”고 했더니, 그는 “선생님 하고 싶으신 대로 하시라”고 했다. 나는 방송에서 “업주들도 운영상의 어려움이 있겠지만 기사님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기사님들이 요구하는 내용이 얼마나 절박한지 이해해야 한다”는 요지로 파업을 지지하는 이야기를 했다. 당시는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이 어용인 ‘자동차노련’에서 막 분리·독립했지만 여전히 어용 성향이어서 기사들의 요구를 제대로 대변해줄 여건이 되지 않았다. 나만이라도 기사님들의 고충을 대신 전하고 싶었다.

역시나, 방송이 나간 뒤 기관에서 이양우 교장 선생님한테 전화를 건 모양이었다. 방학이라 집에 있는데 교장 선생님이 전화를 해서 방송 출연 사실을 물었다. 그 뒤로도 기관에서는 교장 선생님에게 몇 차례 주의를 요구하는 전화를 한 듯했다. 그러나 교장 선생님은 첫 확인 이후 나한테는 전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그 뒤 수요일마다 해온 여성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방송국에 갔을 때 피디를 만나 물었다. “기관에서 학교로 연락을 했었는데, 이쪽은 별일 없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처음에는 괜찮다 하더니 곧 “까딱하면 나 목 잘릴 뻔했다”며 손으로 목을 치는 시늉을 했다. “다음부터는 나 부르지 마세요” 하며 둘이서 웃어 넘겼지만 실제로는 꽤 심각한 상황이었던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프로그램이 끝나 ‘잘됐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두어달 지난 뒤 ‘새로 시작하는 프로를 맡아달라’는 연락이 또 왔다. “아니 지난번에 잘릴 뻔했다면서 나를 또 불러요? 그래도 괜찮겠어요?” “선생님, 언론이라는 것이 아슬아슬한 대목이 좋은 거죠. 염려 마시고 맡아 주세요.” 조금이라도 사회 비판만 하면 과민반응을 보이던 시기에 위태로운 상황을 꿋꿋하게 넘기는 그가 믿음직스러웠다. 그 피디가 훗날 ‘나비축제’를 성공시킨 이석형 전 함평군수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