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5월28일 역사적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대회가 정권의 전방위 탄압과 경찰의 철통봉쇄망을 뚫고 연세대 민주광장에서 열렸다. 대회 장소를 한양대에서 긴급 변경하면서 당시 언론 중에서 <한겨레>와 <문화방송>만 연락을 받아 취재를 할 수 있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51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결성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지금의 전교조가 있기까지 아낌없는 지지와 격려를 보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먼저 드리고 싶다. 결성 이후 온갖 탄압과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교육개혁을 위해 노력해주신 조합원과 동료 교사들, 물심양면의 후원과 연대로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신 여러 단체와 국민들이 없었더라면 전교조의 지속적인 활동과 합법화가 가능했을까? 사상 유례없는 정권의 탄압을 이길 수 있었던 힘은 사회 민주화와 교육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열망과 지지 덕분이었음을 이 글을 쓰면서 거듭 확인하게 된다.
1989년 5월28일 전교조 결성 전후, 노태우 정권의 탄압은 광풍처럼 몰아쳤다. 정권은 노조 불허 방침과 징계 및 구속 방침을 연달아 발표했고, 전교조 추진 교사들을 좌경·용공·의식화 교사로 매도하는 유인물과 소책자를 제작해 전국에 뿌렸다. 전교조 반대 홍보물 제작 배포와 신문 광고비, 반상회용 유인물 등에 수억원의 비용을 들였다. 여론몰이를 위해 일부 선생님들을 좌경·용공 교사로 매도하며 결성 직전 무더기로 구속했다.
청와대를 정점으로 구성된 ‘교원노조 분쇄를 위한 대책기구’는 종합적인 탄압방안을 마련했다. 대책기구에는 법무부·내무부·안기부·문교부·총무처·경제기획원·감사원·문공부 등 모든 국가기관이 망라되었다. 이런 사실은 89년 9월 정기국회에서 이철 의원(무소속)이 청와대의 기밀문서 ‘교원노조 분쇄 대책’을 입수해 공개하면서 드러났다. 정부가 대책기구에 지시한 내용 몇가지는 이렇다.
‘청와대는 정치적 타협에 의한 해결을 방지하며 관계부처 독려, 안기부는 신규 임용 교원을 정밀 신원조사하며 관련 정보 수시 제공, 감사원은 교원노조 탄압 위한 홍보비 감사의 융통성 인정, 경제기획원은 교원노조 반대 홍보비를 지원하고 경제계 협조 얻어 노조의 전교조 지원 억제, 내무부는 일반 공무원의 교원·학부모 대상 교원노조 탈퇴 설득(시장·군수·경찰서장이 지정 관리), 법무부는 이념적 배후 수사 공표, 문교부는 정부 차원의 홍보물 제작(비디오 제작, 좌경폭력으로 매도)하여 배포하고 언론기관에 협조 요청, 전국 각 시도에서는 육성회 단체를 지원해 관제 궐기대회 개최하며 반상회 통한 대국민 홍보.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은 이에 동참해 ‘교원노조 추진 교사 엄벌 방침’과 ‘교육계의 갈등과 혼란’을 부각하며 교원노조 반대 여론을 만들고 교사들을 위축시키려 했다.
그러나 정권의 전방위적인 탄압과 언론의 매도에도 불길처럼 번지는 교원노조 건설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다. 교육계·학생·언론계·종교계·예술계·노동계·농민 등 각계각층의 뜨거운 지지 여론도 잠재우지 못했다.
마침내 결성대회일인 5월28일, 지역마다 버스터미널과 역, 고속도로 입구 등 서울로 가는 길목마다 경찰과 교육관료들이 배치되어 감시와 검문 등으로 교사들의 대회 참가를 막았다. 일부 지역에서는 동료 교사들을 감시조로 편성해 참가 예상 교사들을 감시하거나 함께 숙식한다며 강제 연금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광주·전남지역의 교사 3000여명은 상경길이 완전히 막혀 올라오지 못한 채 광주역 앞에서 연좌농성을 하며 규탄 및 보고대회를 열어야 했다.
대회 장소로 예정된 한양대 주변에는 수천명의 경찰병력이 배치돼 완전히 봉쇄했다. 경찰의 저지를 뚫고 200여명의 교사들이 모이기는 했지만 정작 전교조 집행부는 들어가지 못했다. 당시 서대문구 북아현동의 전교협 사무실에는 결성대회 장소를 묻는 전화가 쉴새없이 걸려왔다. 다른 장소를 물색해야 할지 한양대 주변에서 대회를 강행해야 할지 급박한 상황에서, 연세대는 출입이 통제되지 않고 있다는 급보가 들어왔다. 집행부는 일부러 호텔 택시를 불러 타고 급히 연세대로 들어갔다. 신촌 일대에 있던 조합원들과 은신해 있던 지역교협 대표들까지 모두 200여명이 모일 수 있었다.
나는 마침 28일 오전 양평에서 집안 행사가 있어서 27일 미리 서울로 올라와 있었다. 이튿날 오후 대회장으로 이동하던 중 연세대로 장소가 바뀌었다는 비상연락을 받고 역사적인 전교조 결성 현장에 함께할 수 있었다.
28일 오후 1시30분께, 드디어 전교조 결성대회가 연세대 도서관 앞 민주광장에서 극적으로 치러졌다. 경찰병력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대회는 빠르게 진행됐다. 윤영규 위원장, 이부영 수석부위원장이 선임되었고, 이수호 사무처장, 고은수 사무차장, 원영만 강원교협 회장 등이 함께한 대회는 20분 만에 끝났다. 대회사를 읽을 시간도, 감격스러움을 함께 나눌 겨를도 없었다.
“…오늘의 이 쾌거는 학생, 학부모와 함께 우리 교직원이 교육의 주체로 우뚝 서겠다는 엄숙한 선언이며, 민족·민주·인간화 교육 실천을 위한 참교육 운동을 더욱 뜨겁게 전개해 나가겠다는 굳은 의지를 민족과 역사 앞에 밝히는 것이다. …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저들의 협박과 탄압이 아니라 우리를 따르는 학생들의 해맑은 웃음과 초롱초롱한 눈빛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결성대회에서 읽지 못한 ‘결성 선언문’은 학생들 앞에 부끄럽지 않기를 바라는 교사들의 순수한 뜻을 담고 있었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나는 마침 28일 오전 양평에서 집안 행사가 있어서 27일 미리 서울로 올라와 있었다. 이튿날 오후 대회장으로 이동하던 중 연세대로 장소가 바뀌었다는 비상연락을 받고 역사적인 전교조 결성 현장에 함께할 수 있었다.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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