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7월19일 김민곤 전국교직원노조 대변인(오른쪽)이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집행부의 기자회견에서 정부 쪽에 25일까지 대화를 제안에 화답해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정부는 끝내 조합원 교사에 대한 징계를 강행해 8월7일 1500여명을 교단에서 쫓아냈다. <한겨레> 자료사진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54
1989년 5월28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결성대회를 치르자마자 윤영규 초대 위원장을 비롯한 집행부 24명은 연세대를 빠져나와 서울 마포구 공덕동 민주당사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집행부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부·지회·분회 결성’과 함께 ‘구속·연행 교사 석방, 교직원의 노동3권 보장, 정원식 문교부 장관 퇴진’ 등을 요구했다. 단식 9일째인 6월5일 탈진 등으로 병원에 옮겨져 치료를 받던 집행부는 결국 경찰에 연행됐고, 윤 위원장은 구속을 피할 수 없었다.
집행부의 투쟁에 발맞춰 전국 15개 시도지부·지회 준비위도 5월30일부터 일제히 지역별로 농성을 벌였다. 6월1일 제출한 전교조 설립 신고서를 6월3일 ‘실정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반려한 정부의 탄압은 점점 노골화했다. 그럴수록 교사들은 단위학교나 지회별 농성, 범국민대회 개최, 단식수업 및 명동성당 단식농성, 탈퇴 무효화 선언 등을 전개하며 맞섰다.
7월15일 임시집행부는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에 대화를 요구했다. ‘전교조 실체를 인정하고 7월18일까지 대화에 임할 것과 각 계층 대표로 구성된 범국민 중재단을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이를 받아들이면 ‘단식수업과 농성, 집단사표 제출 등을 잠정적으로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교부는 ‘먼저 전교조를 해체하라’며 대회 제의를 거부했다. 전교조는 17일, 18일 재차 대화를 제의했으나 정부는 끝내 8월5일까지 가입 조합원 모두를 징계 완료하도록 지시했다. 대화와 교사 징계 중지를 촉구하는 범국민적 여론이 비등해질수록 당국은 징계를 서둘렀다. 해직된 교사들의 빈자리를 9월초 2학기 시작 전까지 메우려면 8월초까지 징계 절차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계산이었다. 또 계속되는 일선 학생들의 전교조 지지 투쟁의 불길을 방학을 이용해 진화하겠다는 속셈도 있었다.
전교조는 징계 저지와 지연 투쟁으로 대응했다. 그러자 당국은 아예 징계위원회를 열지 않고 해직시킬 방안 찾기에 골몰했다. 사립학교법의 ‘직권면직’ 조항을 근거로 이를 권장했고, 전국 대부분의 사립학교들은 징계위원회도 열지 않은 채 직권면직시키는 편법으로 전교조 가입 교사들을 해고했다. 징계위원회가 각 시·도 교육위원회에서 열리는 공립학교의 조합원 교사들은 규탄 모임과 농성이나 법률 대응으로 징계 지연 투쟁을 벌였다. 징계위 개최일 연기 요청, 징계위원 기피신청, 징계위에 출석해 주장을 펼치되 징계 의결에 걸리는 시간 끌기 등이었다.
광주지역 공립학교에서 1차 징계 대상 조합원은 나를 포함해 윤광장·김화진·김혁순 선생 등 4명이었다. 우리에 대한 징계위 소집을 알리는 공문이 7월13일 오후에 전달됐는데 공문에 하자가 너무 많았다.
바로 다음날인 14일 징계위를 연다고 적혀 있었다. 공문에는 ‘공문을 받고 참석하지 못할 사람은 징계위 하루 전까지 사유를 서면 제출하라’고 되어 있었다. 교육위원회(현 교육청)가 징계 절차를 얼마나 정신없이 진행하고 있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대상자 4명은 14일 출석요구 시간에 맞춰 교육위원회를 방문해 징계 절차의 하자를 지적하고 돌아왔다. “공문에는 참석 못할 땐 하루 전에 사유를 서면으로 제출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제 오후 5시에야 공문이 도착했는데 가능한 일입니까? 부당한 절차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왔고, 우리는 오늘 징계위에 참석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바로 다음날 또 공문이 왔다. 이번에는 징계위 날짜가 7월19일로 잡혀 형식상 하자는 없었다. 우리는 징계위원 9명의 명단을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학무과장이 징계위원장을 맡고, 나머지 교사 출신 장학관 4명과 서무과 출신 행정직원 4명으로 구성돼 있었다. 우리는 ‘교육의 보조 노릇을 하는 서무과 출신 행정직원이 어떻게 교육의 주체인 교사를 징계하는 위원이 될 수 있는지’를 지적하며 기피신청서를 제출했다. 그 사이 김혁순 선생은 장인이 학교에 와서 탈퇴서를 쓰면서 징계 대상에서 빠져 3명만 남았다. 기피신청을 했지만 우리는 19일 오후 4시 징계위에 출석하기로 했다.
내가 근무하던 효광여중 선생님들은 ‘파면’이 예상되는 나를 위해 징계위가 열리는 날 아침, 교직원 전원의 서명이 첨부된 진정서를 민원실에 제출했다. “정해숙 선생님은 교육활동을 성실히 하는 휼륭한 교사이므로 징계가 부득이하다면 징계 수위를 낮춰 달라”는 내용이었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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