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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찾아서] 남북 교원단체, 해방뒤 첫 만남서 손맞잡고 ‘통일기원’ / 정해숙

등록 2011-08-17 19:57

1992년 3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지역 교육포럼에 초청받은 전교조는 ‘평화보호분과’에 참여해 남북통일을 위한 교육 지표를 발표했다. 대표단을 이끌고 참가한 필자(오른쪽 넷째 한복 차림)가 분과토론에 참여하고 있다.
1992년 3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지역 교육포럼에 초청받은 전교조는 ‘평화보호분과’에 참여해 남북통일을 위한 교육 지표를 발표했다. 대표단을 이끌고 참가한 필자(오른쪽 넷째 한복 차림)가 분과토론에 참여하고 있다.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68
1992년 3월4일부터 일본 도쿄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지역 교육포럼(APEF) 첫날 개회식에서 자리 배치는 전교조-한국교총-북한 대표 순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북한 주민 접촉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에 북한 대표와 회의에서 만날 때 인사를 나누는 정도 외에는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개회식이 끝나자 일본교직원조합(일교조)은 공식적인 포럼 일정 이후 사흘간 참가 단체들이 방문할 지역 배정표를 나눠주었다. 전교조 대표단은 말레이시아 대표단과 함께 홋카이도(북해도)로 배정되었다. 쉬는 시간에 한국교총 대표단과 차를 마시는데 교총 대표는 “관광지인 홋카이도로 간다니 좋겠다”며 “교총은 아이치현으로 가게 되었는데 안 가려 한다”고 말했다.

포럼 둘째 날은 미리 신청한 대로 ‘평화보호분과’에 참가해 보고를 했다. 첫날 나눠준 일정표에서 우리와 북한 대표는 같은 분과를, 한국교총은 다른 분과를 신청한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평화보호분과 토론방에 한국교총 대표들도 와 있었다. 쉬는 시간에 교총 대표들에게 물어보니 애초 신청한 분과에는 유학생을 보냈다고 했다. ‘국제회의에 대표로 참가해서 임의로 행동해도 괜찮은지’ 내심 안타까웠다.

분과토론에 참가하고 있는데 일교조 홋카이도교조에서 일교조 간부를 통해 계속 연락이 왔다. 전교조 대표단의 신체 치수를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유인즉 홋카이도는 우리나라 함흥과 비슷한 위도의 지역이라 날씨가 몹시 추워 방한복을 미리 준비해놓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미리 따뜻한 옷을 준비해 와서 괜찮다고 했는데도 계속 연락이 왔다. 일본인들의 친절함을 직접 느낀 순간이었다.

포럼 분과토론회에서 전교조는 영어로 발표문을 준비했다. 하지만 나는 인사말만 영어로 한 뒤 “제가 영어가 익숙하지 않아 한국말로 발표한 다음 김지예 선생님이 영어로 통역을 해주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나는 우리말로 발표를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36년 일제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다음 바로 강대국에 의해 남북이 분단되었습니다. 북한은 소련군이 주둔한 뒤 얼마 되지 않아 철수했는데 남한은 지금까지도 미군이 점령하고 있습니다. 전교조는 미래의 주인공들에 대한 통일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태지역 교육포럼 주최국인 일본은 한반도 분단의 가해자 중 한 나라이기 때문에 남북통일을 위해 적극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본토론에 앞서 제가 건의와 함께 우리들의 생각을 전달했습니다.”

바로 이어 김 선생이 전교조의 공식 의견을 발표했다. “‘걸프전’과 ‘한반도 전쟁 시나리오’ 등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세계 정세에서 전쟁의 참상을 바로 알리고 평화를 위한 역사적 교훈을 얻기 위해 교과서에 진실이 실리도록 해야 한다는 것, 교육내용 결정에 교사와 교원단체가 참여해야 하며,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인권 및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 세계 평화를 위해 마지막 분단국가인 한반도 통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 등이었다.

분과토론이 끝난 뒤 쉬는 시간이 꽤 길었는데, 북한 주민 접촉 허가를 받아 온 한국교총 대표단이 북한 대표단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좋은 얘기 많이 나누시고 좋은 시간 가지세요.” 우리는 접촉 허가를 받지 못한 까닭에 인사만 건네고 자리를 피했다. 조금 뒤 동포 한 분이 다가와 “오전 토론회 때 좋은 말씀 해주셨다고 전해 들었는데 참 감동적이었다”며 악수를 청했다. 그러는 사이 한국교총과 북한 대표는 대화를 마치고 헤어지고 있었다. “벌써 끝났어요? 좀더 이야기 나누시지….” 웃으면서 말했더니 북한 대표도 웃기만 했다. 해방 이후 첫 남북 교원단체의 만남은 그렇게 아쉽게 끝났다.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폐회식을 앞두고 일교조 사무처장을 찾아갔다. “우리나라가 분단국가 아닙니까. 폐회식 할 때 남한의 두 단체와 북한 대표단, 이렇게 세 단체를 단상에 좀 올려주십시오. 그리고 통일을 기원하는 뜻에서 우리 세 단체 대표단이 함께 손잡을 때 참가자 모두 하루빨리 통일되도록 박수를 보내달라고 요청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일교조 사무처장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폐회식이 얼마간 진행된 다음 일교조 사무처장은 약속대로 세 대표단을 단상에 불러 올렸다. 전교조 대표단이 가운데 서서 교총과 북한 대표의 손을 잡고 들어 올렸다. 곧이어 일교조 사무처장의 “하루빨리 남북통일이 이뤄지길 기원하는 뜻에서 세 단체가 손을 맞잡았습니다” 하는 설명과 함께 25개 나라 참가자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그렇게 우리는 통일의 염원과 결의를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여러 나라 참가자들과 함께 짧지만 뜨겁게 확인했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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