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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찾아서] ‘끝내 거부 못한 흐름’…5대 전교조위원장 단독출마 / 정해숙

등록 2011-08-23 19:50

40년간 장좌불와와 하루 한끼만 고집한 당대의 선승이자 염불선의 주창자인 청화 큰스님은 2003년 11월 앉은 자세로 홀연히 입적했다. 필자는 1983년 법회에서 우연히 본 청화 큰스님의 인품에 감화돼 불교에 입문한 뒤 스님이 조실로 있던 곡성 성륜사 신도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40년간 장좌불와와 하루 한끼만 고집한 당대의 선승이자 염불선의 주창자인 청화 큰스님은 2003년 11월 앉은 자세로 홀연히 입적했다. 필자는 1983년 법회에서 우연히 본 청화 큰스님의 인품에 감화돼 불교에 입문한 뒤 스님이 조실로 있던 곡성 성륜사 신도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72
1992년 12월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전교조는 5대 위원장·수석부위원장과 시·도지부장 선거를 치르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대선 투쟁에 몰두하느라 예정보다 늦게 하게 된 선거였다. 그런데 위원장 후보를 찾다가 몇몇 선생님들이 나를 추천하기로 의견을 모은 모양이었다. 얘기를 듣자마자 “도저히 수락하기 어렵다”고 답한 나는 ‘만나자’는 요청도 모두 거절했다. 그랬더니 93년 1월 초, 최교진·유상덕·이영주·이동진 선생님 등이 광주 우리집으로 찾아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수락할 수 없었다.

그 무렵 나는 곡성군 옥과에 있는 성륜사를 가끔 다니고 있었다. 청화 큰스님을 처음 뵌 것은 83년 10월이었다. 목포여고에서 함께 근무했던 양옥자 선생님이 출가해서 행법 스님(광주 선덕사 주지)이 됐는데, 그를 통해 청화 큰스님의 법회에 처음으로 참석했다. 청화 스님이 어떤 분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언젠가 “불교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참선을 하고 싶은데 훌륭한 스님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날 한 시간 법문하는 동안 나는 스님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저렇게 깨끗하고 맑은 얼굴이 세상에 또 있을까?’ 참으로 소중한 경험이었다. 스님은 지리산 등 산속 토굴에서만 수행하시다가 회갑이 지나서야 세상으로 나와 가르침을 전하고 계시다고 했다. 하루 한 끼 식사에 묵언을 하시며 장좌불와(눕지 않는 자세)로 공부하신 큰스님이라고들 했다.

전교조 광주지부장직을 끝내고, 92년 3월 도쿄 교육포럼에 다녀온 뒤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청화 큰스님께서 조실로 주석하셨던 성륜사에 들어갔다. 그때는 사실 불교에 대해 잘 모를 때였다. 지금도 잘 모르지만 성경공부를 5년 한 뒤 83년 불교 경전 읽기를 했는데 ‘마음에 와닿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쉬러 들어간 다음날 나더러 ‘신도회장을 맡으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성륜사는 89년 불사가 이루어진 터라 초창기였다. 신도들 모임이 동아리 형태로 여럿 있었고 동아리별로 신도회장을 선출한다고 했다. 그중 회원 규모가 제일 큰 영생회의 회장으로 나를 뽑은 것이었다. ‘쉬려고 들어왔는데… 나는 왜 쉴 곳이 없나.’ 당황스럽고 불편한 마음에 그냥 성륜사에서 나와버렸다. 그러고는 얼마 뒤 법회 참석차 다시 갔다가 끈질긴 요청에 ‘불교 공부도 할 겸’ 마지못해 영생회장 일을 받아들였다.

그러던 중 영생회 회원 몇 명과 함께 해남 두륜산의 작은 암자인 상원암을 가기로 약속했다. 상원암은 청화 큰스님께서 수행하셨던 암자다. 그런데 마침 그때 전교조 위원장 후보 수락을 요청하러 선생님들이 다시 우리집을 찾아왔다. 나는 선생님들을 집에 두고는 일정을 앞당겨 상원암으로 떠나버렸다. 상원암은 처음 가는 길이었고, 오후에 출발해 도착하니 어둑해진 시간이었다. 그때 청화 큰스님은 미국에 계셨고 상좌 중 한 분인 왕인 스님이 상원암에서 수행하고 계셨다. 대나무 문을 지나 작은 암자 앞에서 절을 하는 순간 ‘아, 묵언을 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해본 적은 없지만, 왕인 스님께 내일부터 묵언을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바로 이튿날 이른 새벽, 순간 한마디 말을 하는 바람에 묵언을 깬 벌로 즉각 108배를 해야 했다.

닷새 동안 머무르며 참선을 했는데 매일매일 참으로 신비한 체험의 연속이었다. 참선을 끝내고 조금 늦은 오후 광주 집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려는데 아파트 입구 쪽에서 선생님들이 나오고 있었다. 차 안에서 선생님들이 다 가는 것을 보고서야 집으로 들어갔다. 그동안 선생님들이 날마다 집에 찾아왔다고 했다. 자장면을 시켜 먹고 잠은 다른 곳에 가서 자면서 출퇴근하듯 했던 것이다.

결국 다음날 시내에서 선생님들을 만났다. “조직을 위해 수락하셔야 합니다.” 최교진 선생님의 청에 나는 참선 경험을 떠올리며 마침내 수락을 했다.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일단 수락을 하고는 의논을 하기 위해 윤광장 선생님 집에서, 또 이종진 선생님 집에서 만났다. 그곳에는 광주지부 선생님들과 오종렬·최교진·이동진 선생님이 와 있었다. 그다음날은 수배 상태로 목포 인근의 요양원에 머무르고 있던 윤영규 초대 위원장과 같이 만나 무안 근처 바닷가에서 식사를 했다. 제법 여러 명이 모인 그 자리에서 나는 출마 결심을 밝혔다. 조직적 결정으로 전교조 합법화를 약속한 김대중 후보를 지원했으나 대선에서 패배하자 조합원들은 힘이 빠진 상태였다. 어깨가 처진 동지들이 떠올라 끝까지 거절할 수가 없었다. 내가 수락하자마자 옆에 있던 이수일 선생님이 서울본부로 전화 보고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해숙 선생님이 수락하셨으니 준비하십시오.”

얼마 전 고인이 된 유상덕 선생님이 수석부위원장 후보로 나와 짝을 이뤘고, 단독 출마해 1월29일부터 전국 유세에 들어갔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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