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1993년 6월29일 오후 교육부 장관실을 방문해 오병문 장관과 두번째 공식 면담을 했다. 오 장관이 이미 국회에서 ‘전교조 탈퇴각서를 전제한 94학년도 신학기 복직 방침’을 밝힌 이후여서 필자의 표정이 굳어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79
1993년 6월29일 전교조 위원장인 나와 오병문 교육부 장관의 2차 면담이 있었다. 앞서 6월21일 교육부 장관이 국회 교육상임위 월례보고회에서 ‘탈퇴각서를 전제한 94년 신학기 복직 방침’을 발표한 이후였다. ‘조건없는 해직교사 1993년 2학기 원상복직’을 요구하며 해직교사 대표 200여명이 명동성당에서 단식농성을 벌인 지 9일째 되는 날이기도 했다. 두번째 만났을 때 나도 모르게 “탈퇴요?” 하고 정색을 하며 반문을 했다. ‘탈퇴’라는 방침이 너무나 기가 막혔기 때문이다. 교육부 장관은 해직교사 복직에 대한 교육계 반발을 내세웠다. “탈퇴하고 돌아올 사람이 20%가 넘는 것으로 안다. 이 사람들을 전교조가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같이 자리했던 이수호 해직교사원상복직추진위원회(원복추위) 위원장은 교장단이 해직교사 복직을 반대하는 것은 교육비리 감시자가 돌아오는 것이 탐탁지 않은 것이라며 조건없는 복직을 재차 요구했다.
복직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국회 교육위원회 간사였던 초선의 장영달 의원이 기여를 많이 했다. 장 의원은 우리와 청와대 사이에서 상호 의견을 전달해주었다. 그로부터 정부의 의견을 전해 들으면 나는 반드시 상임집행위원회나 중앙집행위원회(본부 위원장단: 서울 조희주, 경기 정진후, 인천 하인호, 강원 정재욱, 충북 김시천, 충남 김지철, 대전 문성호, 전북 송동한, 전남 홍광석, 광주 임추섭, 경북 조영옥, 대구 박지극, 경남 신용균, 부산 박종기, 제주 이용중)를 열어 논의했다. 급기야는 청와대 쪽에서 탈퇴서 제출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본격적으로 꺼냈다. 우리는 탈퇴서를 내고 복직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는 의견을 전했다.
그 이후 정부도 더는 후퇴할 수 없다며 탈퇴서를 따로 쓰지 않고 복직 신청서 문안에 ‘전교조를 탈퇴한다’는 문구 두 줄을 넣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했다.
교육부 장관은 7월24일 담화문을 통해 ‘전교조 해직교사 채용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복직 대상은 전교조 관련, 시국선언·원복추위 관련 해직교사에 국한했다. 특별채용 형식으로 채용신청서를 받으며, 탈퇴 확인란에 이름과 도장을 찍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관용의 원칙에서 처리하도록 교육감에게 재량권을 부여한다는 방침에 따라 일부 교육청은 ‘탈퇴각서만 쓰면 적격심사는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제시한 9월30일 시한 안에 많은 해직교사가 채용신청을 하도록 하기 위해 각 시·도 부교육감을 위원장으로 하는 대책반을 마련해 복직 관련 실무를 맡도록 했다. 대책반은 해직교사 채용신청 설득 및 홍보, 해직교사 채용 추진계획 심의 및 추진, 채용 결격사유 해당자 확인 및 선별 등을 주요 활동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전교조는 즉각 전면거부 의사를 밝혔다. 우리는 교육부의 방침이 교원노조 포기 요구의 변형된 형태로 ‘교원노조 불인정’이라는 정부의 기존 방침을 재확인한 것으로 판단했다. 수차례 중앙집행위원회와 중앙위원회를 여는 등 논의에 논의를 거듭했다. 회의 결과, 정부 방침이 변하지 않는다면 ‘9월30일 시한에 응하지 않을 것’과 ‘지도부에 협상을 위임할 것’을 기본 방침으로 결의했다. 8월 들어 충북지부를 시작으로 지부별로 해직교사 총회를 열었다. 이 총회에서도 역시 ‘투쟁을 통한 복직’ 의견이 공감대를 이뤘다.
8월8일 서울 영등포 성문밖교회에서 서울지부 해직교사 총회가 열렸다. 전체 해직교사의 30% 이상이 있는 서울지부 총회는 모든 지역의 관심을 모았다. ‘탈퇴각서 수용’부터 ‘본격적인 합법화 쟁취투쟁을 하자’까지 다양한 의견이 치열하게 논의되었다.
그 자리에서 한 여선생님이 나를 지목해 물었다. “위원장님은 탈퇴를 전제로 한 복직 방침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솔직히 나로서는 즉답을 하기 난처한 질문이었다. “지금 내 생각을 말하는 것보다 저는 조합원들의 논의와 의견을 존중해야지요. … 충분히 논의해서 결정합시다.” 그러자 “결론부터 말하면 교육부 방침은 받아들일 수 없지 않습니까?” 항변이 되돌아왔다.
나는 웃으면서 이야기를 풀었다. “내 이름에 바다 해(海) 자가 있어서 그런지 가끔 바다에 대해 생각을 합니다. 바다는 제일 낮은 곳에 있기에 더러운 물, 깨끗한 물, 공장 폐수, 하수구 물 등을 가리지 않고 다 받아들여 수많은 생명을 키워내는 곳입니다. 바다에서 우리는 참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나는 평소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주장만을 내세우는 것, 그것이 꼭 그렇게 바람직한 일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위의 많은 의견들을 배려하고 논의하고 종합하면서 결론을 짓도록 해야지 너무 성급하게 결론부터 요구하는 질문을 하면 나는 뭐라고 대답을 하겠습니까.”
젊은 동지들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정열과 의욕이 많은 시기가 아닌가. 그들의 사기를 꺾지 않으면서도 흥분된 마음을 헤아리고 다독여야 하는 선배의 자리가 녹록지만은 않았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젊은 동지들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정열과 의욕이 많은 시기가 아닌가. 그들의 사기를 꺾지 않으면서도 흥분된 마음을 헤아리고 다독여야 하는 선배의 자리가 녹록지만은 않았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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