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9월14일 전교조 이수호(왼쪽 둘째) 원상복직추진위원장과 지부장단 5명이 교육부 최이식(맨 왼쪽) 교직국장을 방문해 ‘정부의 해직교사 선별복직 방침 철회’를 전제로 한 복직 문제 일괄타결을 위한 협의를 제안하고 있다.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80
1993년 9월14일 전교조는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신축적 자세를 촉구하며 9월30일 이전 복직문제 일괄타결을 위한 협의를 제안했다. 탈퇴를 명시하지 않고 복직 대상 확대, 선별방침 철회, 임용절차 간소화 등의 조건이 관철되면 경력 인정과 보상 등은 순차적으로 풀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아울러 교육개혁은 멈출 수 없는 과제로 입시위주 교육 해소, 교원양성 임용제도 개선, 교육재정 확충을 통한 교육환경과 교원처우 개선 등 현안 해결에 협력할 의향이 있음을 밝혔다.
복직 방침을 결정해 가는 과정에서 전교조 지도부는 해직교사와 조합원들의 의견을 모으는 한편으로 사회 각계의 의견도 다양하게 들었다. 우리가 만난 원로들과 많은 단체 대표들의 공통된 의견은 현장으로 들어가서 참교육을 적극 실천함으로써 ‘본’을 보여주라는 것이었다. “링 밖에서 소리쳐 봐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동안 학교 밖에서 갖은 고생을 하며 수고했으니 현장으로 돌아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 설사 조건이 미흡하더라도 그 문제는 나중에 해결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해직교사들의 건강 문제로 보나 학교 현장에서 올바른 교육개혁을 이룩해야 하는 현실적 과제로 보나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는 뜻이었다.
교육부의 복직 신청서 제출 시한을 앞두고 개별적으로 신청서를 접수하려는 일부 해직교사들의 움직임이 있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복직이 어렵게 될 수도 있다는 고민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와이(Y)교협 때부터 함께 일했던 대구의 한 여선생님도 신청서를 내려 한다는 얘기를 듣고 늦은 밤에 전화를 했다. “선생님, 조직에서 아직 복직 방침을 최종 결정하기 전인데 신청서를 제출하려고 했습니까?” “제출하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그동안 지부에서 집행 간부도 맡았던 사람이 그렇게 하면 되겠어요?” “지도부로 일했기 때문에 제가 앞서서 들어가려고 해요.” “그건 말이 안 되잖아요? 지금 조건을 최대한 좋게 만들어 복직하게끔 하기 위해 조직이 얼마나 고심하면서 애쓰고 있는데 중간에 몇 사람이 각자 생각대로 움직이면 앞장서서 해왔던 지도부라고 말할 수 없지요. 복직 신청서 내지 마세요. 내 말 명심해야 돼요. 그러지 않으면 그동안의 수고가 다 허사로 돌아가….” 여선생님은 이 통화 때문이었는지 신청서를 내지는 않았다.
9월10일께는 어느 해직교사의 부인이 내게 편지를 보내왔다. “교육부는 해직교사들이나 전교조의 분열을 노리기 위해 고약한 조건을 내놓았지만 전교조 쪽에서도 차라리 정부의 제안을 모두 수용해버림으로써 그들을 역이용해야 합니다. 말없이 아픈 마음으로 해직을 감수했던 제 남편과 같은 조합원들에게 당연히 편안한 마음으로 교단에 돌아갈 수 있게 길을 터주는 것이 집행부의 올바른 처사라고 감히 요구하는 바입니다.” 어떤 집행 간부의 아버님은 아들이 해직된 이후부터 전교조 이야기만 나오면 텔레비전을 꺼버렸다고 했다. 그러다 복직 이야기가 나오자 오히려 티브이 뉴스 시간에 “전교조 위원장 나왔다. 빨리 와서 봐라” 하며 아들을 부르셨다고 했다. 해직교사와 그 가족들의 고통이 어떠했을지 충분히 짐작되었기에 지혜로운 복직 원칙을 정하기 위한 지도부의 고뇌는 깊었다.
나는 해직교사들과 그 가족들에게 몇 차례 위원장 서신을 띄우기도 했다. “9·30 시한이 다가올수록 정부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한사람씩 전교조를 탈퇴하도록 할 것이다. 교육당국의 태도나 언론 보도에 일희일비하면서 이끌리지 말고 해직교사와 가족이 똘똘 뭉쳐 함께 대응하고 함께 복직해야 한다. 해직교사 복직은 김영삼 정부가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다. 진리는 반드시 이긴다는 것을 마음에 담자”는 내용이었다.
마침내 9월30일 88명의 해직교사가 개별적으로 정부 조건대로 복직 신청서를 접수했다. 그러나 대다수는 조직의 결정에 따라 시한을 넘겼다. 1500여명의 해직교사 중 88명만이 접수를 하자 전교조의 흐트러짐 없는 대응에 무척 놀란 교육부는 10월28일까지 신청 기한을 연장했다.
전교조는 교육부와 끊임없는 줄다리기를 하면서도 교육개혁을 위한 국내외 연대활동을 적극 벌였다. 9월24일 서울 여의도 여성백인회관에서 참교육학부모회, 민교협, 전국사립대학교수협의회연합회, 대학강사노조, 대학노조,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전국교육대학생대표자협의회, 전국국립사범대학생연합 등 9개 단체가 ‘교육개혁연대회의’(상임의장 장임원)를 출범시켰다. 출범식에 이어 ‘교육개혁과 교육재정정책의 방향’이라는 주제의 정책토론회도 열었다. 9월30일에는 전교조의 국제교원노조총연맹(EI) 가입이 결정되었다. 전교조 가입이 국제연맹 집행위 반대 없이 가결되면서 전교조는 나라 밖에서 먼저 공식 인정을 받은 셈이 되었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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