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10월15일 위원장 특별담화에 따라 전교조 소속 1400여명의 해직교사들이 탈퇴 확인 서명을 하고 복직 신청을 했다. 사진은 이듬해 1
월11일 서울 창덕여중에서 여의도중 등 6개 학교에 복직을 신청한 해직 교사 570명이 서울시교육청의 면담을 기다리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82
“오늘 저는 이 자리에서 교육개혁의 출발이자 한 부분인 해직교사 복직 문제에 대해 현 정부가 개혁 차원의 변화된 방침을 전혀 갖고 있지 않음을 확인하는 한편 교육개혁을 실현하고 전교조 합법화와 원상회복을 앞당기기 위해 ‘가능한 한 최대 다수’의 해직교사들이 학교 현장으로 돌아가서 동료교사, 학생, 학부모와 더불어 생활하며 참교육 실천에 매진할 수 있도록 ‘고뇌에 찬 결단’을 내리고자 합니다. 오늘 저의 결단은 정부의 반개혁적인 복직방침을 수용하는 것이 결코 아니며, 새 정부 출범 이후 더욱 지연되고 있는 교육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더 큰 승리를 앞당기기 위해 그간의 작은 승리와 성과를 계승하며 자신감 속에서 전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1993년 10월15일 ‘전교조 해직교사 복직과 관련한 특별담화문’에 담은 전교조의 복직 결정 배경과 의미이다. 특별담화문 발표와 아울러 해직교사들에게는 10월25일을 전후해 전교조 15개 시·도지부별로 복직신청서를 시·도교육청에 일괄 제출하는 내용의 방침을 전달했다.
전교조의 복직방침 결정은 그해 가장 뜨거운 뉴스였다. 언론과 사회의 관심은 예상보다 훨씬 더 높았다. 그 가운데 10월16일치 <한국일보>의 분석기사를 옮겨본다. “전교조는 해직교사들의 복직으로 기반이 강화된 학교 현장을 중심으로 교육개혁과 합법화를 위한 교육관계법 개정 운동을 계속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 이런 활동을 효과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해직교사 100여명이 상근자로 남아 전교조 본부와 전국의 153개 지회 조직을 관리할 방침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정부가 오히려 실효성도 없는 ‘탈퇴 확인란’ 기재를 고집하며 명분에 집착한 결과 앞으로 현실적인 부담을 안게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해직교사 복직 문제를 6공 정부보다도 경직된 방식으로 해결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문민정부의 개혁과 화합 이미지가 손상을 받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재야단체 중 도덕적 명분과 조직력 면에서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전교조를 완전 포용하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불편한 관계가 이루어진다면 이에 따라 갖게 될 부담도 무시할 수 없다. 전교조는 5년 가까운 활동을 통해 조직과 재정에서 상당한 역량을 축적했다. 또 참교육이라는 이념을 연결고리로 지식인 재야단체로는 드물게 강한 결속력을 유지해 왔다. 여기에 최근 세계 유일의 교원단체인 국제교원노조총연맹(EI)이 우리나라의 경우 이미 한국교총이 가입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교조를 정식 회원단체로 가입시킨 사실도 복직 이후 전교조의 주된 활동목표가 합법화 운동과 관련, 정부의 무거운 짐이 될 전망이다.”
담화문 발표 다음날 몇몇 간부들과 전북 군산을 방문했다. 10월10일 전북 부안군 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 ‘서해훼리호’가 침몰해 290여명이 숨지는 참사가 터졌다. 희생자 중에는 전교협 시절부터 교육 민주화를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했던 현직 조합원 김관식 선생님(군산 제일고)도 있었다. 군산 공설운동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 전북지부 선생님들과 함께 참배했다.
참배를 마치자 평소 우호적이었던 전북지부의 한 간부가 작심한 듯 불만을 토로했다. “어떻게 위원장님이 탈퇴서를 내고 복직을 하라고 하십니까?” “오죽하면 그랬겠어요. 복직 신청서에 형식적으로 서명만 하는 것이지 우리가 사실상 탈퇴하는 것입니까?” “그래도 그렇죠.” “진짜 탈퇴라면 우리 조직에 탈퇴서를 내야 하는 것이지요. 정부에 확인만 해주는 것이 어찌 탈퇴입니까. 너무 아프게 생각하지 말고 융통성 있게 생각합시다. 실은 내 마음이 더 아파요….” 그는 더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해직교사들의 허탈한 그 마음을 왜 모르겠는가. 그러나 교육개혁이라는 우리의 뜻을 실현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처였음을 이해시키며 아픔을 삭여야 했다.
전교조는 10월25일 ‘최대한 다수 복직을 위해 위원장, 수석부위원장, 전직 위원장을 제외하고 전원이 복직 신청 절차에 참여한다’는 내용의 구체적인 방침을 정했다. 이에 따라 10월28일까지 교육부가 밝힌 복직 대상자 1483명 가운데 간부 4명과 학원강사 전업 등으로 복직을 미룬 59명을 뺀 1421명이 신청서를 냈다. 서울지부의 복직 신청서 접수가 예정된 10월26일, 교육청 민원실 앞에는 취재기자들이 몰려 있었다. 그런데 서울교육청은 사학민주화 관련 해직교사와 임용 제외자 등 상당수의 복직 신청서 접수를 거부했다. 다음날 조희주 서울지부장과 지회장들이 다시 접수를 시도했을 때도 또 거부해 항의와 성명 발표 소동 끝에 겨우 접수가 시작됐다. 여러 명의 교육청 직원이 해직교사 집으로 일일이 전화해 탈퇴를 확인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도 벌어졌다. 이는 복직 절차가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예고하고 있었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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