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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찾아서] 세상 떠난 해직교사 마지막 길 지켜준 법륜 스님 / 정해숙

등록 2011-09-08 20:10

정토회 의장 법륜 스님이 인도의 최하층 불가촉천민들이 사는 북부 둥게스와리에 지은 수자타아카데미에서 아이들의 머리를 감겨주고 있다. 필자는 1993년 해직교사 길옥화 선생의 장례식 때 인연을 맺은 법륜 스님의 인도주의 실천에 큰 감동을 얻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정토회 의장 법륜 스님이 인도의 최하층 불가촉천민들이 사는 북부 둥게스와리에 지은 수자타아카데미에서 아이들의 머리를 감겨주고 있다. 필자는 1993년 해직교사 길옥화 선생의 장례식 때 인연을 맺은 법륜 스님의 인도주의 실천에 큰 감동을 얻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84
1993년 복직문제 해결을 위해 분주하던 와중에 참으로 마음 아픈 비보를 접했다. 9월26일 길옥화 선생님의 투신자살 소식이었다. 해직교사의 자살은 처음이자 마지막 사례였다. 나는 추석 휴가차 광주 집에 도착하자마자 소식을 전해듣고 곧바로 밤길을 달려 길 선생님의 부모님 집이 있는 강원도 원주로 갔다. 어머님에게 전해듣기로, 길 선생은 숨지기 전 친구들과 사찰 몇 군데를 다녀왔다고 했다. 길 선생은 서울대 영문과에 입학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국문과로 전과해 졸업한 뒤 서울 신양중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일하다 전교조 가입으로 해직되었다.

참으로 훌륭한 선생님을 잃어버린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교단의 손실만이 아니라 나라의 손실 아닌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답답했으면 그 길을 택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신양중학교에서 노제를 지내려 했으나 학교 쪽에서 끝내 교문을 열어주지 않아 장례 행렬은 한참을 교문 앞에 서 있어야 했다.

부모님의 슬픔을 우리가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어머님은 불교의식으로 길 선생 마지막 가는 길을 달래주었다. 그때 장례를 집전한 분이 법륜 스님이었다. 당시 서울 홍제동에 포교당을 두고 있었는데 상좌인 유수 스님이 영결식 처음부터 끝까지 도와주었다. 49재 마지막날 서울지부 선생님들이 법당을 가득 메웠다. 법륜 스님은 아주 단호한 언행으로 ‘슬퍼할 겨를이 어디 있느냐’고 법문을 했다.

법륜 스님은 젊은 시절 노동운동을 하다 구속됐다가 출감한 뒤 출가를 했다. 스님은 94년 인도의 불가촉천민 아이들 교육을 위한 학교를 짓는 사업을 했다. 해직교사 몇분이 그해 복직 뒤 첫 여름방학을 맞아 인도로 여행을 다녀와 당산동 전교조 본부 사무실을 찾아온 적이 있었다. 여행이 즐거웠느냐고 물으니, 선생님들은 무척 고생스러웠다고 했다. 한달간의 여행 도중 법륜 스님을 만났는데 ‘학교를 짓는데 선생님들이 노동력을 투자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느냐’며 일을 시켰단다. 첫날은 ‘어디로 벽돌을 날라라’, 다음날은 ‘어디서 흙을 날라 와라’, 날마다 꼼꼼히 일을 할당해줘 실컷 노동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후회되겠네요?” 했더니 “아니요, 실은 무척 보람있는 여행이었어요. 스님께서 짬짬이 근처 역사 유적지 안내도 해주고…, 뜻깊은 여름방학을 보내고 왔어요.” 먼 나라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지구촌의 미래 주인공들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에 잔잔한 감동을 느꼈다.

94년 7월25일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의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7월8일 김 주석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회담은 실현되지 못했다. 그 이듬해 북한에 홍수가 났다. 다리가 끊기고, 물이 넘쳐 논밭이 전부 물에 잠기는 등 피해가 심각하다는 뉴스가 전해졌지만 우리 정부는 북한 돕기에 전혀 나서지 않았다. 급기야는 종교인들이 나서서 “우리 국민은 원래 인정이 많지 않습니까. 북한 동포를 도와주자고 하면 금방 쌀을 모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정부가 주체가 되어 북한 돕기 운동을 벌였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건의를 했다. 그런데도 김영삼 정부는 끝내 나서지 않았다.

앞서 83년 9월 북한은 서울·경기 일대의 폭우 사태 때 구호물자를 제공한 적이 있었다. 95년 남으로 건너온 북한 주민의 수기인 ‘귀순자 전철우의 눈물’은 그때 상황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12년 전 남쪽에서 수재를 입었을 때 북쪽에서 쌀을 지원한 적이 있습니다. 북한 쌀에는 돌이 많습니다. 그때 북한 주민들이 남한 동포들에게 좋은 쌀을 보내겠다고 저마다 길거리에 쌀을 늘어놓고 돌을 골라냈습니다. 저는 그때 김책공업대학에 다녔음에도 먹을 쌀을 다 보내고 내내 밀밥만 먹었습니다. 그것도 사료용으로 쓴다는 질 나쁜 밀을 수입해 온 것이라 소화불량에 걸리기도 했습니다.”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그럴 때 법륜 스님은 북한 돕기 운동에 적극 나섰다. 그즈음 스님과 시민단체 대표들이 모이는 자리가 있었다. ‘법륜 스님이 이번에 북한 동포들에게 1억원을 보냈다’는 말을 전해듣고 내가 “1억이라는 큰돈이 어디 있었어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스님은 조용히 웃으면서 “저도 의젓한 법당 하나 짓고 싶어 아끼고 아껴서 통장에 모아놨죠.” “그런데 그걸 통째로 내놨어요?” “사람의 생명은 그 순간 건져내지 못하면 죽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천막 치고 부처님 모셔 놓으면 얼마든지 법당이 될 수 있지요. 그 법당 때문에 죽어가는 동포들을 모른체하고 1억을 통장에 넣어 놓는다는 것은 내 양심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말씀의 감동은 두고두고 잊히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정말 이렇게 희망이 많구나.’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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