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서대신동 2층집의 자기 방에서 공부중인 중학생 시절의 박종철군. 1977년 부산 영도제일중학교에 입학한 그는 학우들을 대신해 벌을 자청할 만큼 헌신적인 반장이었다.
박정기-아들보다 두 살 많은 아버지 17
1976년 12월, 맏이 종부가 재수를 준비하러 서울에 올라갔다. 막내 종철은 형을 많이 그리워했다. 형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따를 정도로 형에 대한 믿음이 절대적인 아이였다. 막내는 아버지인 내 앞에선 조심했지만 아내에겐 어리광을 잘 부렸다. 두 사람의 관계는 샘이 날 만큼 친밀했다. 누나와는 장난을 잘 치는 사이였다.
이듬해 종부는 서강대 이공대에 합격했고 철이는 영남제일중학교(지금의 영남중학교)에 입학했다.
철이네 반에는 지적 장애를 지닌 학생이 한 명 있었다. 그런데 이를 모르는 교사가 수업시간에 질문을 했다. 학생이 당황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교사는 자신이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손을 치켜올렸다. 이때 철이가 교사를 막아섰다.
“선생님요, 지가 대신 맞겠십니더. 지를 때려주이소.”
교사는 이 말을 듣고 더 화가 났다.
“그래? 니 주제에 책임진단 말이야!”
교사는 철이의 뺨을 때린 뒤 교실을 나갔다. 학생들은 갑작스레 벌어진 상황에 아무 말도 못하고 숨죽이고 있었다. 철이는 바로 교사를 뒤따라가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교사는 그때에야 비로소 상황을 이해했다. 선생님은 그 후로 반장인 철이를 각별히 아껴주었다고 한다.
중학교 3학년 때 비슷한 일이 한 번 더 있었다.
철이네 반에 김진용이라는 학생이 있었다. 그가 잘못한 일도 없는데 어느날 교사에게 억울하게 두들겨맞고 기합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철이가 그를 대신해 기합을 받겠다고 나섰다. 교사는 건방지다며 심하게 때리고 기합을 줬다. 김진용은 그날 이후 평생토록 철이를 잊을 수가 없었다. 30년의 세월이 흐른 2006년 봄, 김진용이 ‘박종철기념사업회’를 찾아왔다. 그는 자신을 종철이의 중학교 동기라고 소개했다. 가무스름한 얼굴에 뿔테 안경을 쓴, 왠지 작가의 느낌이 나는 사람이었다. 대우그룹에서 일했다던 그는 종철에 관한 책 한 권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제가 알려진 작가는 아니지만 죽기 전에 종철이를 위해 책 한 권을 쓰는 게 소원입니다. 그동안 철이에게 빚을 진 기분으로 살았는데 책을 완성해 영전에 바치고 싶습니다.” 그는 87년 철이의 죽음 소식을 듣고 미안하고 부끄러웠다고 했다. 한 달쯤 뒤 형 종부에게 원고가 도착했다. 종부는 그와 논의하며 글을 진척시키는 데 도움을 줬다. 그때 김진용은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간암으로 병마와 싸우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에 입원한 요양병원에서도 오로지 원고에 매달렸다. 그해 10월, 그의 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부고였다. 종부가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상한 갈대-고 박종철 20주기 추모 소설>(에세이)은 그렇게 작자가 세상을 떠난 뒤인 11월20일 유고집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소설 형식으로 쓰였다. 김진용은 당시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을 만나며 꼼꼼하게 취재했다. 평전은 사실성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소설 형식으로 완성했다. 가족에 관한 내용과 몇몇 부분 말고는 사실에서 벗어난 내용이 거의 없었다. 이 소설의 맨 앞장엔 제목을 따온 구절이 있다.
“정의가 이길 때까지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을 것이다.”
신이 계시다면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아 진리가 구현된 참세상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그의 믿음이 담겨 있는 글이다. 김진용은 책에서 또 이렇게 썼다.
“박종철! 그 가슴에서 타올라 아직도 우리를 태우고 있는 사랑, 그 사랑은 지독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새롭게 해석되고, 피어날 것입니다.”
김진용이 죽음을 앞두고서도 소설 집필에 매달렸던 것은 종철이 남긴 ‘지독한 사랑’을 새롭게 해석하고 피워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 뒤 박종철기념사업회에서 집필 자료를 구하기 위해 그의 부인에게 연락했는데 닿지 않았다. 이 지면을 통해서나마 두 사람에게 깊이 감사드리고 싶다. 특히 “고맙다”는 말을 할 기회도 없이 떠나버린 김진용에겐 어떤 감사의 말로도 부족할 것이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구술작가 송기역
철이네 반에 김진용이라는 학생이 있었다. 그가 잘못한 일도 없는데 어느날 교사에게 억울하게 두들겨맞고 기합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철이가 그를 대신해 기합을 받겠다고 나섰다. 교사는 건방지다며 심하게 때리고 기합을 줬다. 김진용은 그날 이후 평생토록 철이를 잊을 수가 없었다. 30년의 세월이 흐른 2006년 봄, 김진용이 ‘박종철기념사업회’를 찾아왔다. 그는 자신을 종철이의 중학교 동기라고 소개했다. 가무스름한 얼굴에 뿔테 안경을 쓴, 왠지 작가의 느낌이 나는 사람이었다. 대우그룹에서 일했다던 그는 종철에 관한 책 한 권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제가 알려진 작가는 아니지만 죽기 전에 종철이를 위해 책 한 권을 쓰는 게 소원입니다. 그동안 철이에게 빚을 진 기분으로 살았는데 책을 완성해 영전에 바치고 싶습니다.” 그는 87년 철이의 죽음 소식을 듣고 미안하고 부끄러웠다고 했다. 한 달쯤 뒤 형 종부에게 원고가 도착했다. 종부는 그와 논의하며 글을 진척시키는 데 도움을 줬다. 그때 김진용은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간암으로 병마와 싸우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에 입원한 요양병원에서도 오로지 원고에 매달렸다. 그해 10월, 그의 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부고였다. 종부가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상한 갈대-고 박종철 20주기 추모 소설>(에세이)은 그렇게 작자가 세상을 떠난 뒤인 11월20일 유고집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소설 형식으로 쓰였다. 김진용은 당시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을 만나며 꼼꼼하게 취재했다. 평전은 사실성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소설 형식으로 완성했다. 가족에 관한 내용과 몇몇 부분 말고는 사실에서 벗어난 내용이 거의 없었다. 이 소설의 맨 앞장엔 제목을 따온 구절이 있다.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