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길을찾아서] 택시노동자 박종만씨 분신으로 끝낸 ‘정신적 방황’ / 박정기

등록 2012-01-04 19:47수정 2012-01-05 16:13

1984년 11월30일 동료 노동자 해고에 맞서 농성중 분신 자살한 서울 은평구 민경교통의 택시기사 박종만 열사의 죽음은 학업과 시국 사이에서 번민하던 박종철씨가 민주화운동에 적극 투신하는 계기가 됐다. 사진은 85년 12월1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기독교공원 묘지에서 열린 박종만 열사 1주기 추도식 장면.  사진작가 박용수씨
1984년 11월30일 동료 노동자 해고에 맞서 농성중 분신 자살한 서울 은평구 민경교통의 택시기사 박종만 열사의 죽음은 학업과 시국 사이에서 번민하던 박종철씨가 민주화운동에 적극 투신하는 계기가 됐다. 사진은 85년 12월1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기독교공원 묘지에서 열린 박종만 열사 1주기 추도식 장면. 사진작가 박용수씨
박정기-아들보다 두 살 많은 아버지 23
1984년 11월, 서울대 인근의 막걸릿집에서 언어학과 동기들과 술자리를 마치고 나온 철이(박종철)는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한 친구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지난 학기는 나를 가두고 있던 알을 깨트리는 아픔의 시간이었어. 내가 착실히 학업에 열중하고 있을 거라고 믿는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 참 마이 생각했는데 부모님께 솔직히 다 털어놓고 이해를 구하고 싶지만 걱정만 안겨드릴 것 같아. 앞으로도 운동을 하면서 평생 이런 문제와 갈등으로 내 자신을 괴롭힐 것 같아. 이런 갈등과 고민을 돌아볼 새도 없이 정신없이 투쟁하고 있는데, 이런 투쟁 속에 공포를 느껴.”

철이의 고민은 길게 가지 않았다. 그가 방황에 빠져 있던 그 순간 ‘민경교통’의 택시노동자 박종만씨가 분신하는 일이 벌어졌다.

11월30일, 동료의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단식 밤샘농성 중이던 박종만은 택시회사 사무실의 난로에서 빼낸 석유를 몸에 끼얹고 분신 항거했다. 운명하기 전 그는 말했다.

“내가 이렇게 떠나면 안 되는데…,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

그의 주검은 신촌의 연세대세브란스병원에 안치되었다. 경찰은 주검을 빼앗기 위해 영안실을 포위했고, 택시노동자들은 격렬하게 저항했다. 분신 직전 박종만은 배차일지에 이렇게 썼다.

“내 한 목숨 희생되더라도 기사들이 더이상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해야겠다.”

‘도시의 막장’으로 불리는 택시회사의 노동자들은 박종만의 분신 이후 20년간 스물일곱명이 분신으로 목숨을 잃었다. 철이는 박종만이 겪었을 고민과 고통의 크기를 생각하며 자책하고 후회했다.


‘그동안 내는 내 고민에만 빠져 있었는데 부끄럽구나. 내 갈등과 고민이란 살아있는 자의, 살아서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가지려는 자의 부끄러운 하소연에 불과했구나.’

박종만 분신 사건은 철이가 방황을 끝내는 계기가 되었다. 고민을 털어낸 듯 아들은 다시 힘차게 나아갔다. 이때부터 철이는 거리시위에서 위험할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경찰과 맞섰다고 한다.

85년, 철이는 2학년이 되었다. 후배들이 생긴 것이다. 아들은 만사 제치고 후배들을 만나러 다녔다. 그때 후배들에게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 등의 책을 선물하며 이런 말을 했다.

“가장 인간적인 삶은 올바른 세계관에 기초해 세계를 바라보고 또 변혁해 가는 거야.”

철이가 후배들을 만나고 다닌 것은 대학문화연구회에 들일 후배들을 찾는 목적도 있었다. 언어학과에서 철이와 같은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친구는 한 명뿐이었다. 언어학과엔 학생운동에 적극적인 학생들이 드물었다. 과 활동에선 동아리 동료들과 함께할 때처럼 뜻을 모으고 실천하는 일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았다. 아들은 2학년 들어 과 활동에 비중을 두고 노력을 기울였다.

철이는 언어학과 학생회의 홍보부장과 과 학회인 ‘제3세계 연구회’의 지도 선배로 활동했다. 2학년 들어 학회 일과 동아리 활동으로 분주해져 늦은 귀가와 외박이 잦았다. 아들은 후배들의 세미나 장소를 마련할 목적으로 기숙사를 나와 대림동에 자취방을 마련했다.

자취방은 비밀스런 학습 장소였기 때문에 주변의 의심을 피할 수 있고, 경찰들의 급습에 대비해 출입구와 화장실이 따로 떨어진 곳이어야 했다.

아들은 나(박정기)와 아내에겐 하숙한다고 거짓말했다. 과외를 단속하던 시절이었는데 철이는 비밀과외로 월 12만원을 벌었다. 그 돈은 모두 하숙비로 낸다고 말했다. 철이의 자취방은 형 종부만 알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서강대 시절 종부의 자취방도 운동권 학생들의 세미나 방으로 쓰였다.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그해 4월11일 막내는 우리에게 편지를 보냈다.

“당분간은 하숙집으로 전화는 걸지 마십시오. 아주머니와 저희들 간에 약간의 불화가 발생하여 전화는 사용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 참 이 편지는 제가 불러주고 누가 옆에서 타자기를 쳐주는 것이 아니라 제 손으로 직접 타자를 치고 있는 것입니다. 놀라셨지요? 이렇게 저는 다재다능하답니다.”

4월30일치 편지를 보낼 때는 이미 집을 옮긴 이후였다.

“이번에 옮긴 하숙집은 이사온 지가 얼마 안 된 새집이라서 아직 전화가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자주 편지를 하든지 전화를 하든지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전화를 만류했던 것은 아들의 자취방이 이념 동아리의 학습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구술작가 송기역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