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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찾아서] 수감번호 80번…청계피복노조 위원장과 ‘통방’ / 박정기

등록 2012-01-09 19:56

1986년 4월11일 청계피복노동조합의 ‘장시간 노동 철폐와 노동운동 탄압하는 독재정권 퇴진 촉구대회’는 노학연대 투쟁으로 이어져 서울시내 곳곳에서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박종철씨는 이날 시위에 참가했다가 또다시 체포됐다.
1986년 4월11일 청계피복노동조합의 ‘장시간 노동 철폐와 노동운동 탄압하는 독재정권 퇴진 촉구대회’는 노학연대 투쟁으로 이어져 서울시내 곳곳에서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박종철씨는 이날 시위에 참가했다가 또다시 체포됐다.
박정기-아들보다 두 살 많은 아버지 26
1985년 말 철이(박종철)가 속해 있던 대학문화연구회는 서클 활동을 해소하고 다른 서클 및 학생들과 함께 ‘서울대학교 반제반군부파쇼 민족민주학생투쟁위원회’(약칭 민민투), ‘전국 반제반파쇼 민족민주투쟁 학생연합’(전민학련)을 만들었다.

이듬해 3월 3학년이 된 철이는 언어학과 학생회장으로 선출되었다. 4월 초 성균관대 2학년 학생들이 전방입소 거부 투쟁을 벌였다. 성균관대에 이어 서울대 85학번 학생들도 전방입소훈련 거부 투쟁에 나섰다. 당시 대학생들은 1학년 땐 문무대, 2학년 땐 전방에 입소해 병영집체교육을 받아야 했다.

문무대 입소 훈련은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1주일간의 훈련이었다. 서울대 1학년 학생들은 문무대 입소 훈련 반대 투쟁에 나섰다. 철이는 입소 훈련을 앞두고 신입생들에게 말했다.

“왜 우리들은 즐겁고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군대에 입대하지 못하고 마지못해 끌려가는 모습만 보여야 합니까? 같은 민족을 향해 밤새 총부리를 겨누고, 그러다가 80년 5월처럼 지배자들이 위기에 처하게 되면 동포의 살인자로 돌변하고, 이러한 것들이 현재 군대의 모습이 아닙니까?”

신입생들의 수련회(엠티)가 경기도 가평에서 열렸다. 밤늦게 가평에 도착한 철이는 신입생들과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후배들이 과 학생회장인 철이에게 질문했다.

“운동을 포기하면 대학을 졸업하고 잘살 수 있을 텐데 왜 고생을 자처하세요?”

아들은 후배들의 질문에 성의껏 대답한 뒤, 다짐하듯 말했다.

“이 땅의 민주화와 민중 해방을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하면 나는 죄인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결의를 다지고 또 다지기는 하지만 목숨을 바친다는 것을 생각하면 심지가 굳지 못한 나 자신에 맥이 풀리기도 하지. 하지만 장담할 수 있는 것은 나는 아직도 운동을 나의 전부로 생각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거야.”


86년 4월11일, 청계피복노동조합(약칭 청계노조)은 ‘장시간 노동 철폐와 노동운동 탄압하는 독재정권 퇴진 촉구대회’를 열었다. 청계노조는 전태일이 분신 항거한 뒤 그의 벗들이 만든 노동조합이다. 이소선과 청계노조는 노동운동의 상징이었다.

철이는 시위대와 함께 왕십리역에서 신당동을 향해 걸으며 구호를 외쳤다. 시위대가 신당동 네거리에 이르렀을 때 곤봉부대가 튀어나와 기습했다. 시위대가 해산되는 과정에서 ‘억세게 재수없는 사나이’인 아들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연행되었다. 성동경찰서에 끌려간 철이는 전과 때문에 구속되었고, 수감번호 ‘80’번 패찰을 달고 성동구치소로 송치되었다.

구치소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저녁, 윗방에서 우렁찬 구호소리가 들렸다.

“군부독재 타도하자!”

며칠 전 왕십리 시위에서 외친 구호였다. 아들은 그와 함께 구호를 외쳤다. 두 사람은 통방(감옥에서 방과 방 사이 나누는 대화로 규정상 금지된 행위이다)을 시작했다.

“저는 박종철이라고 합니다.”

“저는 청계피복노조에서 일하는 황만호입니다. 민종덕 위원장의 후임으로 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황만호도 이번 시위에서 구속되었다. 철이는 청계노조 위원장과 함께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에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통방을 하며 아들은 노동자 출신인 그가 가진 깊은 견해와 통찰력, 그리고 강인한 의지에 놀라며 자신의 나태를 반성했다. 얼굴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두 사람은 통방을 통해 동지애를 느꼈다. 철이는 감옥에서 나온 뒤 친구들에게 황만호와 청계노조의 노동자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는 살아있는 전태일이 참 많드라.”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나(박정기)는 철이가 운동권 학생인 걸 이때에야 알게 되었다. 소식을 들은 아내와 나는 놀란 마음으로 서울로 향했다. 우리는 ‘다시는 데모하지 말라’며 아들을 나무랐다. 아내는 아들을 면회한 뒤 신림동에 있는 아들의 하숙집에 들렀다. 아들의 책상 위엔 한 청년의 사진 액자가 놓여 있었다. 아내가 하숙집 주인에게 사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물었다.

“이게 누구 사진인데 여기 올려놨능교?”

“전태일이에요.”

“전태일이 누군데예? 철이가 좋아한 모양이죠?”

“노동자인데 분신한 분이래요.”

나와 아내는 매주 번갈아가며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성동구치소로 향했다. 아내는 면회하러 갈 때마다 눈물바람이었다. 나는 서울행 기차를 탈 때마다 아내가 불안했다. 아들은 구치소에서 우리에게 자주 편지를 보냈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구술작가 송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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