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길을찾아서] 종철의 아비로, 한열의 어미로 ‘환장난 365일’ / 박정기

등록 2012-02-15 20:26

1987년 6월9일 직격 최루탄에 맞은 이한열군이 사경을 헤매고 있던 7월3일 박정기(오른쪽)씨가 연세대세브란스병원을 방문해 이군의 아버지 이병섭(왼쪽)씨를 위로하고 있다. 같은 공무원이었던 두 아버지의 만남은 당시 <동아일보>에 실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87년 6월9일 직격 최루탄에 맞은 이한열군이 사경을 헤매고 있던 7월3일 박정기(오른쪽)씨가 연세대세브란스병원을 방문해 이군의 아버지 이병섭(왼쪽)씨를 위로하고 있다. 같은 공무원이었던 두 아버지의 만남은 당시 <동아일보>에 실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정기-아들보다 두 살 많은 아버지 51
1988년 2월 박정기는 첫 손자를 얻었다. 아내 정차순은 짐을 꾸려 큰아들 종부의 신혼집인 서울 아현동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때부터 손자를 키우며 20년에 걸친 서울살이가 시작됐다. 아현동 언덕배기에 있는 신혼집은 유독 개 짖는 소리가 잦아 동네 사람들이 불편해했다. 기관원들이 주변을 감시하고 있기 때문이란 것을 훗날 알게 되었다.

부산의 집은 지난해 정년퇴임한 뒤 정차순의 뜻에 따라 사리암 옆의 신태양아파트로 옮겼다. 박정기는 유가협의 사무실인 한울삶을 마련할 때까지 부산과 서울을 오르내리며 활동했다. 그는 때로 ‘하필 유가협이란 단체에 참여했을까?’ 하고 후회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자신의 길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후회를 떨쳐냈다. 박정기는 잠들기 전 박종철이 떠오르는 날이 많았다.

“이부자리에 누우면 철이가 고문을 버티다 버티다 최후에 가슴속에 간직한 게 무엇일까 생각했지. 아들을 생각하며 한 치 부끄러움 없이 싸워나가자 다짐하면서 잠들곤 했어.”

이소선 어머니와 더불어 박정기의 유가협 생활에서 첫번째 동지는 배은심이다. 이한열의 어머니 배은심은 아들을 떠나보낸 뒤부터 바로 유가협 활동을 시작했다. 배은심을 처음 만났을 때 박정기가 말했다.

“정부 쪽 말은 절대 듣지 마세요. 이건 산 경험입니다. 나중에 후회해요.”

박정기는 이한열의 아버지 이병섭과도 가깝게 지냈다. 이한열이 사경을 헤매고 있던 87년 7월초 박정기가 연세대세브란스병원으로 찾아갔을 때 처음 만났던 두 사람은 박종철 사건 선고공판을 앞두고 한번 더 만남을 가졌다. 이병섭은 애초 재야인사들의 접촉을 꺼렸지만 박정기는 예외였다. 농협에서 근무하는 그는 공무원인 박정기에게서 동질감을 느꼈다. 박정기는 종종 그에게 말했다.

“아버님이 겪은 일은 내가 당한 것보다 더한 고통일 낍니다.”

박정기의 말은 배은심·이병섭 부부에게 유일한 위로였다. 배은심의 박정기에 대한 첫인상은 강했다.

“아픈 사람끼리 만났지. 자식들 죽음 때문에 우린 만날 수밖에 없었어. 자식 잃은 동지 아녀. 그때도 아버진(박정기) 저렇게 등이 구부정했어요. 첨 뵀을 땐 표정이 우울해가지고 귀신 같았어요. 귀신.”

박정기가 유가협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두 사람은 6월의 어머니·아버지로서 함께 초대받는 일이 많았다.

“무슨 행사가 있으믄 사람들이 우릴 같이 불러요. 어쩌다 혼자 가면 왜 혼자 왔냐고 할 정도였어.”

배은심은 주변 사람들이 오해할 만큼 박정기와 함께 활동했다.

“내 발걸음이 아버님(박정기) 따라다니느라고 빨라져버렸어. 아버님은 금세 가버려. 앞만 보고 가닝께. 사람이 뒤에 오는지 안 오는지 체크를 해얄 거 아녀? 지금은 어디 가면 내가 걸음이 젤 빠르당께. 오해도 사. 뒷사람 안 챙긴다고. 종철 아버지 따라다니다가 못된 것 배워버렸어. 뭔 인연이 있어도 이런 인연이 있는가 몰라. 우린 환장난 애미 애비였어. 종철 어머니가 서운할지 몰라도 365일 아버지랑 나는 떨어질 틈이 없었어.”

2년 전 박정기가 협심증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였다. 배은심은 가족보다 가깝게 지내온 동지를 잃을까 노심초사했다. 문병을 마치고 광주로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그는 혼자 훌쩍였다. 팔순 넘은 박정기의 나이가 새삼 걱정되었다.

“아버님 인생이 못 죽어서 한이 목까지 차오른 삶인디 저러다 이 양반이 돌아가시면 어쩌쓰까나 하는 심정였응께.”

그는 혼자 울다 또 혼자 웃고, 다시 혼자 울었다.

“아버님이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춰. 몸이 구부정하니 요상한 춤을 추는디 그것도 내가 볼 땐 환장병 난 몸짓이야. 환장이 나서 저런 몸짓을 하는 거여. 한이 맺혀서.”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이병섭은 95년 10월20일 아들 이한열의 곁으로 떠나갔다. 그는 정년퇴임 뒤 3년 넘게 고혈압을 앓았다. 아들을 잃은 뒤 고혈압 증세가 심해진데다 해마다 6월이면 신체마비 증상으로 고통을 겪었다. 죽기 3년 전부턴 언어장애를 겪었다. 박정기는 일찍 떠난 이병섭을 생각하며 말했다.

“신경을 쓰니까 발병 나는 기지. 아버지 아프실 때 위로해 드리려고 몇 번 문병을 갔어. 사람이 말수가 적고 믿음직한 분이었어요. 한열 어머닌 바람 들려서 우리랑 다니느라고 아픈 줄도 모르고 살았지만 아버진 속으로 아픔을 삭이지 못해 끝내 떠나신 거지. 지금은 최루탄 없는 세상에서 한열이를 만나고 있을 거구마.”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구술작가 송기역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