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맨 왼쪽)씨가 1988년 10월26일 서울 마포 최루탄제조회사 삼양화학의 사장실에서 광주·전남최루탄부상자협의회 회원들과 점거농성을 하고 있다. 이날 배씨와 한영자 사장이 만난 장면을 ‘최루탄 화해’로 소개한 <조선일보>의 기사 탓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박정기-아들보다 두 살 많은 아버지 61
1988년 10월27일치 <조선일보>에 실린 사진과 기사를 보고 박정기는 배은심(이한열 어머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최루탄 때문에 6000명 이상이 다쳐 신음하고 있는데 어떻게 혼자 화해의 악수를 나눌 수 있단 말인가! 기사 내용은 온통 화해의 분위기였다.
‘누가 먼저인지 모르게 두 사람은 손을 내밀었고 서로의 손을 포개 잡았다. 아들을 최루탄에 의해 잃은 어머니와 최루탄 제조업체의 사장으로서 정신적 고통을 앓아온 또다른 어머니는 한동안 힘껏 서로의 손을 쥐고 있었다.’
박정기는 해명을 듣고 싶어 배은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배은심은 이날 어느 대학의 초청으로 지방에 내려가 있었다. 농성장의 유가족들도 혼란에 빠졌다. 그들은 박정기에게 “한열이 엄마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 제 자식만 중요하고 남의 자식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냐!”며 하소연했다.
5·18 유가족들의 항의전화가 줄기차게 걸려왔다. 최루탄 피해자들과 여러 민주단체에서도 전화를 걸어 배은심을 질책했다. 박정기는 딱히 답해줄 말이 없었다. 배은심이 그런 일을 벌일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최루탄 제조회사 사장과 악수하는 사진이 선명하게 실린 신문을 보면 일말의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그날 밤 지방에서 집회를 마치고 올라온 배은심의 억울한 사정을 들은 뒤에야 그는 신문사에서 왜곡 보도한 기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영자가 손을 내밀 때 난 뿌리쳤당께요. 기자놈이 악수하는 것처럼 묘허게 연출해부렀어.”
박정기는 배은심의 해명을 듣고 탄식했다.
“사설이야 지네들 맘대로 쓴다캐도 사실은 있는 그대로 담아야 신문이지 그게 신문인겨?”
유가족들도 자초지종을 듣고 서운한 감정을 풀었다. 이튿날인 10월29일 박정기가 조선일보사 편집국에 도착했을 때 배은심은 이미 신문을 들고 기자들에게 항의하고 있었다. “난 화해한 적이 없다니께. 내 새끼가 망월동에 묻혀 있는 마당에 무슨 얼어죽을 화해여? 기사 쓴 양반 당장 나와보쇼!” 이한열의 고종사촌인 시인 마대복도 옆에서 기자들을 꾸짖었다. “어떻게 사실과 정반대의 기사를 쓸 수 있습니까? 담당 기자 어딨어요? 사실 여부를 확인해 봅시다.” 박정기도 거들었다. “기사를 쓴 사람이 있을 게 아니오? 지금 나와서 물어보믄 되지 않겠습니껴?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다른 기 있으믄 정정해야 할 기 아이가!” 편집부장이 난색을 표하며 답했다. “지금 담당 기자가 외부에 나가 있어서 어렵습니다.” “그럼 기자가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배은심과 마대복은 정정기사를 확인할 때까지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을 작정이었다. 세 사람은 편집국에서 기자를 기다렸다. 그런데 기자는 밤늦도록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다. 정정기사를 끈질기게 요청했지만 기자들은 묵묵부답이었다. 이들은 이날 한숨도 자지 못하고 밤샘농성을 벌였다. 다음날 아침 기독교회관에서 모인 유가족들은 조선일보를 혼쭐내자고 의견을 모은 다음 길을 나섰다. 맨 먼저 도착한 이소선이 편집국에 들어섰다. 그가 배은심에게 다그쳤다. “한열 엄마, 저거 싹 밀어부러!” 이소선이 가리킨 책상 위엔 컴퓨터가 놓여 있었다. 배은심이 밀어내자 컴퓨터가 바닥에 떨어져 박살났다. 배은심은 편집국을 돌아다니며 통화중인 기자들의 수화기를 가로채 내던지며 업무를 막았다. “느그들이 엉뚱한 기사 써갖고 나를 나쁜 년 만들어놓고 태평하게 또 신문을 맹글라고 허냐? 조선일보가 폐간허는지 안 허는지 이참에 한번 보자잉.”
뒤늦게 조선일보사에 도착한 다른 유가족들은 편집국 입구를 찾아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고장 수리중’이라고 적힌 팻말이 걸려 있었다. 최봉규(최우혁의 아버지)가 경비원에게 물었다.
“엘리베이터 언제 고칩니까?”
“수리하고 있으니 기다려 보십시오.”
유가족들은 로비에서 구호를 외치며 기다렸다.
“조선일보 타도하자!” “조선일보 자폭하라!”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고장난 엘리베이터를 수리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구술작가 송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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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들도 자초지종을 듣고 서운한 감정을 풀었다. 이튿날인 10월29일 박정기가 조선일보사 편집국에 도착했을 때 배은심은 이미 신문을 들고 기자들에게 항의하고 있었다. “난 화해한 적이 없다니께. 내 새끼가 망월동에 묻혀 있는 마당에 무슨 얼어죽을 화해여? 기사 쓴 양반 당장 나와보쇼!” 이한열의 고종사촌인 시인 마대복도 옆에서 기자들을 꾸짖었다. “어떻게 사실과 정반대의 기사를 쓸 수 있습니까? 담당 기자 어딨어요? 사실 여부를 확인해 봅시다.” 박정기도 거들었다. “기사를 쓴 사람이 있을 게 아니오? 지금 나와서 물어보믄 되지 않겠습니껴?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다른 기 있으믄 정정해야 할 기 아이가!” 편집부장이 난색을 표하며 답했다. “지금 담당 기자가 외부에 나가 있어서 어렵습니다.” “그럼 기자가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배은심과 마대복은 정정기사를 확인할 때까지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을 작정이었다. 세 사람은 편집국에서 기자를 기다렸다. 그런데 기자는 밤늦도록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다. 정정기사를 끈질기게 요청했지만 기자들은 묵묵부답이었다. 이들은 이날 한숨도 자지 못하고 밤샘농성을 벌였다. 다음날 아침 기독교회관에서 모인 유가족들은 조선일보를 혼쭐내자고 의견을 모은 다음 길을 나섰다. 맨 먼저 도착한 이소선이 편집국에 들어섰다. 그가 배은심에게 다그쳤다. “한열 엄마, 저거 싹 밀어부러!” 이소선이 가리킨 책상 위엔 컴퓨터가 놓여 있었다. 배은심이 밀어내자 컴퓨터가 바닥에 떨어져 박살났다. 배은심은 편집국을 돌아다니며 통화중인 기자들의 수화기를 가로채 내던지며 업무를 막았다. “느그들이 엉뚱한 기사 써갖고 나를 나쁜 년 만들어놓고 태평하게 또 신문을 맹글라고 허냐? 조선일보가 폐간허는지 안 허는지 이참에 한번 보자잉.”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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