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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찾아서] 구속회원·양심수 석방 요구하며 법무부서 농성 / 박정기

등록 2012-03-06 19:56

1988년 12월25일 유가족들은 재야 인사들과 함께 과천 정부청사로 찾아가 법무부 장관 면담을 요청하다 지하 1층으로 진입해 양심수 전원 석방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였다. 이날 인근 경찰서로 연행된 이소선(왼쪽 둘째) 등 유가족들을 백기완(오른쪽부터)·계훈제 선생이 찾아가 면담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1988년 12월25일 유가족들은 재야 인사들과 함께 과천 정부청사로 찾아가 법무부 장관 면담을 요청하다 지하 1층으로 진입해 양심수 전원 석방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였다. 이날 인근 경찰서로 연행된 이소선(왼쪽 둘째) 등 유가족들을 백기완(오른쪽부터)·계훈제 선생이 찾아가 면담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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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연말이 다가오도록 유가족들의 의문사 진상규명 농성은 계속됐다. 유가족들은 기독교회관 3층 농성장의 창문마다 비닐을 덧씌워 외풍을 막고 난로를 마련했다. 하루 종일 바람 찬 야외 집회에 참가하고 시민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며 돌아오면 깊은 밤이었다. 좁은 사무실에 담요 한 장을 덮고 잠이 들었지만 무릎이 시렸다.

한기 가득한 겨울에도 활동은 쉬는 날이 없었다. 거의 날마다 집회가 끝나면 국회의사당으로 찾아가 국회의장실과 야당 원내총무실을 방문했다. 그즈음 국회엔 5공 특위(제5공화국의 정치권력형 비리조사특별위원회)와 광주 특위, 양대선거 부정 특위가 가동중이었다. 유가족들은 이 중 5공 특위 안에 ‘의문사 특위’ 구성을 요구했다. 국회법 개정을 통해 11월3일부터 열린 ‘5공 청문회’는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며 연일 국민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민주당의 김영삼, 평화민주당의 김대중 등 야당 총재들의 자택도 방문했다. 동교동의 김대중을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유가족들이 찾아갔을 때 그는 부인 이휘호와 함께 차를 대접했다. 어머니들을 대하는 태도가 공손했다. 그는 언론을 통해 소상하게 유가족들의 투쟁을 이해하고 있었다. 나중엔 의문사당한 이와 유가족의 이름을 거의 외울 정도였다. 유가족들은 김대중에게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 특위’의 구성을 요구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진상규명을 위해 제가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원하는 답변을 들은 유가족들은 상도동 김영삼의 자택에도 찾아가 같은 요구를 했다. 평민당사, 민주당사, 공화당사에도 찾아가 ‘의문사 특위’ 설치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12월14일, 유가족들은 차를 대절해 강원도 인제군 백담사로 향했다. 전두환·이순자 부부의 구속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기 위해서였다. 한달 전 전두환은 연희동 집에서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했다. 방송으로 생중계된 이 성명에서 그는 5공화국 때 벌어진 인권피해·광주항쟁에 대해 “피해자와 유가족의 한이 풀어질 수 있다면 어떠한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는 이날 백담사로 도피했다.

유가족들은 열흘 뒤 정부중앙청사로 달려가 농성을 벌였다. 양심수로 감옥에 있던 장기표·문부식·김현장 등이 출소한 뒤 함께한 시위였다. 이들은 석방되자마자 그동안 자신들을 위해 투쟁을 벌여온 민가협과 유가협 회원들을 만나기 위해 기독교회관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법정소란으로 구속된 오영자·임분이와 감옥에 남아 있는 양심수들의 전원 석방을 요구하기 위해 법무부에서 농성을 벌이기로 결정했다.

정부과천청사를 찾아간 날은 마침 12월25일 성탄절이었다. 청사에 도착한 유가족들은 허형구 법무부 장관 면담을 요구했다. 그러나 ‘면담이 어렵다’는 답변을 듣고 그 자리에서 무기한 농성을 선언했다. 유가족 등 53명의 농성자들은 청사로 진입해 건물 지하에 있는 후생동 민방위대피소에서 밤샘농성을 시작했다. 장기 농성에 대비해 취사도구도 준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경 1000여명이 동원되어 건물 지하로 몰려왔다. 저항하는 유가족들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역부족이었다. 유가족 한 명당 전경 두세 명이 붙어 연행했다. 들려 나가고, 끌려 나갔다. 박정기도 지하에서 1층으로 끌려가는 동안 계단과 벽에 부딪히며 온몸에 멍이 들었다.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1층으로 끌어올린 뒤에도 전경들은 유가족들을 구타했다. 이이동의 아버지는 여러 명의 전경에게 두들겨 맞고 있었다. 전경들은 저항하는 허두추를 군홧발로 짓밟았다. 결국 부상당한 허두추는 급히 안양의 중앙병원으로 실려갔다.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경찰은 박정기와 유가족들을 안산·광명·안양 경찰서에 나누어 유치장에 가뒀다. 소식을 들은 민가협 회원들이 경찰서로 달려와 또다시 농성을 벌였다. 유가족 일부는 이틀 뒤 새벽에 훈방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귀가하지 않고 유치장에 남아 있는 유가족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곧이어 박정기와 남은 유가족들이 모두 풀려났지만 법무부 장관 면담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오영자·임분이가 감옥에 있는 상황에서 새해를 기다리는 박정기의 심정은 어느 때보다 쓸쓸했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구술작가 송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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