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식은 13살 터울인 둘째형 재길(뒤쪽)을 평생토록 믿고 따랐다. 사진은 방계성(왼쪽) 전도사의 주선으로 평양에서 학업중이던 재길이 1937년 12월 신사참배 거부로 투옥됐다 풀려난 평양 산정현교회 담임 주기철(오른쪽) 목사에게 요청해 함께 찍은 모습이다. 재길은 훗날 방 전도사의 사위가 됐다.
오재식-현장을 사랑한 조직가 5
1945년 5월 오재식은 추자도를 떠나 강원도 원산에 있던 둘째형 재길에게 갔다. 13살 터울인 재길형은 그가 부모보다 더 의지하고 존경하는 사람이다.
앞서 36년 방계성 전도사의 부름을 받아 평양으로 간 재길은 방 전도사의 도움으로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 추자도에서도 교회를 열성으로 다녀 일본인 교사에게 핍박을 받았던 재길은 주기철 목사가 있던 평양 산정현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방 전도사가 부산 초량교회 때 만난 주 목사에게 감명받아 그의 길을 따르고자 산정현교회에서 일하고 있던 터였다.
36년 7월 산정현교회에 부임한 이래 주 목사는 일제의 신사참배 요구를 거절한다는 이유로 수차례 체포당하며 갖은 고초를 겪었다. 37년 12월 어느날 풀려나 돌아온 주 목사를 보며 재길은 불현듯 자신이 사랑하는 주 목사, 방 전도사와 사진 한 장 찍은 적이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두 분에게 사진을 같이 찍자고 요청하자, 평소와 달리 주 목사가 흔쾌히 그러자며 깨끗한 두루마기로 갈아입고 나왔다. 그렇게 해서 44년 순교 이전 주 목사의 얼굴이 제대로 나온 사진이 한 장 남게 되었다. 그 뒤 38년 9월 장로회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하면서 주 목사는 교단에서 쫓겨나고 산정현교회는 폐쇄를 당하는 등 수난은 날로 심해졌다.
한편 재길은 방 전도사의 도움으로 독학을 하며 약종상 시험을 볼 수 있었다. 시험 성적이 좋았던 터라 ‘조센진’이어도 별 트집을 잡지 못하고 합격시켜 주었다. 이리하여 재길은 약방을 차릴 자격을 얻게 되었고 생활의 안정을 꾀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때는 일제 치하였다. 젊은 재길을 일제가 가만둘 리 없었다. 곧 징집 명령이 떨어질 판이었다. 방 전도사는 고심했다. 살려고 평양까지 온 사람을 사지로 내몰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궁리 끝에 당시 중국에 선교사로 가 있던 방지일 목사에게 연락을 취했다. 방 목사는 방 전도사와 친척간이었다. 방 목사는 이런 부탁이 부담스러운 일임에도 흔쾌히 허락을 해주었다. 재길은 방 전도사의 맏아들인 주와 함께 중국으로 몸을 피신했다.
올해 103살인 방지일 목사는 얼마 전까지도 재식을 만나면 “재길이 잘 있어?” 하고 안부를 묻는다고 한다.
중국으로 몸을 피했다가 돌아온 재길은 평양에 자리를 잡고, 방 전도사의 딸 남해와 혼인해 가정도 꾸렸다. 그렇지만 풍전등화와 같은 나라 형편에 개인의 삶은 여전히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에서 점차 패색이 짙어갔다. 그동안 일본군이 점령했던 인도네시아나 필리핀, 타이 등에서 일본군이 철수하고 후퇴한다는 소문도 간간이 들려왔다.
결국 44년이 되자, 일본 본토뿐만 아니라 한반도에서도 작은 규모이지만 미군의 폭격이 감행되었다. 주로 큰 도시가 대상이었기에 평양은 그지없이 위험한 곳이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시골로 피난을 가라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한시도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언제 공격이 이루어질지 알 수 없었다. 재길은 가족과 함께 원산으로 피신했다. 원산에 있는 약방과 미리 연락을 해두었던 것이다. 우선 약방에서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당장 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내 앞에서 폭탄이 터지지 않는 한 생활은 지속되어야 했다.
재길이 원산에 자리를 잡은 뒤 1년 정도 되었을 때, 추자도에서 연락이 왔다. 추자도의 상황이 불안하여 막내 재식을 올려보낼 테니 맡아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45년 5월 재식이 추자도에서 올라왔다.
하지만 재식은 원산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해 8월에 해방이 되었기 때문이다. 9월이 되자 재식은 형님 내외를 따라 평양으로 들어갔다. 당장 급한 것은 학업을 계속하는 일이었다. 평양으로 돌아오자마자 재길은 재식을 숭덕초등학교에 보냈다. 그런데 무슨 연유인지 5학년이 아니라 6학년으로 배정을 받았다. 추자도의 초등학교에서 5학년 과정을 얼마 하지 못하고 떠나온 재식은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다가왔다. 곧 중학교 시험까지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오재식 구술
구술정리/이영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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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오재식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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