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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 찾아서] 일요일에 교회 가려 중학교 면접 포기 / 오재식

등록 2013-01-13 19:34

1945년 9월 오재식은 둘째형을 따라 원산에서 평양으로 옮겨간 뒤 산정현교회에 다녔다. 44년 4월 신사참배를 거부한 끝에 순교한 주기철 목사가 시무했던 산정현교회는 신앙을 중시하는 개신교 고신파의 본산으로 꼽혔다.
1945년 9월 오재식은 둘째형을 따라 원산에서 평양으로 옮겨간 뒤 산정현교회에 다녔다. 44년 4월 신사참배를 거부한 끝에 순교한 주기철 목사가 시무했던 산정현교회는 신앙을 중시하는 개신교 고신파의 본산으로 꼽혔다.
오재식-현장을 사랑한 조직가 6
1945년 9월 오재식이 6학년으로 편입한 평양 숭덕초등학교에는 마침 주기철 목사의 막내아들인 광조가 다니고 있었다. 재식은 원산에서 평양으로 옮겨온 뒤 둘째형 재길을 따라 산정현교회를 다니고 있었다. 광조는 주일학교 친구여서 학교에서도 재식과 잘 어울려 다녔다. 그때 산정현교회에 주 목사는 없었다. 해방되기 전인 44년 4월20일 신사참배 반대 운동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다 끝내 순교했기 때문이다.

재식은 추자도를 떠나온 이후 제대로 수업을 받은 적이 없어 중학교 시험이 심히 걱정스러웠다. 그때 광조가 가정교사를 자처했다. 광조는 공부를 잘하는데다 남을 가르치는 데도 일가견이 있었다. 늘 여유 있는 태도로 재식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었다.

이윽고 해가 바뀌어 46년 3월 재식은 광조와 나란히 숭인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성적 또한 좋아서 광조가 전체 입학시험에서 1등을 하고, 재식은 2등을 했다. 그 덕에 각각 1, 2반 반장을 맡았다.

숭인중학교는 본래 숭의상업중(학교)이었는데, 광복 직후 소련에 의해 전국인민대표자회의에서 ‘조선인민공화국’이 선포된 뒤 ‘제2중’(학교)으로 바뀌었다. ‘숭’자가 붙은 곳은 거의 기독교학교였는데, 기독교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공산주의 정권에서 그런 식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그런데 재식의 중학교 입학이 순조로웠던 것만은 아니다. 입학시험을 치르는 동안 예기치 않은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체제에서는 일찍이 ‘종교를 인민의 아편’으로 배격했던 까닭에 주일날 교회 나가는 일을 교묘하게 방해했다. 체제를 선전하기 위한 행사나 공공 행사 날짜를 일요일로 정한다든지 하는 식이었다.

숭인중학교 입학시험의 마지막 절차는 면접이었는데 하필 재식의 날짜가 주일과 겹쳤다. 광조는 다행히 주일을 피해 별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재식은 일요일 면접을 포기하고 교회로 향했다. 게다가 이런 중대한 일을 어느 누구하고도 상의하지 않았다. 멀리 추자도에 계신 부모님은 물론이고 함께 살고 있는 재길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혼자 그렇게 마음먹은 것이다.

입학시험과 교회 출석 중 교회를 택한 것은 재식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재식이 다니던 산정현교회는 신앙 중심의 고신파의 대표적인 교회였다. 개신교 교파 중에서도 신앙에 있어서 원칙적이고 보수적인 곳이었다.

이튿날 학교에 간 재식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전날 면접시험을 보지 않았으니 중학교로 진학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어깨를 늘어뜨린 채 복도를 걷고 있는데 선생님 한 분이 재식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재식은 지푸라기라도 잡을 요량으로 그 선생님을 불렀다.

“선생님, 제가 어제 면접시험을 보지 못했습니다. 혹시 오늘이라도 시험을 볼 수 있을까요?” “너 몇 번이야?” “287번입니다.”

재식이 내민 수험표를 본 선생님은 대뜸 “너, 오재식이지?” 하고 되물었다. 이론시험을 잘 쳤는데도, 면접에 안 나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 이리 와.” 재식은 말없이 선생님을 뒤따라 교무실로 갔다. 마침 다른 선생님들은 없었다. 선생님은 재식을 바라보며 소리를 낮춰 말했다. “너, 솔직히 얘기해. 너 어제 교회 갔지?” “네.” “인마, 입학시험날에 교회를 가면 어떡해? … 너, 교장 선생님하고 면접할 때 교회 갔다고 하면 낙방이야. 어제 아팠다고 해. 설사 났다고 해. 알았어?”

그 선생님은 재식에게 교장 선생님과 면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교장 선생님은 재식에게 전날 면접에 왜 오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그 선생님이 일러준 대로 갑자기 설사가 나서 오지 못했다고 둘러댔다. 그랬더니 별다른 말 없이 합격을 시켜 주는 게 아닌가.

고 오재식 선생
고 오재식 선생
하지만 재식은 또다른 걱정에 휩싸였다. 거짓말을 한 것 때문이었다. 적어도 기독교인이면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산정현교회에서 철석같이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다음 주일에 교회로 간 재식은 주일학교 교장 선생님이던 오정모 전도사에게 면접시험 때문에 거짓말한 것을 먼저 고백했다. 상황을 듣고 난 오 전도사는 재식을 안아 주며 말했다.

“야 이 자식, 착하구나. 거짓말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으니 잘한 일이다.” 주 목사의 두번째 부인이었던 오 전도사는 영리하면서도 순진한 재식을 특별히 예뻐해 주었다.

오재식 구술

구술정리/이영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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