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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 찾아서] ‘기독학생모임’ 온 이희호씨 “할머니라 불러” / 오재식

등록 2013-01-24 19:37수정 2013-01-25 09:34

1951년 피난지 부산에서 중앙고 3학년을 맞은 오재식은 학교 대표로서 강원용 목사(뒷줄 오른쪽 넷째)가 조직한 기독학생 모임에 참여해 열성적으로 활동했다. 사진은 강 목사가 은사인 김재준 목사(뒷줄 맨 왼쪽)와 더불어 45년 실향민 기독교 청년들을 중심으로 결성한 선린형제단으로, 당시 이화여전 졸업생인 이희호(앞줄 왼쪽 둘째)씨도 함께했다.
1951년 피난지 부산에서 중앙고 3학년을 맞은 오재식은 학교 대표로서 강원용 목사(뒷줄 오른쪽 넷째)가 조직한 기독학생 모임에 참여해 열성적으로 활동했다. 사진은 강 목사가 은사인 김재준 목사(뒷줄 맨 왼쪽)와 더불어 45년 실향민 기독교 청년들을 중심으로 결성한 선린형제단으로, 당시 이화여전 졸업생인 이희호(앞줄 왼쪽 둘째)씨도 함께했다.
오재식-현장을 사랑한 조직가 15
1950년 가을 오재식이 한국전쟁의 화마를 뚫고 내려간 부산에는 전국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한데 몰리다 보니 당장 주거 공간이 태부족이었다. 피난민들은 임시방편으로 얼기설기 천막을 치고 들어앉았다. 그 와중에 학교들도 옮겨와 천막을 치고 학생들을 받았다.

재식이 다니던 중앙중학교는 보성중과 한 천막촌에서 함께 공부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전쟁통에 맞은 졸업식을 함께 치르기도 했다. 학교가 열리자, 수업만이 아니라 기독학생회 활동도 다시 진행됐다. 회장이던 한배호 선배는 그사이 졸업을 한 까닭에 총무였던 재식이 회장을 이어 맡았다.

교회도 많이 생겨났는데, 북한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두고 온 교회를 재건하는 사례도 있었다. 부산 영락교회는 서울 영락교회의 한경직 목사와 교인들이 피난 와 문을 열었고, 경동교회도 임시 건물을 빌려 김재준 목사와 함께 모여 주일예배를 드렸다. 평양 산정현교회를 잊지 못하는 월남민들도 천막을 치고 부산 산정현교회를 세웠다.

51년 8월 교육법 개정에 따라 중학교 6년제에서 중3·고3으로 분리됐다. 재식은 이제 중앙고 3학년 졸업반이었다. 강원용 목사가 각 학교의 기독학생회 회장과 총무 등 임원을 불러 모았다. 당시 강 목사는 목회보다는 한국기독교연합회(NCC)와 기독학생운동에 주력하고 있었다. 전쟁통에 자신과 나라의 앞날을 암담해하며 미래를 꿈꾸지 못하는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힘을 불어넣어 다시 기를 살리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강 목사의 부름을 받고 남성여고 강당으로 가보니 남학생 7명, 여학생 8명, 모두 15명이 모였다. 강 목사는 <새 시대의 건설자>란 책자를 한 권씩 나누어 주었다. 설교라기보다는 선동에 가까운 명연설로 듣는 이들을 빠져들게 했던 강 목사가 여러 곳에서 강연한 내용을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이었다. 그는 나뭇잎을 물고 오는 비둘기가 그려져 있는 책의 표지부터 설명해 나갔다.

‘이 그림은 노아의 홍수를 소재로 한 것이다. 성서 구약에서는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해지자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하나님은 노아에게 커다란 방주를 만들라고 이르고, 노아의 가족과 각 짐승 한 쌍씩을 방주에 태우게 한 뒤 40일간 비를 내려 세상을 모두 쓸어버렸다. 시간이 지난 뒤 노아는 바깥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비둘기를 내보냈고, 그 비둘기가 나뭇잎을 물고 돌아온 것을 보고 물이 빠졌음을 알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강 목사는 ‘홍수로 온 세상이 물에 잠기더라도 하나님의 새 역사는 다시 올 것이다. 그러니 지금 여기 모인 학생들은 그 풀잎을 물고 오는 비둘기의 사명을 가져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너희들은 건설자다. 한국의 역사는 끝난 것이 아니라 폐허가 된 지금부터가 새로운 시작이다”며 학생들을 일깨우고 격려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나날, 언제 전쟁터로 끌려나가게 될지 모르는 재식을 포함한 젊은 학생들은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흠뻑 빠져들었다.

15명의 기독학생회 모임은 그날로부터 계속되었다. 회의 장소는 광복동에 있던 상이군인회관에 있는 조그만 방이었다. 강 목사가 학생들을 위해 마련해놓은 곳이었다. 그는 그 조그만 방에서 학생들에게 새 시대를 열어나갈 사명에 대해 자주 이야기해주었다. 그 모임방에는 이희호 여사도 자주 나왔다. 이화여전을 거쳐 46년 서울대 사범대를 다니던 때부터 강 목사를 도왔던 이 여사는 눈빛 초롱초롱한 학생들을 유난히 귀여워하며 “요놈들, 내가 너희들 할머니다, 알았지? 할머니라고 불러”라고 말했다. 그는 62년 김대중 대통령과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재식을 만나면 “손자, 잘 있었어?” 하고 환하게 웃으며 농담을 걸어오곤 했다.

고 오재식 선생
고 오재식 선생
재식은 이때 기독학생회 모임을 함께 한 학생들과는 평생 교류했다. 더러 이민을 가고 일찍 죽기도 하여 만나지 못한 친구들도 있었지만, 가족끼리도 늘 유대의 끈을 놓지 않고 지내왔다. 천생배필이 될 노옥신을 만난 곳도 바로 그 기독학생 모임이었다. 노옥신은 그때 무학여고 기독학생회 회장으로 재식과 동갑내기였다.

오재식 구술

구술정리 이영란/ <나에게 꽃으로 다가오는 현장>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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