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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 찾아서] ‘크리스찬 아카데미’ 강원용 목사와 대립 / 오재식

등록 2013-03-03 19:36수정 2013-03-04 15:31

오재식은 미국 예일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뒤 독일 연수를 거쳐 1966년 11월 귀국해 강원용 목사가 설립한 크리스찬아카데미에서 프로그램 간사를 맡았으나 곧 그만뒀다. 사진은 11월15일 수유동 아카데미하우스 준공식 때 모습으로 왼쪽부터 슈미트 박사, 길진경 한국교회협의회 총무, 뮐러 박사, 원용석 무임소장관, 오재경 건축위원장, 강 목사, 한경직 목사, 백낙준 고문.  여해 강원용 사이버아카이브 제공
오재식은 미국 예일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뒤 독일 연수를 거쳐 1966년 11월 귀국해 강원용 목사가 설립한 크리스찬아카데미에서 프로그램 간사를 맡았으나 곧 그만뒀다. 사진은 11월15일 수유동 아카데미하우스 준공식 때 모습으로 왼쪽부터 슈미트 박사, 길진경 한국교회협의회 총무, 뮐러 박사, 원용석 무임소장관, 오재경 건축위원장, 강 목사, 한경직 목사, 백낙준 고문. 여해 강원용 사이버아카이브 제공
오재식-현장을 사랑한 조직가 40
1966년 6월께 오재식은 사울 알린스키로부터 시민 조직화 연수를 끝으로 조지 토드가 짜놓은 3개월간의 탐방 조사 프로그램을 마쳤다. 예일대 신학대학원으로 돌아와 졸업 준비를 하고 있던 어느날 강원용 목사가 그를 찾아왔다. 강 목사는 뉴욕에 출장 온 김에 잠깐 들렀다고 했다. 하지만 예일대는 뉴욕에서 120㎞ 떨어진 곳으로 버스로 2시간 거리였으니 그가 그저 재식의 얼굴만 보려고 온 것은 아니었다.

그 무렵 강 목사는 65년 2월 크리스찬아카데미를 설립해 한창 분주할 때였다. 크리스찬아카데미는 애초 62년 기독교사회문화연구회로 시작했는데, 활동비는 독일 아카데미로부터 대부분 지원받고 있었다. 63년 10월 독일 개신교 아카데미의 책임자이며 당시 유럽 평신도연합회 총장이던 에버하르트 뮐러와 독일 아카데미에서 일본으로 파견한 선교사 알프레트 슈미트가 한국을 방문했다. 그들은 강 목사를 만나 한국에서도 아카데미 운동을 할 수 있는지 타진했다. 그 뒤 여러 차례 논의 끝에 65년 2월 한국기독교학술원이 설립됐고, 그 3개월 뒤 한국크리스찬아카데미로 이름을 바꿨다. 강 목사가 재식을 찾아왔던 무렵에는 서울 수유동에 역시 독일의 원조로 아카데미하우스를 한창 짓던 중이었다.

강 목사는 재식에게 물었다. “너 졸업하면 한국에서 뭐 할 거야?”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잘됐다. 와서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맡아서 해라.” “거기서 일할 수 있다면 저야 좋죠.”

그 자리에서 재식은 크리스찬아카데미의 프로그램 운영 담당자가 되었다. 그런데 강 목사가 한마디 덧붙였다. “한국 들어오기 전에 독일에 가서 아카데미 운동에 대한 공부를 좀 하고 와라. 그래야 도움이 될 것 같다.” 독일어는 물론이고 독일이란 나라를 전혀 모르는 까닭에 재식이 난감해하자, 강 목사는 독일 아카데미를 창설한 뮐러를 소개하며, 그에게 통역을 붙여달라고 부탁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재식은 그해 여름 예일대를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독일로 향했다. 바트볼이라는 조그만 도시에 독일 아카데미 사무실이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한달간 뮐러에게 아카데미 운동에 대해 집중 교육을 받았다. 그런 다음 한국의 크리스찬아카데미에 걸맞은 프로그램을 디자인했다. 알린스키에게 배운 미국의 사례까지 참고할 수 있으니 절로 신이 났다.

마침내 11월16일 재식은 아카데미하우스 준공식 일정에 맞춰 귀국했다. 뮐러도 함께했다.

강 목사는 프로그램을 연구하는 사무실을 서소문동에 따로 하나 열어주었다. 독일에서 미리 구상한 프로그램 자료를 보내 놓았던 재식은 귀국하자마자 프로그램 오리엔테이션을 열었다. 그런데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그램을 들은 강 목사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강 목사가 아카데미를 통해 강조하고 싶은 것은 ‘대화’였다. 그는 충돌이 있을 때 대화로 해결하자는 아카데미의 본래 정신을 보여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내심 원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재식은 ‘가진 자와 어떻게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가’ 생각했다. 알린스키의 현장 교육을 받은 영향이 컸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한 강 목사는 갑자기 서소문동 사무실을 폐쇄하
고 오재식 선생
고 오재식 선생
고 수유동 아카데미하우스로 들어오라고 명령했다. 사전 의논 한마디 없이 직원을 시켜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재식은 불같이 화를 내며 반발했지만 강 목사의 결정을 바꿀 도리도 없었다. 분을 삭이며 이삿짐을 꾸리고 짐을 다 정리하고 나니, 그제야 강 목사가 수고했다며 집으로 식사 초대를 했다. 재식은 별말 없이 식사를 끝내고는 나올 때 비서에게 봉투만 하나 주고 왔다. 사표를 낸 것이었다. 그러고는 바로 이튿날부터 강 목사가 찾지 못하도록 연락이 안 되는 시골로 들어가 ‘잠수’를 타버렸다.

훗날 재식의 이런 행동을 전해 들은 현영학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 “아니 그놈, 미국서 무슨 공부를 해 왔기에 배짱이 그리 좋아.” 평소 강 목사의 불같은 성격을 아는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재식의 행동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오재식 구술

구술정리 이영란/<나에게 꽃으로 다가오는 현장>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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