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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 찾아서] 청계천 가본 알린스키, ‘학사단’에 도움 요청 / 오재식

등록 2013-03-05 19:43수정 2013-03-05 21:01

오재식은 대한와이엠시에이(YMCA)전국연맹 간사를 맡은 1968년부터 한국학생기독교운동협의회(KSCC)의 최성묵 총무와 안재웅 간사, 한국기독학생회(KSCM)의 이직형 간사 등과 의기투합해 학생사회개발단 조직과 활동에 매진했다. 사진은 69년 1월 겨울방학 때 열린 서울지구 학사단 제1차 단원 수련회 모습.
오재식은 대한와이엠시에이(YMCA)전국연맹 간사를 맡은 1968년부터 한국학생기독교운동협의회(KSCC)의 최성묵 총무와 안재웅 간사, 한국기독학생회(KSCM)의 이직형 간사 등과 의기투합해 학생사회개발단 조직과 활동에 매진했다. 사진은 69년 1월 겨울방학 때 열린 서울지구 학사단 제1차 단원 수련회 모습.
오재식-현장을 사랑한 조직가 42
1967년 초 대한와이엠시에이(YMCA)전국연맹 대학부 간사를 맡은 오재식은 한국학생기독교운동협의회(KSCC·협의회) 회원 단체들의 통합을 추진하는 방안의 하나로 학생사회개발단(학사단)을 조직할 것을 제안했다. 이에 한국기독학생회(KSCM)와 와이더블유시에이(YWCA)도 동의함으로써 68년 들어 학사단을 위한 실무팀이 꾸려졌다.

재식은 사울 알린스키에게 배운 지역조직 모델을 바탕으로 학사단의 프로그램을 구상했다. 이 작업에는 기독학생회 총무인 박형규 목사도 의기투합했고, 현영학·서남동 교수 등도 아낌없는 조언으로 힘을 실어 주었다.

통합을 위한 실무적인 작업들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학사단의 이론도 정리되었다. 우선 지금까지 기독학생운동이 구호와 자선을 앞세워 어려운 이들에게 시혜를 베푸는 데 그쳤다는 반성적 평가가 있었다. 이어 한국 사회가 직면한 여러 모순과 갈등을 해결하려면 기독인으로서 새로운 사명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이를 위해 기독학생들의 자각과 노력으로 사회변혁을 이뤄야 하며 그 방안으로 학사단과 같은 사회참여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이로써 학사단을 매개로 기독학생운동은 종래의 복음주의적 교회중심적 활동의 단계를 넘어서, 60년대 후반 한국 사회와 교회의 여러 문제에 대해 구체적이고 명확한 사회인식을 갖춘 운동으로 발돋움하게 된 것이다.

학사단은 먼저 참가를 희망하는 학생을 모집해 알린스키의 지역조직 프로그램 훈련을 시킨 뒤 2~3명씩 조를 짜서 가난한 지역으로 들어가 주민들과 함께 살도록 했다. 현장의 문제를 가장 잘 파악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접근방식을 시도한 것이다. 주로 방학을 이용했는데, 학생들은 상황에 따라 일용노동자가 되거나, 채석장 인부가 되거나, 공장 노동자로 위장취업을 했다. 또한 가난한 지역에서 자취를 하거나 하숙을 하면서 빈민들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면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도록 했다. 학생들은 방학이 끝나면 활동 보고서를 작성해 각 학교에서 발표를 했는데, 대학마다 대단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학사단은 점점 체계를 갖추어 69년을 1차 연도로 삼아 3개년 계획으로 추진되었다. 학사단 활동의 기본 전략과 방향은, 농촌으로부터 도시로, 자선사업에서 사회개혁으로, 개체운동에서 사회운동이라는 3개의 명제로 압축되었다.

마침 69년 말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으로 세 단체가 통합되고 재식이 초대 사무총장을 맡으면서 학사단 활동은 한층 가속도를 밟게 되었다. 하지만 재식은 71년 1월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의 도시산업선교(URM) 간사로 뽑혀 갑작스레 도쿄로 떠나게 됐다. 그 뒤를 이어 학사단을 지도한 것은 기독학생회 간사였던 안재웅(현 한국와이엠시에이전국연맹 이사장) 목사였다.

학사단은 70년 서울 연희동 아파트지대, 봉천동 연립주택지대, 이문동 저탄지대, 경기도 광주 이주단지 등 빈민지역에서 23개팀 162명이 지역활동을 펼쳤다. 단원들은 각자 정해진 현장에 들어가 집중적으로 문제를 파악해 갔다. 그리고 지역주민을 조직해 함께 시위를 하거나 청원서를 작성해 당국에 고발하는 등 부당한 현실 문제들을 전 사회에 폭로해 여론을 환기시켰다.

학사단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것은 71년이었는데, 그해 6월 청계천변 철거민 이주 운동은 그 가운데 가장 의미있는 사업이었다.

고 오재식 선생
고 오재식 선생
당시 서울시의 도로 확장 계획에 따라 청계천변에 살고 있던 판자촌 주민들은 자진 철거하라는 계고장을 받았다. 그나마 판자촌 소유주들은 경기도 광주 대단지의 터를 20여평씩 시 당국으로부터 분양받을 수 있어 새 보금자리로 옮겨가면 되었다. 하지만 세입자들은 대부분 분양을 받을 수도 없는 극빈층이었기에 집이 철거되면 당장 청계천 거리로 나앉을 처지였다.

그때 마침 알린스키가 재식의 주선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아시아협의회에서 동아시아 빈민가 조사 프로그램에 그를 초청한 것이었다. 제자인 조승혁 목사의 안내로 청계천 빈민가를 둘러보던 알린스키는 세입자 문제를 확인하고 학사단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학생 단원들이 현장으로 들어가 주민들과 연대활동을 벌이게 되었다.

오재식 구술

구술정리 이영란<나에게 꽃으로 다가오는 현장>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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