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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 찾아서] 국내 주민운동 기반 ‘도시문제연’ 첫발/ 오재식

등록 2013-03-07 19:42수정 2013-03-08 16:14

오재식은 1968년 미국 장로교 도시산업선교부장 조지 토드와 함께 한국 내 도시빈민 조직운동의 기반이 될 연세대 도시문제연구소(현 공공문제연구소) 설립을 지원했다. 그해 12월 연세대 정법대 부속으로 노정현 교수를 소장으로 한 국내 첫 도시연구기관인 도시문제연구소 개소식이 열렸다. 사진 <연세행정 50년사>에서
오재식은 1968년 미국 장로교 도시산업선교부장 조지 토드와 함께 한국 내 도시빈민 조직운동의 기반이 될 연세대 도시문제연구소(현 공공문제연구소) 설립을 지원했다. 그해 12월 연세대 정법대 부속으로 노정현 교수를 소장으로 한 국내 첫 도시연구기관인 도시문제연구소 개소식이 열렸다. 사진 <연세행정 50년사>에서
오재식-현장을 사랑한 조직가 44
기독학생운동단체 통합 작업에 몰두하고 있던 1968년 초, 오재식은 미국 장로회 도시산업선교부의 조지 토드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한국에서 주민조직운동(커뮤니티 오거니제이션), 즉 도시빈민을 위한 선교조직을 만들자는 내용이었다. 그는 사울 알린스키의 조직운동을 통해 배운 대로 그 훈련을 받은 재식을 한국의 거점으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재식은 즉시 답장을 보내 ‘좋다.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은가’를 물었다. 토드는 먼저 도시빈민 선교를 위한 조직가를 양성하는 것이 필요하며, 그래서 조직가를 훈련시킬 전문가를 보낼 예정이라고 했다. 그런데 한국의 정치상황이 어렵기 때문에 안정적인 훈련을 할 수 있는 기반(인프라)이 필요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토드는 다만 한국에 주민운동 조직부터 만들어지면 자칫 활동이 과격해질 수 있고, 그 때문에 너무 빨리 조직이 노출되면 비민주적인 정권의 압력이나 탄압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래서 선뜻 추진을 못하고 고심하고 있던 와중에, 어느날 연세대의 노정현(1929~2010) 교수가 그를 찾아왔다.

  예수교장로회 교단 소속인 새문안교회 장로였던 노 교수는 교단 차원에서 알고 지내던 토드를 찾아와 학교에 연구실을 만들고 싶다며 지원을 요청했다. 토드는 대학 안에 연구소를 개설해 주민조직 운동을 위한 기반으로 활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재식에게 의견을 구했다. 재식도 좋은 생각이라고 적극 지지했다. 사실 토드는 재식이 반대할 것을 우려했다고 훗날 전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일사천리로 연구소 개설 작업이 진행됐다.

  토드는 연합장로교를 통해 연구소에 먼저 3만달러를 지원하고 직접 한국을 방문해 추진 상황을 살펴보기도 했다. 재식은 이때 토드를 박형규 목사에게 소개해 주었다. 한국의 도시빈민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던 토드는 박 목사에게 가난한 사람들이 스스로 조직을 만들고 각성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기독인들이 도와야 한다고 말하고, 그 주민조직 운동을 책임지고 맡아보라고 권유했다.

  마침내 68년 12월 연세대 안에 개신교와 가톨릭이 연합한 도시문제연구소가 문을 열었다. 연구소의 소장은 노정현 당시 정법대학장이 맡았다. 연구소 산하에는 연구위원회와 연수위원회를 두었다. 연수위원회는 주민조직 작업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박 목사가 위원장을 맡았다.

  도시문제연구소가 자리를 잡고 난 뒤 재식은 토드에게 편지를 보내 인프라가 준비됐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에 토드는 허버트 화이트를 연구소의 부소장 겸 상임 총무로 파견했다. 화이트는 부인과 함께 한국에 왔다.

  알린스키의 제자인 화이트는 조직활동가로 활약이 대단했는데, 특히 66년 ‘파이트’(FIGHT)를 통해 뉴욕주 로체스터에 있는 이스트먼 코닥사와의 투쟁에서 큰 몫을 담당했다. 역시 알린스키가 조직한 기구인 파이트는 ‘자유(프리덤)·통합(인티그레이션)·하나님(갓)·영광(아너)·오늘(투데이)’의 알파벳 첫 자를 따서 이름지었다. 이 조직은 ‘싸우자’는 구호를 내걸고 막강한 자본을 자랑하던 코닥사의 흑인 직원 차별에 맞섰다. 폭력 사태까지 벌어질 정도로 격렬하게 투쟁했던 코닥사의 싸움은 마침내 흑인들을 뭉치게 하고 흑인들을 위한 조직을 만드는 데까지 나아갔다. 그곳에서 화이트는 흑인들을 조직해 결국 코닥사 사규의 인종차별 조항을 철폐하도록 만들었다. 이런 화이트의 능력을 알고 있던 토드는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이라며 몇 차례 거절하던 화이트를 끝내 설득해 한국으로 보낸 것이었다.

고 오재식 선생
고 오재식 선생
재식은 알린스키의 제자인 토드와 화이트가 한국 주민조직운동 역사에 등장하게 된 것을 두고두고 감사하게 생각했다. 한국의 도시빈민지역 주민조직을 위해 무대 뒤에 숨어서 조력했던 두 사람의 노고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은 자신들의 그러한 활동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이들의 활동은 이후 30여년 한국 사회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노동현장의 산업선교와 도시빈민 지역의 도시선교가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있는 든든한 밑바탕이 되었다.

 구술정리 이영란/<나에게 꽃으로 다가오는 현장>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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