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식은 1970년 가을 아시아기독교협의회의 갑작스런 요청으로 도시농촌선교회 간사를 맡아 일본 도쿄로 떠나야 했다. 기나긴 국외생활의 시작이었다. 사진은 그때 직접 한국을 방문해 그를 발탁해 간 도시농촌선교회 위원장 다케나카 마사오 교수로, 재식과의 인연을 계기로 70~80년대 내내 한국 민주화운동을 후원했다.
오재식-현장을 사랑한 조직가 47
오재식은 1970년 들어 여러 가지 일로 바빴다. 통합된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기생총연맹)의 초대 사무총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 많았을뿐더러 학생사회개발단(학사단)까지 운영하느라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재식의 거취를 두고 그도 모르는 사이 논의들이 오가고 있었다.
그해 6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중앙위원회에서 재식을 도시농촌선교회(URM) 간사로 차출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도미노 현상처럼 이뤄진 일이었다. 세계교회협의회(WCC)의 도시농촌선교회 간사였던 일본인이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떴다. 그러자 세계협의회에서는 아시아기독교협의회 도시농촌선교회 간사인 해리 대니얼을 후임으로 긴급 선임했다. 그래서 아시아협의회에서도 서둘러 후임을 물색한 끝에 재식을 지목한 것이었다.
원래 국제기구의 실무자 후보는 여러 곳에서 추천을 받아 선발했고 지원자도 많았는데, 어떤 이유로 지원한 적도 없는 재식이 전격 발탁됐는지 그 자신도 알지 못했다.
아무튼 아시아협의회의 결정에 따라 도시농촌선교회 위원장인 다케나카 마사오 교수가 한국을 방문해 기생총연맹 이사장인 박대선 목사를 만났다. 다케나카는 도시샤대학 신학과 교수이자 기독교 윤리학자로서 안팎에서 신망이 두터웠다. “아시아협의회에서 오재식 간사로 결정했으니 박 이사장이 그를 좀 해방시켜 주시오.” 그의 통보를 받은 박 이사장은 재식을 불러 다케나카의 얘기를 그대로 전했다. 그러면서 박 이사장은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도리어 재식에게 물었다.
재식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느닷없는 얘기를 듣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 국내에서 벌여놓은 사업들을 생각하면 가서는 안 되겠지만, 도시농촌선교회의 위원장이 직접 와서 자신을 데려가려 하는 데는 뭔가 뜻이 있을 법도 했다.
그는 혼자서는 도저히 답을 얻지 못하자 이번에도 강원용 목사를 찾아갔다. 언제나처럼 강 목사는 시원스레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나도 그때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협의회 중앙위원회 모임에 참석했었어. 근데 말이야. 거절하면 안 될 거야. 만장일치였어, 만장일치. 아마 네가 가야 될 거야.”
다행히 기생총연맹의 각 부서 간사들 모두가 믿을만한 사람들이라 재식은 마음의 짐을 조금은 덜 수 있었다. 곧이어 재식의 후임자로 수도사대 교수인 신인현 목사가 정해졌다.
그해 8월 교토에 있는 간사이(관서) 세미나하우스에서 아시아지역 도시농촌선교 실무자들을 위한 워크숍이 열렸다. 재식도 참석하라는 연락이 왔다. 간사이 세미나하우스는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와 비슷한 곳으로, 다케나카 위원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었다. 한달 동안 열린 워크숍에 참석한 이들 중에는 일본인이 많이 보였다. 재식은 그곳에서 일본 기독교교회협의회(NCCJ) 총무인 나카지마 마사아키 목사를 처음 만났고, 함께 토론할 기회도 있었다. 재식의 전임자인 해리 대니얼도 만날 수 있었다.
교토 워크숍이 끝난 뒤 재식과 대니얼은 귀국행 비행기를 타고자 신칸센을 이용해 도쿄로 향했다. 기차 안에서 대니얼은 서류가방 하나를 재식에게 내밀었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것으로 아시아 도시농촌선교회 사무실을 꾸리시오”라고 말하고는 가방에서 여러 종류의 서류를 하나씩 꺼내 보였다. 그동안의 회의록 정리한 것, 인사 기록 등등 그 내용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런 다음 그는 아시아 17개 나라의 상황을 일일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각 나라의 도시농촌선교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자세히 알려주었다. 그는 각 나라의 사정을 머릿속에 모두 꿰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자료도 보지 않고 저토록 술술 얘기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재식은 대니얼에 대한 놀라움보다는 황당함이 더 앞섰다. 기차 안에서 업무 인수인계를 받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하지만 머뭇거릴 여유가 전혀 없었다. 곧바로 서울로 돌아온 재식은 기생총연맹의 후임 간사에게 업무를 넘겨주기 위한 자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매사 꼼꼼한 성격이었던 그로서는 기차 안에서 받은 것처럼 대강대강 할 수는 없었다.
오재식 구술
구술정리 이영란<나에게 꽃으로 다가오는 현장>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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