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1월 도쿄의 일본기독교회관 안에 아시아기독교교회협의회 도시농촌선교회 사무실을 마련한 오재식은 바로 옆 재일대한기독교총회 사무실에서 재일한국인 차별 철폐 운동을 하고 있던 이인하 목사를 만났다. 사진은 이 목사(맨 오른쪽)가 55년 오사카시 조토구의 재일한국인 빈민촌인 아파치 부락에 문을 연 개척교회로, 당시 유학중인 박형규 목사(오른쪽 둘째)와 함께했다.
오재식-현장을 사랑한 조직가 50
오재식은 1970년 12월 일본으로 향했다. 도쿄에 아시아기독교교회협의회 도시농촌선교회(CCA-URM) 간사로서 새 사무실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아시아협의회 본부는 싱가포르에 있었지만, 당시 사무총장 초 탄은 도시농촌선교회 사무실을 다른 나라에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선교회의 활동이 혹여 싱가포르 정부와 충돌하게 되면 아시아협의회 전체가 곤란해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새 간사로 선임된 재식의 한국과 가까운 일본에 사무실을 두기로 했다.
마침 도쿄에는 아시아협의회 부총무인 오가와 게이지가 있었다. 오가와는 교회의 음향설비를 제공하는 오디오비주얼센터의 이사장도 맡고 있었는데 그 센터 건물이 일본기독교회관과 나란히 있었다. 그의 주선으로 재식의 새 사무실은 일본기독교회관 5층에 입주했다. 그는 이후 내내 재식의 도쿄 정착을 도왔다. 회관 2층에는 나카지마 목사가 총무를 맡고 있는 일본기독교교회협의회(NCCJ) 사무실이 있었다. 도시농촌선교회의 바로 옆 사무실에는 재일대한기독교총회도 입주해 있었다. 그 무렵 동포 2세 박종석씨에 대한 히타치의 합격 취소 사건을 계기로 차별 철폐 운동을 벌이고 있던 재일동포 이인하 목사(가나가와 가와사키교회·2008년 작고)가 총회 사무실에 상주하고 있었다.
이들의 도움으로 재식의 도쿄 생활은 순조롭게 출발했다. 이로써 도시농촌선교회 도쿄사무실의 역사가 시작된 셈이었다. 물론 이후 유신독재의 종말 때까지 이 사무실을 통해 지난하고 숨가쁜 세월이 전개될 줄은 재식도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 시절에는 한국에서 출발하는 장거리 국제선 항공노선이 없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다른 나라를 가거나 외국에서 한국으로 올 때는 모두 도쿄에 와서 환승을 해야만 했다. 그 덕분에 재식의 사무실은 도쿄를 거쳐 한국을 오가는 이들이 들러 갖가지 소식과 정보를 주고받는 사랑방 구실을 하게 됐다.
새로운 활동 계획과 준비로 분주한 와중에 재식은 미국의 조지 토드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그때 토드는 재식과 도쿄사무실을 기지 삼아 아시아 주민조직 활동을 넓혀갈 구상을 하고 있었다. 편지에는 알린스키가 아시아 탐방을 하고 싶어하니 재식에게 그 일정을 주선해 달라는 부탁이 적혀 있었다. 알린스키로서는 토드가 아시아에서 추진해온 빈민지역 주민조직 현장들을 직접 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해 6월께 알린스키가 도쿄에 도착했다. 재식은 맨 먼저 그를 대표적인 빈민촌인 재일동포 밀집지역으로 이끌었다. 알린스키는 그곳을 구석구석 살펴본 뒤 동포들과 함께 모여 앉아 보고회 겸 좌담회도 열었다. 그는 동포들의 어려운 사정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앞으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매우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면서 동포들의 마음을 움직이고자 했다.
“여러분은 가난하다고 체념하면서 손가락이나 빨고 있는데, 이제는 그러지 마라. 오늘 동네에 가보니 쥐가 참 많더라. 낮인데도 길거리에서 쪼르르 기어다니는 쥐를 여럿 봤다. 당장 그 쥐들을 잡아다 트럭에 가득 실어라. 그리고 긴자(도쿄 중앙부의 번
화가)에 가서 그 쥐들을 다 풀어놓아라. 당장 경찰이 쫓아와서 야단을 할 것이다. 그러면 실수로 쥐를 담은 상자가 쏟아졌다고 해라. 미안하다는 사과도 잊지 마라. 그건 전혀 불법이 아니다.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너희는 쥐를 보고 놀라겠지만, 우리는 매일 이런 쥐와 함께 산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언론에서도 몰려들어 뉴스나 신문에 나올 것이다. 그러면 재일 한국인들의 가난한 지역에 대해 사람들이 자꾸 떠들어댈 것이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면 해결책도 보인다. 다만 이런 일들은 개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을 꾸려서 서로 협조하면서 해야 한다.”
알린스키의 다음 행선지는 바로 한국이었다. 앞서 그가 조승혁 목사의 안내로 청계천변 철거민촌을 탐방하게 된 것이 바로 이때 재식의 주선으로 이뤄진 일이었다.
오재식 구술
구술정리 이영란 <나에게 꽃으로 다가오는 현장>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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