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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 찾아서] 도쿄 자료센터 만들어 계엄상황 전파 / 오재식

등록 2013-03-20 20:03수정 2013-03-22 21:09

오재식은 1972년 말 한국과 필리핀 등 독재 치하의 주민조직 활동을 지원하고자 도쿄의 아시아교회협
도농선교회 차원에서 자료센터 ‘다가’를 만들었다. 미국 유학에서 귀국하던 김용복 박사(왼쪽), 선교사
패리스 하비(오른쪽), 일본인 신학자 구라타 마사히코가 초창기 연구원으로 참여했다.
오재식은 1972년 말 한국과 필리핀 등 독재 치하의 주민조직 활동을 지원하고자 도쿄의 아시아교회협 도농선교회 차원에서 자료센터 ‘다가’를 만들었다. 미국 유학에서 귀국하던 김용복 박사(왼쪽), 선교사 패리스 하비(오른쪽), 일본인 신학자 구라타 마사히코가 초창기 연구원으로 참여했다.
오재식-현장을 사랑한 조직가 53
1972년 가을 어느날 오재식은 아시아교회협의회 도시농촌선교회(CCA-URM)의 도쿄사무실로 찾아온 김용복 박사를 만났다. 김 박사는 미국 프린스턴대학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도쿄에서 잠시 머물며 일본에 대한 공부를 해볼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인 부인과 아이들까지 가족 모두 들어왔는데, 6개월 비자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임시 거처를 정한 그는 한달쯤 지내고 나더니 정식으로 연구를 하고 싶어했다. 도쿄에는 그가 원하는 자료가 상당히 풍성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한국의 불안한 정치상황 속에서 그동안 공부한 신학을 자유롭게 펼치기에는 어려움이 많아 보였다. 그의 속내를 확인한 재식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에게 같이 일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필리핀과 한국에 계엄령이 내려진 상황에서 재식은 도쿄사무실이 전략적인 거점으로 중요한 구실을 맡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수많은 정보와 자료들이 오갈 터이니 이를 정리하고 보관할뿐더러 자료로 만들어내는 작업도 필수적이었다. 그러던 차에 마침 김 박사가 등장했으니, 재식으로선 탁월한 조력자를 만난 셈이었다.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곧바로 자료센터 준비에 들어갔다. 우선 모든 자료를 영어로 번역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마침 패리스 하비라는 미국인이 선교사로 도쿄에 왔다는 소식이 들렸다. 재식은 탁월한 교섭력을 무기로 그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다음으로 일본어 자료를 맡을 인물을 물색하고 있을 무렵 국제앰네스티의 일본 책임자인 구라타 마사히코가 인사차 찾아왔다. 구라타는 영국에서 3년간 앰네스티 공부를 한 뒤 일본으로 들어왔는데, 제도에 묶이기보다 자유롭게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영어도 유창해서 자료센터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구라타는 매이는 것이 싫다는 이유로 재식의 제안에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재식은 포기하지 않고 여러 차례 공을 들인 끝에 그의 동의를 받아냈다.

이렇게 해서 재식이 구상한 자료센터 ‘다가’(DAGA·다큐멘테이션 포 액션 그룹스 인 아시아)가 탄생했다. 김용복, 패리스 하비, 구라타 마사히코로 구성원이 확보되자 별도의 사무실을 하나 꾸려야 했다. 자료 수집이나 정리 등을 하려면 운영비도 필요했다. 그나마 선교사인 하비는 교단에서 지원을 받고 있었지만 김 박사와 구라타에게는 급료도 지급해야 했다. 재식은 다시 한번 세계교회협의회(WCC)의 해리 대니얼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아시아에 계엄령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러니 아시아 도농선교회에서 할 일이 더 많아졌다. 해리 당신이 나서서 세계협의회의 지원을 받게 도와 달라.”

구구절절 내용을 다 써 보내지 않아도 해리는 선뜻 예산을 만들어 보내주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김 박사의 신분을 보장할 법적 장치가 필요했다. 때마침 재식은 무샤코지 긴히데를 소개받았다. 국제정치학자인 무샤코지는 도쿄에 있는 가톨릭계 조치대학 부설 국제문제연구소의 소장이었다. 재식은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에게 도농선교회와 다가가 필요한 이유, 그리고 김 박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가 6개월 체류 비자만 갖고 있으니 다가에서 오래도록 일할 수 있도록 ‘교수’ 같은 안정적인 지위를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하지만 초면에 불쑥 한 부탁이어서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놀랍게도 무샤코지는 그러면 국제문제연구소에서 일하면 해결된다고 말했다. 다가 사무실도 죠치대학 안에 만들면 된다면서 자신이 다가를 보호해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선뜻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재식과 다가 구성원들은 서둘러 죠치대학에 사무실을 차렸다. 무샤코지는 다가 일을 도와줄 여직원까지 2명이나 충원해주었다.

고 오재식 선생
고 오재식 선생
자료센터 다가는 구체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여러 가지 자료를 모으고 필요한 곳에 필요한 언어로 작성해 배포했다.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의제를 모아 분석한 자료를 아시아 곳곳의 현장에 나가 있는 실무자에게 제공하기도 했다. 영어를 잘하는 한국인 김용복, 한국어를 잘하는 미국인 하비, 영어를 잘하는 일본인 구라타, 세 사람의 호흡은 가히 환상적이어서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자료는 점점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오재식 구술

구술정리 이영란<나에게 꽃으로 다가오는 현장>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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