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식은 1973년 아시아기독교교회협의회(CCA) 도시농촌선교회 대회에서 처음으로 ‘민중 포럼’을 열어 총회 보고서로 채택함으로써 ‘민중’ 개념을 공론화했다. 사진은 81년 아시아협의회 이름으로 한국 신학자들의 논문을 묶어 낸 영문판 <민중신학> 표지(오른쪽)와 발간을 주도한 프레만 나일스(왼쪽).
오재식-현장을 사랑한 조직가 57
오재식이 ‘1973 한국 그리스도인의 선언’(한국 기독자 선언)을 처음 기획한 의도는 기독교인으로서 한국 정치상황에 대한 기본적인 견해를 먼저 밝혀야 전세계에 호소하는 데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지명관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국내에서 민주화운동을 벌이려면 세계 교회에 반박정희·반유신 투쟁이 단순한 정치적 투쟁이 아니라 교회적인 싸움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선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당시 세계교회협의회(WCC)에서 간사로 일하고 있던 박상증 목사와 세계기독학생회의 강문규 간사도 이러한 뜻을 세계 교회에 전달하는 데 힘을 쏟았다. 이들의 노력으로 세계 교회가 한국 교회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선언문 발표 사실이 국외에서 크게 알려지는 동안 정작 국내에서는 선언문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문동환·안병무 교수 등 몇몇 신학자들 말고는, 김상근 목사가 자신이 목회하던 수도교회 앞에 누군가 선언문 뭉치를 두고 가서 교인들에게 나눠줬을 뿐이었다. 정작 선언문에 대한 정보를 가장 먼저 입수한 것은 중앙정보부였다. 그런데 중정은 미국·일본·독일 등 국외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영어본 선언문을 구해 한국어로 번역해서 본 것이었다. 그래서 뒤늦게 국내 인사들도 중정이 기독교계 민주화운동을 비방할 목적으로 돌린 번역본을 통해 내용을 확인하는 소동도 빚어졌다.
유신 종말 이후 선구적인 혜안을 담고 있는 선언문이 새삼 회자됐지만 재식은 물론 지 교수나 김용복 박사도 부러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때의 시대정신에 따라 나온 선언문이었지, 누가 작성했는지를 밝히는 것은 부차적인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선언문 작성을 마무리한 뒤 재식은 아시아교회협의회(CCA) 도시농촌선교회 간사로서 그해 5월 예정된 아시아협의회 총회 준비로 분주했다. 더구나 전임자가 도농선교회대회를 총회 전에 하기로 정해놓고, 총회에 제출할 보고서의 주제도 ‘아시아의 도시 문제’로 미리 보고해둔 상황이어서 더욱 바빴다.
그렇지만 도농선교회대회 주제는 당시 아시아 회원국들의 상황에 잘 맞지 않았다. 필리핀과 한국은 계엄 상태였고, 대만은 47년 이후 계속된 계엄령하에 있었다. 인도와 타이(태국) 등 다른 여러 나라도 불안한 정세이긴 마찬가지였다. 재식은 도시 문제보다는 사람들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폭압적인 정권 아래 신음하고 있는 피지배계급의 사람들, 즉 민중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대회 제목을 민중대회, ‘피플스 포럼’으로 수정하기로 했다. ‘피플·민중’이라는 단어를 쓰면 ‘빨갱이’ 취급을 하는 인식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를 사기도 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재식은 우선 도농선교회 직원들을 다 모아서 ‘민중 이야기’에 관한 오리엔테이션부터 진행했다. ‘피플 컴 오브 에이지’란 발제로 “민중은 이미 성숙해졌다”는 메시지와 함께 민중이란 개념의 외연을 넓히고자 했다. 총회 보고서의 제목도 ‘피플 컴 오브 에이지’로 달았다. 보고서 작성에는 김 박사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마침 국내 신학계에서도 70년대 초부터 기독학생운동을 통해 연대하기 시작한 노동자나 도시 빈민층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를 두고 논쟁이 한창이었다. 빈민·서민·평민·대중 등등 여러 호칭이 나왔고, 치열한 토론 끝에 민중(피플)을 쓰기로 했다.
무엇보다 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이 한국 교회에 준 충격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안병무를 비롯해 서남동·현영학·서광선·문동환·김용복·한완상 등은 그 충격을 신학으로 재정립한 대표적인 민중신학자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군사정권 아래서 바른 소리를 내다 해직을 당했지만, 굴하지 않고 신학 연구의 바탕을 교단에서 노동·빈민 현장으로 기꺼이 옮겨갔다. 이들은 현장에서 경험한 민중의 이야기를 신학적으로 각자 전공에 맞게 정리했다. 이런 연구 성과들은 81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협의회의 심포지엄에서 발표됐고, 당시 아시아협의회 신학부 간사였던 프레만 나일스가 정리해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영문으로 된 그 책의 제목은 ‘민중’이란 우리말 단어를 그대로 영어로 읽은 (민중신학)였다.
오재식 구술
구술정리 이영란<나에게 꽃으로 다가오는 현장>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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