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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 찾아서] 중정 친구의 밀사 “체포령 났으니 귀국 말라” / 오재식

등록 2013-04-02 19:34수정 2013-04-03 08:53

1973년 6월 터진 남산 부활절 연합예배 사건 직후 오재식은 중앙정보부 요원으로부터 ‘체포령이 내렸으니 귀국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받았다. 그는 기독학생운동 때부터 인연을 맺은 황광은 목사(맨 왼쪽)의 친척이었다. 사진은 ‘난지도의 성자’로 불린 황 목사가 1954년 무렵 난지도 삼동소년촌 원장 시절 아동문학가 이원수(맨 오른쪽)씨와 함께한 모습으로 이씨의 딸 이영옥(가운데)씨가 제공했다.
1973년 6월 터진 남산 부활절 연합예배 사건 직후 오재식은 중앙정보부 요원으로부터 ‘체포령이 내렸으니 귀국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받았다. 그는 기독학생운동 때부터 인연을 맺은 황광은 목사(맨 왼쪽)의 친척이었다. 사진은 ‘난지도의 성자’로 불린 황 목사가 1954년 무렵 난지도 삼동소년촌 원장 시절 아동문학가 이원수(맨 오른쪽)씨와 함께한 모습으로 이씨의 딸 이영옥(가운데)씨가 제공했다.
오재식-현장을 사랑한 조직가 62
1973년 6월 터진 남산 부활절 연합예배 사건은 ‘내란예비음모죄’라는 죄목이 무색할 정도로 전사회적인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하지만 개신교회에는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이 사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앞으로 박정희 독재정권에 의한 기독교계 탄압이 더 거세질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구세군의 김해득 정령을 위원장으로, 복음교회 오충일, 감리교 김창희, 예수교장로회 김윤식, 기독교장로회 이영민 목사와 성공회 이재정 신부 등 각 교단 대표자와 김관석 교회협의회 총무, 한승헌 변호사로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적극 대처에 나섰다.

정권의 무리한 수사는 교파를 뛰어넘은 기독교회의 단결을 불러일으켰고, 그 힘은 기독교회를 유신체제에 대한 강력한 저항세력으로 거듭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각 교단의 기관과 단체별로 성명을 발표하거나 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다. 특히 개신교에서도 가장 진보적인 교파인 기장은 발빠르게 나섰다. 기장은 8월7일 부활절 연합예배 사건과 은명기 목사 사건에 대한 교단 차원의 성명을 ‘교역자 구속 사건과 우리의 견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또 같은 달 중순 서울 새문안교회 대학생부 주최로 ‘박형규 목사를 위한 철야기도회’를 수도교회에서 열기도 했다. 소장 목사 120여명은 경동교회에서 ‘구속자를 위한 기도회’를 열고 개신교의 각 교단과 가톨릭의 이한택·장익한·도요한 신부가 참여하는 초교파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성직자들과 기독학생들의 투옥과 고문에 의한 자백 강요 등 고난받는 현실을 고스란히 지켜본 한국 교회는 이제 사회참여 운동에서 민주화와 인권운동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교회협의회는 11월23일 ‘신앙과 인권’ 주제로 ‘제1차 인권문제협의회’를 열고 ‘한국 사회 속에서 한국 교회의 사명이 인권 확립에 있음’을 천명하는 인권선언을 발표했다. 이 인권선언은 학원·여성·노동자·언론 등 사회 전반의 모순을 인권문제의 차원으로 접근함으로써 교회가 나설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교회협의회는 이를 계기로 ‘교회는 억눌린 자들을 해방시키는 복음교회가 되어야 하며, 영혼 구원뿐 아니라 구조악으로부터 인간을 구출하기 위한 사회 구원에도 힘써야 하며, 인권 확립을 위해 교회의 자원을 집중시켜야 한다’는 선언의 실행 원칙을 확산시켜 나갔다.

그런데 부활절 예배 사건 때 정권에서 야당과 모의한 것으로 몰고가는 빌미가 됐던 신민당 청년부장 남삼우를 권호경 전도사에게 소개한 사람이 바로 오재식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박 정권은 재식조차 요주의 인물로 찍고 주목하기 시작했다. 재식은 70년 전태일 열사 추모회 사건 때부터 정보기관의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있었지만 이후 계속 외국에서 아시아교회협의회(CCA)의 보호를 받고 있었기에 무사한 상태였다. 만약 재식이 국내로 들어오면 곧바로 체포하라는 지시가 내려진 상태였다. 그 사실을 알려준 중앙정보부 과장 김수은은 평양시절 중학교 동창으로 그때 김포공항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재식은 도쿄에서도 되도록 행동을 조심하고 있었다.

그런 어느날 재식은 도쿄 신주쿠의 도시농촌선교회(URM) 사무실에서 군인처럼 머리는 짧았으나 사복 차림인 한국인의 방문을 받았다. 그는 재식을 보자 건조한 말투로 “오재식 선생 맞죠?” 하고 물었다. 재식이 그렇다고 하자, 그는 곧바로 거수경례
고 오재식 선생
고 오재식 선생
를 했다. 이상한 낌새가 든 재식이 “당신 누구야?” 하며 경계를 하자, 그는 김수은이 보내서 왔다고 신분을 밝혔다.

김수은은 52년 서울와이엠시에이(YMCA)가 난지도 쓰레기장에 세운 삼동소년촌 원장을 맡아 전쟁고아·소년원 출신 아이들·부랑아들을 돌보며 청소년운동을 했던 황광은(1923~70) 목사의 처조카이기도 했다. 황 목사는 교회협의회 간사로 일한 적도 있어서 재식과 꽤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다. 김수은은 ‘난지도의 성자’로 불리는 황 목사를 평소 존경했던 까닭에 재식과도 친하게 되었다. 그런데 공항에서 일하면서 출입국자 블랙리스트에 오른 재식의 이름을 확인하고는 도쿄까지 부하를 보낸 것이었다. 그는 재식에게 당분간 국내에 들어오지 말라고 당부했다.

오재식 구술

구술정리 이영란<나에게 꽃으로 다가오는 현장>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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