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학기 환경미화를 준비하기 위해 교실 대청소를 하던 광성중학교 3학년 2반 아이들.
이세주 교사 제공
우리 반 학급 문집을 만들자! ⑤ 학급 문집을 만들면 좋은 점
추억은 0과 1 디지털 코드로 나뉘지 않아 책으로 남기는 게 좋아
문집 만들며 아이들 고민·관심사 알게 되고 학급 공동체 결속 다져
추억은 0과 1 디지털 코드로 나뉘지 않아 책으로 남기는 게 좋아
문집 만들며 아이들 고민·관심사 알게 되고 학급 공동체 결속 다져
한파가 이어지던 지난겨울, 저는 학생 한 명을 만나 마음이 훈훈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그 학생이 중학교 3학년일 때 담임교사였습니다. 당시에 그 학생은 서울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중학교 졸업식이 있던 바로 그날 부산으로 내려가야 했던 터라 졸업식에 참석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그 학생에게 중학교 졸업식은 평생에 한 번이니 잠시라도 참석하고 내려가라고 말했습니다. 학생은 열차 시간을 어렵게 조정해 강당에서 열린 졸업식장에만 겨우 자리했다가 서둘러 열차를 타고 부산으로 갔습니다. 교실에서 나눠 준 졸업장과 졸업 앨범 등은 학부모님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졸업한 뒤로는 그 학생이 부산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지냈습니다. 그러고는 졸업한 지 꼭 삼 년 만에 고등학교 졸업과 대학 입학을 앞두고 저를 찾아왔던 것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그 학생은 고등학교 생활을 어떻게 해 왔는지에 대해, 또 앞으로 펼쳐질 대학 생활의 기대와 설렘 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시절의 추억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중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선생님 저 중 3 때 선생님께서 우리 반 아이들과 만들었던 학급 문집 <간장 종지들의 큰 그릇 되기> 지금도 가지고 있어요. 얼마 전에 책장 정리하다가 눈에 띄어 다시 읽어 봤는데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참 좋더라고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저는 그해 겨울 졸업을 앞두고 있던 우리 반 아이들과 씨름하며 학급 문집을 만들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문집을 만들던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만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 학급 문집의 말미에 붙인 편집 후기에 이런 글을 남겨 두었던 까닭입니다.
“지금은 아이들이 이 책에 실린 글들을 읽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보관해 두었다가 10년, 20년쯤 지난 후에라도 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며 중학교 3학년 때의 추억을 떠올리고 친구들과 지냈던 소중한 시간들을 회상하며 흐뭇하게 미소 지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날 저녁 저는 집에 돌아와 그때 만들었던 학급 문집을 꺼내 읽었습니다. 봄을 맞아 북한산에 올랐던 일, 강원도 속초로 떠났던 학급별 수학여행, 중간고사가 끝나던 날 했던 학급 활동, 기말고사 끝난 뒤 학교에서 했던 1박 2일 야영, 자신의 취미와 우리 반 친구 소개, 특별했던 환경 미화의 추억, 담임교사가 학부모님께 매월 보냈던 학급 서신, 학부모님께서 중학교 졸업을 앞둔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등 학급 문집에는 아이들과 함께했던 학교생활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우리 반 모든 아이들이 직접 쓰고 엮은 학급 문집의 이면에는 이제 막 사춘기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던 중학교 3학년 남학생들의 고민도 스며 있었습니다.
이처럼 학급 문집은 아이들과 함께 지냈던 학교생활의 추억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입니다. 기록은 기억하기 위한 것입니다. 기록으로 남기는 방법은 무척 다양합니다. 최근에는 디지털 기술이 놀랍게 발달하여 기록할 수 있는 방법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컴퓨터를 비롯한 디지털 매체를 활용하면 쉽게 기록하고 예쁘게 포장해서 오래도록 저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학교생활의 추억은 책으로 만들어 보관해 두는 게 훨씬 좋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추억이란 아날로그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추억은 0과 1 같은 디지털 코드로 딱딱 나뉘지 않습니다. 추억은 은은하게 기억되고 유장하게 이어지며 그것을 떠올리는 사람의 영혼을 위로해 줍니다.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디지털 매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에 이름도 고색창연한 학급 문집을 굳이 만드는 이유입니다. 책으로 만든 학급 문집은 허공으로 흩어지기 쉬운 학창 시절의 기억을 실물로 남긴 것입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훌륭한 매개체 역할을 합니다.
또 학급 문집을 만드는 과정에서 미처 몰랐던 아이들의 고민과 관심사에 대해서도 알아 갈 수 있습니다. 서로 얼굴을 마주한 상황에서 말로 하기는 차마 어려웠던 아이들의 고민이 글이라는 형식을 빌리게 되면 스스럼없이 풀어져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글을 쓰는 시간 자체가 학생들에게는 치유의 과정이 되기도 합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남을 이해하는 성찰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어른이자 교사의 시선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아이들의 관심거리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도 됩니다.
마지막으로 학급 문집을 만드는 과정은 학급 공동체의 결속을 더욱 튼튼하게 다지는 시간이 됩니다. 학급 문집은 진급과 졸업을 앞둔 2학기 후반에 주로 만들어집니다. 그 시기는 일 년 동안 학급을 구성해 왔던 담임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사이의 헤어짐을 앞두고 있는 때입니다. 그래서 자칫하면 시간을 헛되이 보내기 쉽습니다. 이때 학급 문집을 만들면 그 시기를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습니다. 물론 학급 문집은 담임교사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만들기 어렵습니다. 학급을 구성하는 모든 학생들이 문집 제작에 어떤 형태로든 참여하지 않는다면 문집을 만드는 의미는 반감됩니다. 학급의 모든 구성원들이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문집 만드는 일에 참여할 때 내용과 형식 모두를 온전하게 갖춘 학급 문집이 탄생합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쓰고 엮은 학급 문집을 보며 뿌듯한 성취감을 느끼는 동시에 ‘우리 반’이라는 공동체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길 것입니다.
교육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부대끼며 헤어지는 과정의 연속이자 반복입니다. 그 과정에는 여러 가지 모습을 지닌 흔적이 남게 됩니다. 그 흔적들 가운데는 오래도록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은 추억이 있기 마련입니다. 학급 문집은 그러한 추억들을 오롯이 모아 보관하는 타임캡슐입니다. 또한 그 자체로 따뜻한 추억이 되어 교사와 아이들의 책꽂이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세주 서울 광성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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