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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 찾아서] ‘하늘의 별 따기’ 동일방직에 들어가다 / 이총각

등록 2013-05-22 19:13수정 2013-05-23 09:03

이총각(앞줄 오른쪽 셋째)은 1966년 1월 큰언니가 다니던 인천 만석동 동일방직에 입사했다. 첫 사회진출이자 돈을 벌어 가족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마냥 즐거웠던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할 의욕에 가득 차 있었다. 사진은 입사 3개월 만에 특별교육생으로 뽑혀 찍은 것이다.
이총각(앞줄 오른쪽 셋째)은 1966년 1월 큰언니가 다니던 인천 만석동 동일방직에 입사했다. 첫 사회진출이자 돈을 벌어 가족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마냥 즐거웠던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할 의욕에 가득 차 있었다. 사진은 입사 3개월 만에 특별교육생으로 뽑혀 찍은 것이다.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5
1966년 1월18일은 이총각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다.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고 소문난 동일방직에 입사한 날이다. 누구는 회사 간부의 사택에서 식모로 1~2년간 일했다 하고, 누구는 사돈의 팔촌까지 동원해 몇년씩이나 공을 들였다고도 했다. 총각이 그런 행운을 잡은 건 큰언니가 5년 넘게 성실하게 일하며 터를 닦아놓은 덕분이었다. 그래도 동네 아저씨를 통해 그 맛난 연평도 굴비 한짝을 관리자한테 ‘뇌물’로 바치고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큰언니한테 입사 소식을 듣는 순간 총각은 좋아서 펄쩍펄쩍 뛰었다. 그동안 동일방직에 대해 들은 이야기는 별로 없었지만 무조건 좋았다. 중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둔 뒤 1년 넘게 외삼촌 집에서 조카들을 돌봐주다, 뭐든 열심히 해서 돈을 벌 생각으로 돌아온 참이었다. 월급이 얼마인지 물어보지도 않았고 언니가 얼마를 받는지도 몰랐다. 그냥 회사에 다니게 됐다는 사실이 좋았다.

총각의 기억에는 없지만 분명히 어머니도 좋아했을 게다. 커다란 대야에 새우젓을 담아 머리에 이고는 버스로 서울 용산까지 가서 팔고 와도 남는 건 몇푼, 여전히 새끼들 입에 피죽 한 그릇 떠먹이기 힘들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아이들의 얼굴엔 부스럼과 버짐이 늘 하얀꽃처럼 피어 있었다. 당신이 아무리 애를 써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으니 어머니는 가끔 만신에게 찾아가곤 했다. 물론 그것도 돈이 드는 일이라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병원에 가야 할 일도 만신에게 묻는 것으로 해결했다. 작두를 타고 굿을 하는 무당도 있어서 동네는 어느 하루 굿 소리가 멈춘 날이 없었다.

그때는 겨울이면 왜 그렇게 눈도 많이 오고 추웠는지, 총각은 지금도 꿈속에서 그 겨울의 눈밭을 뒹굴고 나면 하루 종일 개운치가 않다. 동일방직에 입사해서 해고되기까지 10년이 넘도록 그 동네를 벗어나지 못했으니, 지워지지 않는 힘겨움이 기억 깊은 곳에 켜켜이 쌓여 있는 것이리라.

만석동 총각의 집은 하수구도 상수도도 없는 산꼭대기에 있었다. 그래서 아랫마을로 공동수도가 들어왔을 때는 온 동네 사람들이 좋아라 잔치를 벌인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하나밖에 없는지라 20~30미터씩 통으로 줄을 세워 놓고는 새치기를 했느니 통이 없어졌느니 하며 하루가 멀다 하고 머리끄덩이 싸움판이었다. 그나마 천막집에서 하꼬방으로 옮긴 뒤에는 좁은 부엌에 큰 드럼통을 구해다 물을 채워 두고 썼는데, 밥 짓고 세수하고 빨래까지 하기에는 넉넉하지 못했다. 방에는 큰 막대기로 시렁을 얹어서 이불을 올려놓고, 옷가지는 목통 안에 구겨넣었다가 대충 갈아입고 나가는 게 다였다.

동일방직은 총각의 집에서 넉넉잡고 10분을 걸어가는 거리에 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성냥공장도 있었지만 동네 언니가 손가락 하나를 다치고 온 뒤로는 생각만 해도 무서웠다. 그런데 그 성냥공장이 아니라 가깝고 건물도 깨끗한 동일방직에서 일하게 되어서 더 좋았다.

첫출근하던 날은 밤새 잠이 안 와 뒤척이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를 듣고서야 몸을 일으켰다. 시계 있는 집도 드물던 시절이었다. 박정희 군사정부는 어느 날인가 집집마다 스피커를 달아주더니 새벽 5시면 무조건 노래를 틀어줬다. 시계 대신 별이 떠 있는 위치를 보고 아침을 준비했던 때에 비하면 차라리 고마운 일이었다. 그 시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들이 지금도 귀에 쟁쟁한 총각은 우연히라도 듣게 되면 그 굴속같이 컴컴했던 새벽이 불쑥 떠오르곤 한다.

동일방직 첫출근 날은 한겨울이어서 잔뜩 껴입고 집을 나섰던 것 같다. 요즘 흔한 패딩점퍼는 아니더라도 변변찮은 겨울옷 하나 없었기에 어떻게 추위를 달랬는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그 겨울 추위까지도 기억 밖으로 몰아냈을 만큼 총각은 그날 말할 수 없이 설레고 좋아서 하늘을 붕붕 날아다니는 느낌이었다. 면접은 미리 본 적이 없고 회사에서 지정한 적십자병원에서 건강검진은 마친 상태였다. 워낙 폐결핵 환자가 흔할 때라 건강상태가 중요한 취업 조건이었다. 생전 처음 받아보는 건강검진에 긴장도 됐지만 병이라도 있으면 어쩌나 싶은 걱정이 더 앞섰다. 진찰을 하며 윗옷을 걷어 올리라는 의사의 말에 얼굴이 붉어졌다. 꾹 참고 올리는데 “더! 더!” 채근을 한다. 결국 브래지어까지 내보이며 겨우 마친 검진에 불쑥 수치심이 치밀어올랐지만 총각은 무조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절박감에 뭐든 나쁜 상상은 이내 지워버렸다. 구술정리 박민나

<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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