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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길을 찾아서] 찜통같은 공장…지옥 있다면 이런 곳 / 이총각

등록 2013-05-23 19:27수정 2013-05-24 08:57

1966년 1월 동일방직에 입사한 이총각(오른쪽 둘째)은 출근 첫날부터 상상한 적도 없었던 열악한 작업 환경을 보고 지옥을 떠올려야 했다. 사진은 그해 입사 동기들과 인천 자유공원에서 함께한 모습.
1966년 1월 동일방직에 입사한 이총각(오른쪽 둘째)은 출근 첫날부터 상상한 적도 없었던 열악한 작업 환경을 보고 지옥을 떠올려야 했다. 사진은 그해 입사 동기들과 인천 자유공원에서 함께한 모습.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6
1966년 1월 동일방직에 첫출근한 이총각은 세상을 다 얻은 듯 붕붕 떠다니던 마음이 순식간에 가라앉는 걸 느꼈다. 입사 동기 7명과 함께 사무실에서 작업복을 받아들고 공장 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서는데, 뭔지 쿰쿰한 냄새를 실은 바람이 훅 얼굴을 덮었다. 동시에 귀청을 뜯을 듯이 질러대는 기계음에 흠칫 놀라 총각은 뒷걸음질을 쳤다. 앞서 가던 지도위원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신참내기들은 서둘러 뒤따라 들어갔다. 천장이 높고 어둑어둑한 현장은 한겨울인데도 찜통처럼 뜨거웠다. 좀 전에 받은 작업복이 여름옷처럼 얇은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수련생인 양성공들한테는 바지가 지급됐지만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조금씩 시야가 트이자 작업장 가득 아른아른 떠다니는 솜먼지들이 보였다.

익숙하지 않은 어둠을 더듬으며 양쪽으로 줄지어 선 집채만한 기계들 사이를 100미터쯤 걸었던 것 같다. 바로 그때 호루라기 소리가 고막을 찢었다. 저 멀리 먼저 가 있던 지도위원이 총각 일행을 향해 빨리 오라며 손짓을 했다. 총각은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지옥이 바로 이런 모습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무섭고 쌀쌀맞은 지도위원은 마치 저승사자 같았다. 기계 소리가 그렇게 시끄러우니 고함을 지르지 않고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호루라기가 말 대신 먼저 귓속을 헤집었다. 잘할 수 있을까? 어렵게 입사를 하지만 3~4년 만에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하지만 총각은 이를 악물었다. 돈을 벌 수 있다면 그 어떤 것도 견뎌내리라.

신참내기들은 일주일 동안 실 끊는 걸 배웠다. 기계 소음 때문에 잘 들리지도 않는데다 용어들이 대부분 일본말이라 더 알아듣기 힘들었다. 가르쳐준 대로 하지 못할 때는 우선 호루라기부터 불며 눈을 부라리는 지도위원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현장에는 ‘1분에 140보’라고 쓰인 종이가 표어처럼 붙어 있었다. 기계는 24시간 쉼없이 빠르게 돌아갔다. 거기에 맞춰 민첩하게 움직이면서 기계에 필요한 작업을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양성공들에겐 빠르게 걷는 연습이 필수적이었다. 만 열여덟살, 총각은 무엇이든 열심히 하고 열심히 배웠다.

그 다음주부터 90명 정도가 일하고 있는 정방과 2반에 배치되었다. 정방은 솜을 틀어 새끼줄처럼 빼낸 다음 기계에 넣고 가는 실을 뽑아내는 일을 하는 부서로 혼타면·소면·조방·와인다(와인더)·위사·직포 등으로 구성된 23개 작업 공정 가운데 하나였다. 큰언니는 와인다과 1반에서 일해서 출퇴근 시간이 달랐다. 근무시간은 아침 6시, 오후 2시, 밤 10시 출근으로 나뉘어 3교대로 돌아갔고 일주일마다 출근시간이 바뀌었다.

총각은 수습 3개월 동안 원래 출근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한 시간 반 일찍 출근하고 또 한두 시간 늦게 퇴근했다. 그러니까 8시간 근무가 아니라 12시간이 보통이었다. 동일방직의 8시간 근무제는 12시간 맞교대를 하거나 14시간·15시간 근무해도 월급이 더 적은 타 회사에 비하면 좋은 조건이었다. 하지만 총각처럼 정해진 근무시간 전후로 작업 준비 혹은 정리를 하느라, 급여 계산이 안 되는 두세 시간 초과근무는 예사였다.

24시간 돌리는 기계는 일년에 딱 세 번 설과 추석, 노동절에만 멈췄다. 그밖에 기계가 멈추는 건 실이 끊어지거나 엉키는 등 작업 불량 상태가 발생했을 때인데, 그런 상황을 막으려면 한눈팔 새도 없이 뛰어다녀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32도 이상 고온을 유지해야만 해서, 한여름엔 작업장 온도가 40도를 넘어갔다.

작업중에는 화장실을 간다거나 쉬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아서 하루 12시간을 서서 일하는 게 가장 고역이었다. 대부분 식사도 작업시간 전에 먹고 현장에 들어가야 했다. 아침 6시 근무조는 5시쯤에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들어가 오후 2시까지 근무를 했는데, 다음 작업자에게 일을 넘기고 뒷정리한 뒤 집에 가면 거의 저녁때여서 사실상 점심을 굶는 날이 많았다. 그리고 오후 2시 근무조도 마찬가지여서, 1시쯤 점심을 먹고 퇴근해서 집에 오면 밤 12시에 가까워 밥 먹을 기운도 없이 쓰러지곤 했다. 야간반을 할 때는 훨씬 더 힘들었다. 1주일 단위로 근무시간이 바뀌기 때문에 몸이 적응할 새 없이 낮밤이 뒤집혀 다리도 퉁퉁 붓고 속은 쓰렸다.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그래도 총각은 부실하게나마 어머니가 해주는 집밥을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멀리 전라도·충청도에서 올라와 자취를 하는 동료들은 그나마도 먹기 어려워 대부분 위장병이 생겼다. 자취생들의 숙식 고민은 72년 여성지부장이 뽑혀 1년 반쯤 뒤 숙원사업인 여직원 기숙사가 생긴 뒤에야 일부 해결이 됐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 <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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