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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아서] 통곡하며 마친 지오세 투사선서 / 이총각

등록 2013-05-30 19:22수정 2013-05-30 22:03

이총각(뒷줄 오른쪽 둘째)은 1969년 11월28일 인천 화수동성당에서 가톨릭노동청년회(JOC) 회원으로서 투사 선거를 했다. 사진은 69년 초 동일방직 동료 지오세 회원들의 투사 선서 때 함께한 모습.
이총각(뒷줄 오른쪽 둘째)은 1969년 11월28일 인천 화수동성당에서 가톨릭노동청년회(JOC) 회원으로서 투사 선거를 했다. 사진은 69년 초 동일방직 동료 지오세 회원들의 투사 선서 때 함께한 모습.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11
1969년 11월28일 이총각은 인천 화수동성당에서 소나무팀 다섯명과 함께 투사 선서를 했다. 언제 어디서나 늘 푸른 소나무처럼 곧고 정의롭게 살자고 붙인 팀 이름을 모두들 좋아라 했다. 총각은 그 자리를 축하해주기 위해 와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지오세 투사로서 살아갈 것을 선서하며 한없이 설레고 벅찬 감정을 누를 수가 없었다.

“나는 이후부터 나의 가정, 나의 동네, 나의 일터, 나의 휴가, 나의 결혼, 또 나의 내일의 생활준비에 있어서 가톨릭 노동청년의 이상을 철저히 생활하기 위하여 매일같이 투쟁할 것을 선서합니다. 또한 나와 같은 모든 노동형제자매를 이 이상 안에 이끌도록 종사합니다. 천주께 의탁하며 나의 서약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 25년사> 296쪽)

매주 한번씩 했던 생활반성은 회원들 서로를 진실로 이해하며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워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상대방을 신앙인의 눈으로 판단하고 실천하게 도와주는 일은 어렵지 않았으나, ‘청년 노동자를 구원하시고 그들에게 행복을 약속하신’ 하느님의 뜻을 연구하는 성경공부는 다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가장 힘든 건 실천이었다. 개선이 필요한 어떤 상황에 선뜻 한발을 내디디려면 새로운 용기가 필요했다.

총각은 늘 하던 대로 열심히 일을 했지만 지오세 회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나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어려움을 헤아려 그리스도인으로서 받은 사랑과 행복을 나누려 애썼다. 수줍음 많던 총각은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부서 야유회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해 함께 웃고 떠들며 더욱 친밀한 인간관계를 맺어갔다.

특히 소나무팀의 동료들은 마치 가족처럼 가깝고, 따뜻한 우정을 나누는 소중한 사람들이 되어갔다. 총각은 이들과 함께 죽은 동생의 묘를 찾아가 기도도 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따뜻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바다로 산으로 놀러 다니기도 했는데 그럴 때는 봉사활동을 한다며 쓰레기도 줍고 나무 밑으로 기어다니던 송충이를 잡아 깡통에 넣어 오기도 했다. 예전 같으면 징그러워 가까이 가고 싶지도 않았을 텐데 서로 많이 잡겠다고 경쟁을 했다. 또 어렵게 사는 노인들을 찾아가 집안 청소나 빨래를 해주기도 하고, 현장에서는 특히 야근 때 피곤한 동료들을 위해 ‘박카스’를 나눠주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모든 게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총각이 지오세에 가입한 68년은 지오세 창립 10돌이자, 지오세가 노동조합운동에 긴밀히 관여하기 시작한 해였다. 어느날 지도투사가 강화도에 있는 심도직물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앞서 67년 5월 강화본당에서 투사 선서를 한 지오세 회원들을 중심으로 심도직물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뒤에는 강화본당의 전 미카엘 신부와 메리놀 수녀들의 지지와 적극적인 후원이 있었다.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사장은 전 신부를 용공분자로 몰아세우고 지오세 출신 노동자들을 해고하고는 앞으로 지오세 회원을 고용하지 않겠다며 온갖 부당노동행위를 저질렀다. 결국 68년 1월8일 노조 분회장이 해고당하자, 이에 항의하는 집회에 참가했던 지오세 회원 5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이에 지오세 전국연합회는 “노동자들의 존엄성과 노동자들의 모든 권리를 존중하여 올바른 보수와 직업의 기회 균등을 누리며 방해 없이 자유스럽게 노동조합을 구성할 수 있는 노동자의 권리를 갖는다”고 선언했다. 이어서 지오세 전국평의회가 호소문과 선언문을 발표하고, 특히 노동 사안으로는 최초로 주교회의에서 ‘사회정의와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한다’는 제목으로 성명서를 발표하자 정부는 부랴부랴 사태 수습에 나섰다. 이후 심도직물은 해명서를 발표하고 해고자들을 복직시켰다. 이 심도직물 사건은, 교회가 그리스도적 사회정의와 노동자의 권리를 가르칠 권리와 의무가 있음을 천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이를 지키기 위한 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총각은 가슴이 벅찼다. 그리고 투사 선서를 하던 날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의 고통과 아픔을 생각하며, 우리가 살아오는 동안 잘못한 모든 것들을 이 자리에서 통회하자. 앞으로 투사로서의 역할을 다하며 어떠한 고통과 시련이 와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 이웃과 함께 살아갈 것을 굳게 다짐하고 약속하자”는 지도투사의 말을 들으며 그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울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 끝내는 제대를 붙잡고 통곡을 하며 지오세 투사로서 성심을 다할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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