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방직 민주노조는 1976년 2월 대의원선거와 4월 대의원대회에서 회사 쪽의 사주를 받은 남자대의원과 조합원들의 방해 공작으로 난항을 겪는다. 사진은 2기 여성 집행부 이영숙 지부장이 그 해 4월 기숙사 강당에서 열린 대의원대회를 진행하는 모습.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25
1976년 2월 동일방직 노조 대의원 선거를 앞두고 노조와 회사는 모두 팽팽한 긴장상태에 돌입했다. 이영숙 집행부가 출범할 때부터 회사 쪽에서 3년 임기를 다하기 전에 여성 집행부를 끌어내릴 거라는 음모설이 공공연히 돌아다녔다. 여성 집행부를 지지하는 조합원들에게는 노골적으로 협박을 하고, 이에 항의하면 무거운 자재를 옮겨야 하는 운반일을 시키거나 아무런 기술이 필요 없는 기름닦이를 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비 온 뒤의 땅이 더 굳어지는 법, 여성 조합원들의 민주노조 사수에 대한 의지는 더욱 강해져 갈 뿐이었다.
회사 쪽은 여자들보다 상대하기 쉬운 남자 조합원들을 회유해 노조 대의원이 되도록 적극 지원을 했다. 당시 동일방직의 남자 노동자들은 대부분 기능공으로서 여자들보다 임금도 갑절 이상을 받았고, 노동조건도 훨씬 나은 상황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회사의 인정을 받으면 관리사원인 담임으로 승진할 기회도 주어졌기 때문에 회사와 투쟁하는 노조가 달갑지 않았다. 또 주길자 집행부 이전까지는 조합비를 마음대로 쓸 수 있었는데 이제 그럴 수 없으니 그게 너무 아쉬웠고, 감히 여자들 주제에 나서서 잘난 척을 하니 그것 역시 도무지 봐줄 수가 없다는 식이었다. 회사는 남자 조합원들을 이용해 현 집행부와 대립하도록 계속 충동질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2월6일 대의원 선거가 치러져 47명의 대의원이 선출되었다. 결과는 뜻밖에도 23명만이 현 집행부를 지지하는 대의원이었고, 나머지 24명 중 21명이 회사 쪽 지지를 등에 업고 나온 남자 대의원들이었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이영숙 집행부는 충격을 받았다. 지난 집행부에 이어 순조롭게 민주노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조합원의 처지에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며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번 선거 역시 대의원 과반수를 확보하는 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 밖의 결과가 나왔고, 현 집행부의 앞날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이총각은 이제 1년 전 총무부장이라는 자리가 어색하고 당황스러워 어리벙벙했던 그가 아니었다. 동일방직 노동조합 총무부장으로서 노조 사무실을 지킨 지난 1년은 그에게 맡겨진 조합 간부의 임무가 가벼운 게 아님을 충분히 깨닫고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가톨릭노동청년회(지오세) 훈련을 넘어서서 노동조합 활동가로서, 노동운동가로서의 다양한 교육과 교류로 그의 의식은 나날이 단단해지고 성장하고 있었다. 그는 이 무렵 지오세 투사들의 모임에서 다시 이경심을 만나 동일방직의 상황 전반에 대해 논의하며 이후 투쟁을 함께 풀어 나간다.
동일방직 노조는 4월3일을 대의원대회 개최일로 공고하고 섬유본조의 승인을 받아 대회를 준비해 나갔다. 하지만 회사 쪽의 노골적인 방해 공작이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대의원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회사에서는 대의원들을 회유하고 심지어는 매수하려는 추태를 벌이기도 했다.
드디어 4월3일 정기대의원대회가 섬유회관 4층에서 열렸다. 그런데 고두영을 비롯한 집행부 반대파 24명의 대의원들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은 사전에 준비한 음식을 싸들고 송도로 야유회를 갔다고 했다. 대회는 성원미달로 유회되고 이영숙 집행부는 회사 쪽의 대회 방해 공작에 치를 떨어야 했다. 이후 집행부 지지와 반대파 대의원들 사이의 갈등은 더욱 심각해져 갔다. 더구나 고두영 등 반대파는 이영숙 지부장을 불신임하여 노조를 다시 가로챌 계략을 꾸미고 있었다.
4월23일 기숙사 강당에서 대의원대회가 속개되었다. 반대파는 지부장 불신임에 필요한 ‘재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의 출석과 출석 3분의 2 이상의 결의’ 규정을 ‘과반수 이상’으로 개정하려 하였으나 대의원들의 반대로 불발에 그쳤다. 그러자 다른 트집을 잡아 불신임안을 내놓고 퇴장하려 했다. 그때 회의장이 소란스러워지자 대의원 김윤자와 강성례가 앞서 4월2일 고두영이 매수할 셈으로 돈을 주고 간 사실을 폭로하며 2만원을 내던졌다. 당황한 고두영 등 반대파들은 돈을 주워 들고는 황급히 퇴장해버렸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회사 쪽의 민주노조 파괴 공작에 분노한 대회장은 울음바다가 돼버렸고, 대회는 또다시 유회되고 말았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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