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4월 다시 열린 동일방직 노조 대의원대회 때는 원풍모방·반도상사·동광모방 등 크리스찬아카데미의 수원 사회교육원(내일을 위한 집)에서 노동교육을 함께 받은 인천지역 민주노조 간부 30여명이 참관을 시도하려다 회사 쪽과 충돌을 빚기도 했다. 사진은 이총각(셋째 줄 오른쪽 셋째)이 참가한 수원 사회교육원 제14기 지도자교육 수료생들.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26
1976년 4월23일 다시 열린 동일방직 민주노조 대의원대회는 노조와 회사 모두 초긴장 상태로 진행됐다. 이미 한 차례 회사의 노골적인 방해공작이 있었던 터라 외부에서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날 방용석 지부장을 비롯한 원풍모방과 반도상사 및 동광모방의 노조간부 30여명도 대의원대회를 참관하고자 동일방직 정문 앞에 모였다. 그러자 경비가 문을 걸어 잠그며 그들의 출입을 막고 나섰다. 또다시 예상되는 회사의 방해공작에 흥분한 그들은 고함을 지르며 철문을 붙들고 항의를 했고, 그 바람에 철기둥의 빔이 부서져 넘어지기도 했다.
동일방직 노조의 행사에 이렇게 다른 사업장의 노조 간부들이 연대할 수 있었던 건, 그동안 도시산업선교회(산선)나 가톨릭노동청년회(지오세) 행사에서 교류한 덕분이기도 했지만, 74년부터 시작된 크리스찬아카데미에서의 노동교육이 큰 영향을 줬다.
크리스찬아카데미는 당시 서울 경동교회 강원용 목사를 중심으로 한국 사회의 문제에 대한 조사 연구, 대화 운동, 교육과 훈련을 목표로 삼아 70년 수원에 아카데미 사회교육원을 열었다. 교육원에서는 빈부격차, 통치자와 피통치자, 도시와 농촌, 노동자와 자본가 간의 양극화가 한국 사회가 비인간화하는 원인이라고 보고, 상호 이해와 견제 구실을 담당할 중간집단을 키워내기로 했다. 74년 1월부터 여성·노동자·농민·학생 등을 대상으로 교육 훈련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 농촌사회 이우재, 산업사회 신인령, 여성사회 한명숙, 청년사회 강대인 등이 교육 담당 간사로 활약했다.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산업사회 교육은 노동자 스스로 어용노조를 극복하고 한국 사회의 민주화에 기여할 새로운 민주노조운동의 일꾼으로 성장하여, 단순한 노조 실무자로서가 아니라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지도자로서의 사명감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 중간집단 교육의 원칙은 주입식이 아니라 수강생 자신이 문제를 탐구하고 해답을 구하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특히 주목할 것은 기존에 중상류층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여성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여성운동을 정립하고자 시도한 여성 사회교육이었다. 학생, 와이더블유시에이(YWCA) 실무자, 노동조합 간부, 언론인, 전문직, 농민, 전업주부 등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4박5일간 진행한 이 교육은 74년부터 79년까지 모두 19회나 계속됐다. 당시 교육과 실생활이 연결될 수 있도록 기획한 사례발표에는 ‘직장 내 고용·승진의 남녀차별 실태’, ‘부당행정에 대한 아파트 주부들의 집단항의 사례’, ‘노조 탄압에 대한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 ‘가정 내 고부간·부부간 갈등’ 등 다양했다. 이들은 후속 프로그램을 통해 ‘가족법 개정을 위한 운동’, ‘미인대회 폐지운동’ 같은 좀더 발전된 여성운동의 과제를 공유했다.
여성문제와 노동문제를 결합한 여성 노동자 교육은 77년 4월 시작해 1년 동안 5기까지 진행되었다. 이 교육에는 동일방직·동광모방·원풍모방·반도상사·와이에이치(YH)무역·청계피복·콘트롤데이타·동남전기·민성전자 등의 여성 조합원들이 참여했다. 여성 노동자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사업장에서도 늘 남성이 노조 위원장을 도맡아 해왔기에 이들이 여성으로서, 노동자로서 당당하게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이유를 깨닫게 하는 교육은 매우 중요한 경험이었다.
이 과정에서 교육생을 중심으로 76년 11월28일 창립된 여성해방노동자기수회는 노동운동을 통한 여성해방을 목표로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운동 강화, 여성문제 의식화, 여성 노동자의 연대 등을 추구한 진보적인 모임이었다. 원풍모방 노조 부위원장이었던 박순희가 회장으로 활동하다가 79년 크리스찬아카데미 사건을 계기로 해체됐지만 그 엄혹한 시대에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당당하게 앞서 나갔던 그들은 여성 노동자들에게 자랑스러운 역사로 남아 있다.
크리스찬아카데미 교육을 통해 의식의 성장을 경험한 이총각은 그곳에서 원풍모방·와이에이치무역·반도상사 등의 많은 노동자들을 만나 평생 동지의 연을 맺어갔다. 그에게 아카데미 프로그램은 태어나서 처음 받아보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교육이어서 열심히 참여하고 공부했다. 노래와 촌극 경연, 명상 등의 프로그램에도 함께했는데, 특히 그때 회사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을 소재로 연극을 만들어 조합원 연기를 하며 완전히 몰입했던 경험은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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